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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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살았다. 말기암 환자였던 아내를 살리고 싶었다. 의학서적을 읽고 또 읽었다. 의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생들은 무슨 책을 보는지 찾았다. 의사인 후배들에게 책을 추천 받았다. 의사들도 혀를 내둘렀다. 자신들도 그렇게까진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안한다는 것이다. 의학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매일 공부한다는 쉬운게 아니란다. 최신 의학정보는 돈을 주고 봐야하는 논문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그것까지 공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여튼 수백만원을 들여 책을 사고 또 읽었다. 그러나 답은 딱 하나, 암은 아무도 고칠 수 없다.는 것과 운이 좋으면 살고, 아니면 죽는 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단어가 바로 '생존율'이다. 보통 5년생존율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존율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의학은 이리도 발달 했는데 말이다. 그럼 무엇이 발달했단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발달은 뭘까? 제기랄! 그렇게 아내를 보냈다. 넉달이 다 되어가지만 난 아직도 아내가 진짜 죽었는지 헤갈린다. 


사지가 절단된 이들에게 환지통(phantom pain)이 있다. 다리가 없는데 지독하게 다리가 아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것은 뇌에서 오는 신호다. 오랜동안 다리가 있음을 인지하던 뇌는 갑자가 사라진 다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다리를 관장하던 뇌세포는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야 다리를 관장하던 뇌세가 쓸모가 없어져 기능이 퇴화하는 것이다. 그때서야 환지통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물론 다른 기법으로 환지통을 방지하는 방법도 있다. 빌리야누르 박사(Vilayanur S. Ramachandran)는 미러박스기법으로 치료하기도 한다. 여기서 통증이란 무엇인가로 들어가는 복잡한 이론이 전개된다. 그만두자.. 의사도 아닌데. 



정혜신의 사랑공부를 읽고 있다. 정영란에 이어 두 번째 읽는 공부의 시대 시리즈이다. 무지하게도 난 정혜신을 이번 처음 알았고, 그가 쌍용 해고자들과 세월호 유가족을 돌본 상담가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마도 다른 책에서 읽었을 터이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지나쳤을 가능성이 많다. 그 땐 누군가의 책 속 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정혜신 홀로 서있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 모든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녀는 보통을 넘는다. 그는 스스로, 모든 사람들이 '불안전한 인간'(75쪽)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한 나 자신도 비난하지 않아야 해요. 그러면서도 내가 왜 그런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 내가 불안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일상에서 자각할 수 있고,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심리적인 힘이 있는 사람, 그것이 '타고난 치유자'입니다."(77쪽)


아내는 보낸 후,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살아가야할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다. 그냥 그렇게 살다가 허무하게 죽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공감'이다. 그러나 상실의 아픔을 일반인들은 절대, 절대 모른다. 며칠 전에도 초등학교 동창 밴드에 나의 감정을 담은 글을 올렸더니 모두들 응원의댓글을 달아 주었는데, 오히려 상처가되는 글도 적지 않았다. 즉, 나의 상태를 그냥 받아 주기만 해도 되는데, 무엇을 해라, 하지 마라 등의 충고를 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내가 그러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의 부재가 가져오는 상실의 '환지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상담의 시작으로 본다. 의사의 권위로 분칠한 상담실이 아니라 그들의 현장, 삶 속으로 들아가서 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이 진정한 상담인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나라가 버린 사람들이다. 무지몽매한 수많은 이들이 국가의 그런 정책에 편승하고 있다. 아직도 세월호는 차가운 물 속에 있고, 단 한 번도 구조를 시도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억울한 것이다. 정혜신은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마을 회관에 밥을 차려 같이 먹는 이야기는 '환하게 슬프다.


"유가족들이 광화문에 나갔다가 물대포를 맞고 들어온 날, 도보행진하고 지쳐서 들어온 날, 경찰하고 대치하다 갈비뼈가 부러진 날, 그런 날에는 엄마 아빠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며 그래요. 여기서 잘 먹고 기운내서 또 나가자고요. 그러면서 환에게 울어요. 그래서 군량미라고 합니다. 이렇게 밥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울림, 치유적인 효과를 저는 현장에서 너무나 많이 느낍니다."(86-87쪽)


진짜 사람이다. 같이 울고 같이 웃는 것.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터뷰에 '리본 다는 것'에 대해 질문한다. 무슨 도움이 되냐구? 


죽음이 두려운 것은 완벽한 잊힘 때문이다. '내가 거대한 고통 속에 홀로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은 피해자를 살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평택 쌍용차 해고자들이 고립되었다고 느낄 때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농성하고 들러주고 분향해 주는 것을 보고 살힘을 얻었다. 노란 리본도 우리가 잊지 않았다고 알려 주는 것이다.(요약) 그들은 그것을 보며 살 힘을 얻는다.


노란 리본을 달아야 겠다. 그리고 이 말도 꼭 기억하고 싶다.


"한 사람의 품격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118쪽)


우리 사회의 품격은 그렇다치고 나의 품격은 어떤가? 문득 부끄러워 진다. 노란 리본을 달자. 그거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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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9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09-30 19: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시도해볼까 싶네요..

붉은돼지 2016-09-2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침 저도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전에 침대에 누워서 한 10여페이지 읽었습니다. ^^

낭만인생 2016-09-30 19:42   좋아요 0 | URL
금방 읽혀지네요.. 페이지도 얼마 안되구요.

나와같다면 2016-09-2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 비를 맞는거..

정혜신님의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저에게 많은 위로를 주는 책입니다

낭만인생 2016-09-30 19:43   좋아요 0 | URL
그 책도 읽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