이 인간이 정말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인간이 정말.
  제목부터 참 신선하다. 단편집을 접하는 것은 꽤 오랜만인 듯하다. 그동안 멀어졌던 탓인지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하기에 제목의 신선함과 함께 더 호기심이 동했다. 참 독특해보였다.

 

평범한, 불편한, 억울한 이야기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단편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행복하지는 않다. 조금은 억울한,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가벼운 접촉사고 이야기의 「론도」, 흥미로우면서 불편한 라오스 여행기 「남방」, 첫사랑을 만나러 가면서 회상하는 이야기 「찬미」, 맞선 자리에서 불편한 정보들로 상대 여성을 질리게 만드는 이야기인 표제작 「이 인간이 정말」, 복수군 장군 기원을 비판한 이유로 억훌하게 죽은 유희의 이야기 「유희」, 돌아가신 아버지의 외투를 통해 아버지를 느끼는 이야기 「외투」, 거짓으로 가득한 친구의 삶을 풀어놓는 「홀린영혼」,열녀각에서의 해설가 김문일의 이야기 「해설자」까지 이렇게 총 8편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사소하고 평범한 것에 나는 집중한다, 다시."

  우리의 일상에서는 무수한 일들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일들을 눈여겨 보고 거기서 상상력을 이끌어낸다는 것. 그리고 세상에 많고 많은 평범한 인물을 화자를 통해 특별한 인물로 만들어버리는 그것. 참 대단하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다양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참 흥미로웠다. 「이 인간이 정말」을 읽을 때에는 정말 '이 인간이 정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작가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인정. 참으로 독특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설기문 지음 / 원앤원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걱정하지마, 잘될 거야.

 

  Everthing, Ok!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입니다.

  내 인생은 자꾸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몇번이고 생각해본다. 답은 얼추 나온다. 기우때문이다. 현재를 즐기라는 내 가치관과 다르게 나는 앞의 일을 미리 걱정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현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우는 어릴 때부터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정착하여 군대를 꾸렸다. 가치관을 바로잡기 위해 수천만 번을 긍정군단이 쳐들어와도 어릴 때부터 열심히 훈련해온 기우군단을 몰아내진 못했다. 그들은 지금도 대치상태다. 긍정군단이 지쳐 백기를 들지 않도록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미안하다고 말하거든 괜찮다고 끄덕여주세요

  I am sorry

  누군가가 내게 사과할 때, 나는 그 사과를 쿨하게 받아주던 타입이던가. 그렇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면 그냥 받아주는 편이다. 피차 서로 얼굴 붉히고 싶지도 않고, 미안하다는데 넘어가면 안 될 일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서다. 그런데 요즘 내가 알고 지낸 사람 중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잘못을 해도 적반하장이라 꽤 당황했던 기억이 많다. 요즘 그런 일을 겪은 터라 더 그렇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면 쿨하게 넘어가준다. 대신 나는 저자의 말처럼 수십 번은 끄덕여주지는 못할 것 같다. 대신 나도 다른 사람에게 사과를 할 때에는 진심을 담아 하고,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미안하다는 말이 좋은 상황에서 나오는 말은 아니니 되도록 하지 않도록.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을 일부러 찾지 말고 담담히 살면 좋겠습니다.

  행복을 생각하지 말고 묵묵히 살면 좋겠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행복에 대한 염원이 커지고

  어떤 상황에서든 내 행복을

  확인하려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 행복이라는 단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참 많이 접하는데, 어느 샌가 우리는 그 단어에 집착하기 시작한 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무엇일까? 물질적 풍요? 정신적 가치? 이렇게 개념을 정착시키려는 무엇이다. 나도 계속 생각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결국 답은 소소한 기쁨이 아닐까 싶더라. 모두가 내리는 행복의 정의가 다르듯이 내게는 행복이 그냥 그 자체더라. 감사할 수 있는 그 상황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실패는

