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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툭 까놓고 나는 김영하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제목을 보고는 어라? 콧노래를 부르네? 먹고 살만해서 자기 집을 멋드러지게 지은 얘기인가보다 내 맘대로 추측해보았고 표지 제목 위로 쓰인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이라는 부연설명을 보고서야 ‘아하, 이것은 사는 집이 아니었구나’ 뒷북을 치면서 읽었다. 안경 때문인지 살진 가수 윤상 포스가 난다꾸나 속으로 킥킥거리다가는 본문 그림과 사진을 직접 담당한 것을 보며 평면적인 작가는 아니구나 싶어 구미가 당겼다.
랄랄라 하우스는 소설가적 발칙함으로 일상에서 잡아 끄집어낸 이야기모음이다. 2005년도에 발행된 책을 7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찍어낸 이유는 무얼까 검색질을 하며 시간을 할애해 보았는데 4년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최근 돌아왔고 올 10월에 소설 <검은 꽃>이 미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란다. 대박예감을 한 출판사 관계사들이 시선끌기용으로 재판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은교가 영화로 나름 성공을 거둔 이후 소설책 은교는 물론 훨씬 전에 출간됐던 박범신의 책들도 다시 처음인 척 쏟아져 나와 신문에도 대문짝만한 광고가 나지 않았던가.
그런 배경을 예상하며 집어 들었던 탓인지 딱히 새로울 것 없는 7년 전의 단상들은 솔직히 단조로웠다.
터키시앙고라나 페르시아 고양이를 고대하던 작가와 그의 아내가 어쩌다가 민간인에 가까운 방울이와 동거하게 되었는지, 주차장에서 하필이면 아내의 신발 위로 쓰러져 치우지도 못하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야했던 깐돌이와의 운명적으로 만남을 담백하게 따라가볼 수 있다. 그들과의 연애, 헤어짐까지..
버릴만한 나쁜 습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도덕군자형 극빈자. (...)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무거운 화물들을 배 밖으로 던져야 할 상황인데, 그녀는 화물을 하나도 싣지 않은 배와 같았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옹호하는 그를 만난다.
이건 내가 진통제를 다루는 방식과 좀 상극이 되겠다.
진통제를 많이 먹다보면 언젠가는 진통제가 듣지 않으리라는 불안을 아주 어렸을 적에 습득했다. 그래서 나는 병원에서 지어 준 감기약에 들어가 있는 진통제를 슬그머니 빼곤 했으며 자의에 의해서 삼켜본 것은 일생동안 고작 2번 정도이다.
저 인용문은 나쁜 버릇이 있어야 위험한 상황에서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응급으로라도 사용해본다는 뜻인 것 같은데 잡아야할 지푸라기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젊은 날 나쁜 습관을 많이 가지라는 그의 충고는 어찌 받아들여야할지?
아, 이건 랄랄라 하우스였지.
아마도 이 책 중에서 가장 감동의 수위가 높은 것이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GO'에 나온다는 권투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왼팔을 앞으로 똑바로 뻗은 채로 몸을 한 바퀴 돌려보면 그 원의 크기가 대충 나라는 인간의 크기가 된단다. 그 원 안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로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 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청와대비서실에서 잘 사용하는 외래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재미있다.
‘로드맵’ ‘태스크포스’ 같은 외래어를 남발하는 그들의 심리는 ‘반응지연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래어를 들으면 그 말뜻이 무엇인가 생각하느라 반응할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마치 <김대리는 퍼포먼스는 좋은데 퍼스낼리티에 문제가.....>
당신은 어느 부분에서 화를 낼 것인가 라고 묻고 있다. 정말 애매하다.
이게 무슨 영어듣기평가문제도 아니고.
태극기 단상에서는 자못 진지하고도 비판적인 김영하를 만난다.
한 페이지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채워가던 책이 느닷없이 단상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무려 9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태극기는 공장에서 나염공장에서 찍어낼 뿐인데 완성된 순간부터는 신성이 부여되어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태극기를 못생기게 그린 것만으로도 지도한 선생님까지 체포될 가능성이 있었던 어두운 시절을 회상한다. 태극기에 부여된 ‘턱없이 고상한 권위와 위엄’을 거부하고 있다. 맹세도 필요로 하는 탐욕스런 신으로까지 보았으니 태극기 사랑은 독재의 춘몽이었던가.태극기를 앞세워서 이념논쟁을 하고 깃발아래 하나로 묶이지 말라한다. 태극기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고 목터지게 강조한다.
저자는 독서에도 일정한 훈련과 의식적이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설은 춤과 같아서 처음에도 즐겁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더 큰 즐거움을 준다고.
감정이입을 통한 즉각적 수준의 감동보다는 텍스트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고 하니 이런 노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는 책을 읽다가 저자가 재미있게 읽었다는 책 제목들이 나오면 노트에 메모하곤 하는데 아예 대놓고 정답 알려주듯 이러이러한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시오 하고 꼭 찍어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덕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즈무라 미나에, 시오노 나나미, 오르한 파묵,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 파울즈, 플로베르,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들의 이름을 써본다.
독서도 하나의 숙련된 기능이라고 하니 여태껏 스트레칭을 했으니 어디 본격적으로 근육 좀 붙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헛둘, 헛둘.
마지막으로 그가 내게 남겨준 가장 유익한 충고를 적어놓는다.
질문은 힘이 세다, 세상은 질문하는 자의 것이고 답변만 하다가는 질문하는 사람의 뜻대로 살게 된다는 말씀.
그가 랄랄라 하우스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삶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답은 고도로 훈련된 책읽기에서 얻으시면 어떤가요?>
하는 은근한 권유가 아닐까.
리뷰쓰기를 마친 나는 그가 쓴 책들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