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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들의 에세이란 소설을 쓰다 남은 글들의 잔반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생선에서 살을 발라먹고 남은 뼈대처럼 상상력은 다 사라지고 생각이나 신념의 뼈대만 남은 것 같은 느낌말이다.하지만 생선뼈에 남아있는 부스러기와 단물만으로도 밥 한 공기 후딱 비우게 되는 기가 막힌 경우가 있다. 에세이의 저력이란 바로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원더보이로 잘 알려져 있는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이다. 달리기 예찬을 하기로 작정한 책이어서 그런지 표지에는 빨간 코끼리가 운동화를 신고 달리고 있다. 이걸 간접광고로 봐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앞다리에 신겨진 운동화는 나이키와 매우 흡사하다. 달리기의 고통으로 숨이 가빠지고 무게란 고통을 배가시킨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듯 빨갛게 달아오른 코끼리의 생각 없는 눈동자는 우리들의 응원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고통의 순간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가지게 되고 살아있다는 그 감각을 늘 깨운다면 노인이 되지 않을것 같다는 필자의 삶을 따라가 본다.

 

모처럼 날아간 8월의 타이페이. 그가 그 여행에서 얻은 것은 8월의 타이페이는 두 번 다시 올 곳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열악한 여행지라 하더라도 너무 덥기 때문에 그 곳에서의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한다. 그 여행은 나흘이면 끝나기에. 죽기 전에 내가 다시 이곳을 올 수 있을까? 라고 묻게 된다면 영혼이 깨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어디에서고 반복한다면 누구의 영혼이라도 깨어있을 것이라는 것! 현명한 조언이다.

 

그가 말하는 비싼 고독.

옛날에는 혼자 있고 싶으면 뒷동산에 훌쩍 올라 사색에 잠기면 되었지만 이제는 산등성이까지 박아놓은 친절한 가로등에 의해 외로움이 숨을 곳을 잃었다. 자신의 고독을 염려하다 그의 오지랖은 ‘그렇다면 가난한 연인들은 어디에서 키스를?’ 에 미친다.

방해받고 숨어서 사색할 곳이 없어지자 결국 그는 사막에서 가장 비싼 고독을 사게 된다.

그리고 사막에서 <고독이란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감정이다.>라는 고독의 정의를 구매한다. 정말 값진 경험인 것이다.@@

 

친정집에 내려가 바닷가 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별이 무수히 쏟아지는 광경을 보게 된다. 인가가 드문 울퉁불퉁한 시골길에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모조리 끄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 무수한 별들 아래 하늘을 쳐다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를 내려놓지 않을 수가 없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가 너무 멋모르고 날뛰며 살고 있구나 하는. 고독과 두려움 앞에 자신을 세워놓는 것. 그것은 삶에 대한 진통제가 될 것이다.

돈이 없어 사막에 가지 못할 때는 가장 간단하게 고독을 살 수 있는 방법.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 쓰자! (좀 더운 고독이 되기는 하겠다.)

 

그가 말하는 추억 또한 별미이다.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p 161

 

추억은 그리움과 맞닿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경험으로 나는 <그리움이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나 물건으로도 대체시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감정이다>라고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추억은 포토샵처럼 턱을 깎거나 다리를 늘리거나 할 수 없다. 보정하는 즉시 그것은 상상이거나 왜곡이 되기 때문이다. 희미해지려는 피사체를 닦고 또 닦으며 우리는 시간과 사람과의 이별의 슬픔을 견딜 수 밖에. 하지만 추억은 그 모든 슬픔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만들 수 있는 기억보다는 둘 이상이 만드는 추억을 많이 만들라고 필자는 목에 힘을 준다.

 

내게 달리기는 내가 속한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그걸 육체의 지리학이라고 부른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길의 생김새와 각도와 냄새를 경험한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새들의 지저귐과 사람들의 안색과 바람의 느낌을 경험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말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온몸으로 경험할 수는 있게 되는 것이다.

p 273

 

‘달리기 전도사’의 임무를 맡은 이상 그는 달리기의 효능과 의의와 긍정적인 면을 최대화시킨다. 다음은 존 로우머라는 마라톤 애호가가 ‘마라톤을 권유하는 이유’이다.

 

달리기는 증오심과 공격 성향을 가라앉히고 우리의 자존심을 키워 더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자동차는 사라질 것이고 어리석은 사치와 억압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다들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테니 환경은 보존되고 인종차별은 없어질 것입니다.  p 260

 

글쎄. 달리기가 어리석은 사치와 억압에서 우리를 구원해주고 인종차별까지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리라는 확신은 없지만 자동차가 필수품이 아니던 시절에 우리는 훨씬 건강했었고 욕망에 덜 시달렸었던 것 같다. 두 다리는 자본주의로부터의 성역으로 생긴대로의 다리가 고유한 브랜드가 아니었던가. 더 큰 차, 더 좋은 차, 그것으로 인해 남들에게 보여 질 이미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조차 버거운 나에게 필자가 이야기하는 달리기의 매력은 솔직히 멀기는 하다. 다 듣고도 다 보고도 이렇게 덤덤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그가 그렇게 침을 튀며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저렇게 건강해지고 싶은가?’ 하는 눈빛을 보낸단다. 그러나 몸이 생각을 그친 곳에서 상상력도 솟는 것이며 그 곳에서 잠언도 시도 생겨난다는 그의 주장이 솔깃하다. 도를 전하는 심정으로 달리기의 중요성과 그것이 주는 삶에의 의미를 목 놓아 이야기하는 필자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착하고 순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가 달리기를 통하여 나누어주고 싶은 감정은, 신념은 이러할 것이다.

 

결승점에 들어가는 그 순간이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점이다. 그러므로 그 순간만은 나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 누구의 말에도 상처받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무적의 인간이다.

 

매일의 결승점을 끝내며 삶의 진정한 의미와 즐거움을 발견한 그의 미소가 예쁘지 않을 수 없다.

강하다,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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