  나를 깨우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실패한다는 것. 겉으로는 쿨한 척하려고 매번 노력하는데 마음 속은 시커멓게 타고 있는 것은 성격때문일까. '에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며 하하- 웃는 표면의 나. 그러나 속으로는 '대체 왜 실패한 거지. 뭐가 문제인 거지. 안 되나.'라고 전전긍긍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저자는 부정적 최면에 걸리지 말 것을 말한다. 실패는 나를 위해 나를 깨우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면 오히려 고마워진다고 말이다. 마음을 유하게 가지는 연습이 필요할 듯하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내 마음 속의 번개는 환하게

  한순간 기적처럼

  사랑처럼 다가옵니다.

  저자의 표현이 참 멋드러지다. 저 말을 읽고나서 열심히 반성해본다. 나는 가치관에 어울리게 살아가고 있는가.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한 듯하여 부끄럽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보낼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평온이 찾이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운 세상인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찌나 버거운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색깔을 입히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색이 원래의 색인 마냥 바라보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니 어떻게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겠는가.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 안에서 수많은 오해와 아픔이 생겨난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눈치를 못채고 똑같이 한다. 마치 그것이 본래 그렇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관조적 자세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나를 바라보고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학창시절에 이름을 붙여 --스럽다. 라는 형용사를 친구들과 어울려 썼다. 각자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응용하여 사용한 형용사였다. 이렇듯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보였을 때 '누구답다'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그런데 그 누구답다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대개 이런 표현에서 자신이 부정적으로 보이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보다는 주변에 맞춰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어려운 문제같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 뜻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은 나와

  사이좋게 지내기로 합니다.

  모든 것을 평화롭게 바라보며 나는 나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기로 합니다.

  아 이렇게 생각해보는 방법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나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참 마음에 와닿는 그런 말이다. 나를 위해 내가 하는 행동들과 말들과 생각들을 다시금 돌아보고 행하는 것. 이것만큼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하기 쉬운 방법은 없지 않을까?

 

  시간을 들여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단락 읽고 나면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떠한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언제나 책은 내게 많은 것을 준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 잡지 못해 더 불안한 요즘 더 그런 듯하다. 누군가가 내게 이리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걱정하지마, 잘될 거야.'라고. 예전에는 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 그래서인지 저자의 이야기는 내게 참 따스하게 다가왔다. 평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은 점심식사 후 휴식시간이다. 아직 오늘이 절반 이상 남았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본다. 오늘 나와 사이좋게 지내기.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통으로 성공을 디자인하라 -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소통 교과서
표영호 지음 / 순정아이북스(태경)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통으로 성공을 디자인하라.

 

  소통은 현대사회의 이슈 키워드다. 왜 이슈가 되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통은 관계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소통이 이루어져야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망에 따라 공동체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공동체가 아닌 개인에 익숙해져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개인의 풍요로움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에게 소통이 필요한 키워드다. 결국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단지 시시콜콜한 대화가 아니다. 소통으로 성공적인 삶을 디자인 할수 있는 '마음가짐'과 '자세', '습관'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하고자 한다.

 

  핑계대지 말자.

  생각해보자. 한 번쯤은 핑계댄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잘못된 것을 지적할 때, 쿨하게 인정하는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것은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 있는가 하는 반면에 그러지 못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을 꼭 굳이 그렇게 인정하지 않고 변명을 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내가 틀리지 않았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잡아먹을 듯이 으시대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자기주장도 가려서 해야할 때가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 내 잘못된 점을 이야기할 때면 쿨하게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점검해보자. 그리고 주장을 할 때에는 남의 주장을 들어보고 감정소모할 언쟁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남만 부러워하다 살다가기엔 아까운 인생이다.

