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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사냥꾼 -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아담 리스 골너 지음, 김선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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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길 바라지만, 오래전 사라져버린 땅에 한여름 햇살을 품은 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지금에와서 당시를 떠올리자 마치 나는 금단의 열매를 맛본 게 아니었을까하는 의구심까지 생긴다. 전무후무하게 그 때의 복숭아를 나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맛 본 적이 없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그 복숭아는 한 손으로 잡기에 부담스러울만큼 크고 묵직했다. 그리고 맛은 다시 재연하기 힘들만큼 달고 맛있었으며 황홀했다. 아마 짧은 경험으로 미루어 그 때 큰아버지의 과수원에서 갓 따먹은 복숭아가 내게는 최고의 과일이 되었던 것 같다. 
 

최고의 과일은 돈을 주고 맛볼 수 없다. 과일을 정성껏 수확한 자만이 누리는 즐거움도 돈으로는 살 수 없다.    -p.317
 

저자는 이렇게 나처럼 단 한순간의 과일의 황홀경을 체험함으로써, 모든 열정과 호기심을 과일에 쏟아부은 과일중독자이며 애호가다. 새로운 과일에 대한 왕성한 탐욕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가진 그는 전 세계에 내노라하는 과일을 맛보고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괴짜같은 과일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보며 우리가 먹는 과일이 얼마나 제한적인가 알게 되었다. 하루에 하나씩은 꼭 챙겨먹는 사과의 경우도 나의 지식으로는 새빨간 홍옥이나 여름에 즐겨 먹는 아오리사과나 가을에 먹는 부사정도가 고작인데 개발된 품종만 하더라도 700여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종의 상업적인 손길이 뻗친거라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소비자들이 품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일년 내내 품질낮은 과일을 파는데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평균 이하의 단순한 과일만을 들여놓아 소비자의 관심자체가 제한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제철에도 슈퍼마켓들은 평균 이하의 똑같은 사과와 오렌지, 딸기만 들여놓는다. 식품업체들은 이렇게 계절성이 모호해진 상황을 일컬어 "전 세계가 사시사철 여름"이라고 부른다. 즉, 언제나 모든 것을 접할 수 있으니 평범하기 그지없다는 뜻이다.   -p.315


이 책에는 그런 수동적인 소비의 주체에서 반기를 든 사람들이 신선한 과일과 새로운 품종, 전 세계의 다양한 과일을 찾아 모험을 감행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자가 만난 과일사냥꾼들들은 상상이상의 호기심과 과일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며 인간 삶의 전반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과일의 영역을 단순한 미감에서 벗어나 오감을 자극하는 주체적 대상으로 보여준다.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놓고 종교적 의미까지 부여해 신성한 존재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일에 집착하는 과일사냥꾼이나 탐미주의자들은 과일의 자극적인 맛에 욕망과 쾌락, 지적호기심만을 담보로하지 않는다. 제한된 소비에 관심밖으로 밀려나거나 사라지고 멸종될 위기에 처한 과일을 알리고 지키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신성한 의식상태나 신과 교감하는 몰입상태의 상징물로 과일을 활용하는 종교가 많이 있다. 그 원리는 분명치 않아도 과일은 상징적 의미를 넘어 실제 우리의 분자구조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p.374

우리는 과일때문에 죽기도 하고, 과일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며, 과일을 통해 신과 만나기도 한다. 과일로 황홀한 상태에 빠진 이들은 자멸할 때까지 이를 갈구하기도 한다.   -p.378

과일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어떻게 해서든 과일에 대해 모조리 알고 싶고 박식해지길 원하는 욕망이다. 선악과 열매를 맛본 이후, 우리는 다른 나무의 열매에 눈을 돌려 영생을 찾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p.383



사실 저자가 앞서 책의 초반에서도 말했지만 과일섭취량은 최저생계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치나 다름없다. 나 역시 아침마다 꾸준히 제철과일을 먹으면서 얼마 안되는 생활비의 1/3 이상을 오로지 과일사는데만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몸은 꾸준히 비타민 섭취를 원하고 신선한 과일의 식감, 미각을 자극하는 향과 달콤함에 길들여질수록 헤어나오기 힘든 것이 과일중독이다. 비록 저자처럼 새로운 과일에 탐닉하는 것은 힘들지만, 전 세계에 이토록 많은 과일이나 열매의 다양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머지 않아 지구 반대편의 처음 들어본 과일들 역시 산지에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맛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손꼽아본다. 그리고 비록 식용으로 개량되어 품종을 지켜온 많은 과일들이 유전자 조작과 농약에 노출되고, 장기간 냉장보관을 위해 온갖 억제제로 범벅이 되어 있더라도 그 과일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과 순수성을 지키려는 농부들과 개발자들이 있으니 미래의 과일은 좀 더 원초적 본능을 드러내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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