  흔히 누군가를 '부럽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그 부러운 누군가와 비교하기 쉽다. 그럴 때 찾아오는 공허함은 참 이기기 어렵다. 그 안에서 내 자존감은 어떤 모습인가? 그렇게 쉽게 내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말자. 우리가 명품 옷을 오래 입는 이유는 비싸기 때문에 소중하게 다룬다. 하지만 싸게 산 것은 그냥 대충 입고 버리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입기 때문에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 가치는 그렇게 매겨진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말이다.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내 포지션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비교를 아예 배제해서는 안 된다. 비교는 자기 계발을 위한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부럽다면 부러워만 말고 부러운 만큼 노력하자. 비교하여 괴로운 인생이 아닌 노력하여 즐거운 가치있는 인생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역지사지. 이해하기.

  소통의 기본일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누군가 그랬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어야 보이는 것이라고 말이다. 영어에서 이해하다라는 뜻의 'understand'를 보면 'under(아래) stand(서다)'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보다 밑에 서서 상대를 높인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상대방을 이해할 때 우리는 소통의 기본자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책에서 저자가 소개한 심순덕 시인의 시는 너무 찡하다. 요즘 엄마와 관련된 주제의 글을 볼 때면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맛집같은 사람.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 예전에 여기서 이런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언제 만나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어색해지지 않고 서로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친구라고 말이다.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란 맛집과 같지않을까? 저자는 이리 비유한다. '입맛없을 때 생각나고, 자주 찾지는 않아도 늘 그자리에 있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지는 맛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이다.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며 절묘하다 라고 생각했다. 과연 나는 몇명의 단골을 데리고 있는 걸까.

 

  Dream is now here!

  꿈은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요즘은 평직이라는 말이 참 무색하다. 누구나 회사에 들어가면 평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경력을 쌓아 혹은 돈을 벌어 적성에 맞는 곳으로 이직하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더 인내심과 책임감이 적은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내가 평직으로 다닐 곳도 아닌데 생고생하면서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성격때문인지 일은 야근이고 특근이고 따지지 않고 깨알같이 하게 되더라.- 그러나 마음가짐을 달리했다. 꿈은 많이 꾸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인생은 많은 것을 경험해볼 수록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 시간을 너무 내게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지금은 다르다. 일하는 것이 가끔은 너무 힘들고, 전공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내가 포기하면 다른 꿈도 쉽게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이곳에서도 또다른 꿈을 꾸고 있다.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내 습관은 어떤지, 내 말투는 어떤지, 내 생각은 어떤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단지 소통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인생을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행복하게 꿈꾸고 즐길 수 있도록 거기서 기초가 되는 소통을 전제로 말이다. 그래, 즐겁게 살고 싶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사는 것이 아닌 자존감을 가지고 노력하며 진심으로 웃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실 카스트
스즈키 쇼 지음, 혼다 유키 해설, 김희박 옮김 / 베이직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교실 카스트

  교실과 카스트제도라.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계급제도를 상징하는 카스트제도. 그것을 교실에 가져오다니.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어로 듣지 않았을 뿐 아마 느끼고는 있었을 것이다. 이지메, 왕따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요즘이야 좀 더 심해졌다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것들은 분명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것들이다. 생각해보자. 자기 자신이 당하지 않았기에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꼭 반에서 한 명쯤은 이유없이 혹은 어떠한 이유로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없었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떠오르는 아이들 몇 명은 있다.

 

 

  교실 카스트란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학교도 작은 사회다. 그렇기에 계급은 나뉠 수 밖에 없다. 다 같이 잘 지내면 좋겠지만, 우리는 끼리끼리 노는 것에 -어쩌면 지금이 더 심화된- 익숙하기 때문이다. 굳이 나와 맞지 않는 아이들과 놀 이유가 없다. 나와 어울리는 아이들과 놀면 된다. 가령 예를 들면, 우리가 즐겨본 만화 '꽃보다 남자'와 현재 방영중인 '상속자들'을 들 수 있겠다. 잘 사는 집안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히는 당하는 중산층 아이들. 여기에서도 계급은 철저하게 분리된다. 이것은 계급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시다. 하지만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계급은 분리되지 않는다. 계급이 분리되는 것은 각각 계급에 따라 특징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다. 상위층에 속한 아이들의 특징과 하위층에 속한 아이들의 특징에 대해 말이다.

 

  교실카스트의 진정한 세계

  위에서 언급했듯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계급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계급에 대한 인식은 성장하면서 변화한다. 그것은 개인에서 그룹으로 변하면서 특징을 지닌다. 상위층에 속한 아이들의 특징은 대개 활발하고 모든 일에 나서서 하는 타입이다. 소위 말해서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때, 주도해서 노는 아이들을 말할 수 있다. 하위층에 속한 아이들의 특징은 대개 촌스럽고 오타쿠적인 성향을 지닌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의 틀은 명확하지는 않다. 대개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한 계급 간의 지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전체가 정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나도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이 아이들의 입과 눈과 귀를 통해 정보는 공유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위는 고정된 값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나뉜 계급은 힘을 갖는다. 반의 분위기나 모든 행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사까지도 계급에 따라 대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자. 안 그러했는가?

 

  교사와 교실 카스트

  교사라면 이 교실카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이 부분이 참 궁금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답을 듣지못했다. 아마 그것은 교실카스트=이지메의 관계를 아직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만난 교사들은 하위층에 속한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했을 때 학급 친구와 함께한 추억이 적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쓸쓸할 것 같다고 이야기 했고, 상위층에 속한 아이들은 인간 관계를 능숙하게 만들어가는 능력이 높은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교실 카스트를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일부분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급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들은 교실 카스트를 부정할 수 없고,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교실 카스트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나는 물어보고 싶다.

 

  교실카스트에 대한 논점과 대책

  교사들은 교실 카스트는 능력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상위층 아이들의 특징에서는 적극적이고, 소통능력 및 리더십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이 소속되어 있다. 그러나 하위층 아이들의 특징은 대개 수동적이고 조용하다. 교사가 교실 카스트를 보는 능력은 바로 성적으로 매길 수 없는 사회성에 관련된 능력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지메는 바로 이 계급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분명 이 시스템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교육시스템의 개선이라든지, 학교측의 교육방침이라든지 말이다. 현 교권은 참 힘이 없다.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일본드라마 고쿠센에 나오는 양쿠미같은 교사가 과연 얼마나 존재하겠는가. 교실 카스트를 개선하기 위한 학교의 전반적인 시스템은 분명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의 시간은 바로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그들의 의식 개선이 필요하고, 교권이 바로 서야 하지 않을까? 수 년 전부터 계속 진행되는 교실붕괴, 존경을 잃은 교권 모두 교실 카스트의 안타까운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청소년기를 위해 학생, 부모, 교사 모두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이 안타까운 현실을 조금씩이라도 고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르침을 생각하다 -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이 고작 교사인 이들을 향한 열정적인 옹호
테일러 말리 지음, 정여진 옮김 / 니들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가르침을 생각하다

 

  요즘 교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전과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참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많이 변질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UCC가 한창 이슈가 되었을 무렵,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 쉴새없이 인터넷상에 올라왔다. 그것은 수업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충격을 받은 동영상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학생들로 부터 등돌린 틈을 타서 율동같은 몸짓을 하면서 찍은 영상이었다. 어쩌다 이리 변해버린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요즘은 체벌도 못한다. 체벌하려고 하면 동영상을 찍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까지 발생해버리는 세상이다.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부모다. 예전같으면 선생님은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 부모들은 교사를 철저히 신뢰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뭔가 잘못되면 그것은 모두 교사탓으로 돌리면서 잘하면 자신의 아이가 잘난 탓이다. 그렇다고해서 학생과 부모만의 잘못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요즘 나태한 교사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교사라는 직업은 우대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업을 엉망으로 하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교육에 더 열올리는 것은 아닐까?- 학생을 진심으로 차별하기도 한다. 돈이나 선물을 받는 것은 당연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사립학교에서는 말이다. 내가 너무 안 좋은 면들만 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 실제로 뉴스는 안 좋은 일들만 다루기 일쑤니 어쩔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이 교직에 있으면서 행한 일들을 토대로 교사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이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럼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이유

  단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것일까? 물론 성적을 올리기 위함은 눈에 보이는 목표다. 특히 우리나라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않은가. 내신에 수행평가에 이것저것 관리할 것도 많은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당연히 뒤처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교육의 목적은 팽팽한 경쟁 속에서 상위권을 쟁탈하라가 아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이 참 보기 좋은 포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학교는 하나의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은 문자화된 것들만이 아니다. 그 안에서 사회성을 기른다. 성실과 협동, 적응력, 비판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등을 배우며 더 큰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한다. 이 능력들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교육받음으로써 서서히 익히고 있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의 역할은 다르다.

  부모와 교사의 역할, 어떻게 다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아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는 아이의 잠재력을 객관적으로 알아내고, 평가할 수 있다. - 어느 부모나 자신의 아이가 최고라고 하지 않겠는가? - 성적이 안 좋으면 늘상 하는 말 '우리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라는 말. 물론 머리가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그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아이에게 맞는 학습 방식이나 과정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순간

  여기서 깨달음은 학생과 교사 각각에게 의미가 있다. 학생에게 깨달음의 순간이 오면 교사는 매우 감격스럽다고 한다. 그것은 월급 외의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예전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가르치면서 그 아이가 알아갈 때 그게 참 뿌듯했었다. 아마 그런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교사에게도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는 착각하면 안 된다는 실수에 대한 깨달음이다. 학생들은 호기심도 많고 창의적이어서 참 신기한 발상을 많이 한다. 그런 만큼 자유 발상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발상 속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공부에 대한 창의적인 발상까지! 렇기에 저자의 이야기처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논리정연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학생도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참 신기한 일이다. 수업 시간에 자리를 비우다니! 내가 학생일 때는 거의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여자들의 특별한 경우만 제외하고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특별한 경우에는 반드시 뒷문 자리 쪽에 앉도록 했다. 그래야 다른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잘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화장실간다는 말도 어찌나 그리 쉽게 하는 건지 깜짝 놀란 사실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규칙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는 교실을 빠져나갈 수 없는 규칙이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너무 느슨해진 규칙이 아닐까 싶다. 그 정도로 참을성과 교권이 떨어진 것이 아닐까? 씁쓸한 느낌이 든다.

 

  가망없는 아이는 없다.

  어떤 아이가 얼마나 뒤처져있든, 그 아이의 진로가 얼마나 제한적이든, 결코 그 아이를 포기 할 수 없다.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왔을 때보다 좀 더 미래에 대해 준비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교사의 가장 기본적인임무다.

  저자는 이리 말한다. 지금의 교사들은 어떠한가? 내가 너무 안좋게만 생각하는 것일까? 이슈되는 교사들이 전부 안 좋은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일까? 참 안타깝다. 분명 아이들이 좋아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교직에 있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잠시 학창시절을 떠올려본다. 참 열심히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억척스러울 정도였으니. 학생들 중에는 그 선생님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 너무 깐깐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선생님을 잘 따랐다. 누구보다 열심히 우리학급 아이들을 위하는 것을 학급임원을 하면서 계속 보게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선생님은 이 뜻을 새기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가망없는 아이는 없다.

 

  요즘 교권이 말이 아니다. 부모도 학생도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낮아졌다. 그리고 교사들도 그렇게 책임감있게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고쿠센이라는 꽤 오래전에 방영한 일본드라마를 떠올렸다. 말썽쟁이 학생들은 선생님을 믿지 않지만, 선생님은 그 믿음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변화시키는 이야기였다. 지금 우리에게 선생님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교육이 인간에게 있어서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에 대한 부모와 학생의 자세 그리고 학생과 부모를 대하는 선생님의 자세에 대해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