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시크릿 - 시크릿은 없다. 최고의 실력을 갖춰라!
이지성 지음 / 다산북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최근 몇 년 사이 성공학에 대한 대중들의 열기가 엄청나게 뜨겁게 달아 올랐다. 그러한 관심의 포화가 집중된 원인에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그 최선두에 론다 번의 「시크릿」이 있음은 월간 베스트셀러의 순위만으로도 그 인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그녀가 주장하는 주요원리인 끌어당김의 법칙에 매료되고 앞 다투어 배우고자 하였다.


격렬한 열광도 잠시 타오르다 사라질 것으로 비쳐 보인다. 인류의 1%만 알고 간직하고 있다는 놀라운 비밀이 허점투성이의 모순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고 그에 따른 논리적 허구와 궤변에 대하여 지적하기에 이르렀으며 실망감을 맛보았다.


이런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녀가 끊임 없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구하고 믿고 받으라"는 염원이 현실로 이루어지기에 어딘지 모를 불완전한 상태가 지속될 것이며 환상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게 된 예정된 결과라 하겠다.


인간의 말초적인 심리를 자극하여 성공을 갈구하는 나약한 본성에 기대어 잠시나마 우리를 달뜨게 한 것은 좋으나 이러한 기회를 빌미로 도통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이론을 들먹이는 것은 사이비에 가까우며 배금주의로 물든 현실을 더욱 삭막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게 한다.


이러한 「시크릿」의 문제에 대해 「꿈꾸는 다락방」의 저자 이지성씨가 「노시크릿」으로 통렬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그 또한 나름의 성공원칙을 오랜 추론과 연구를 통해 자료를 축적하고 성공사례를 모아 이미 R=VD라는 공식을 완성하였기에 차재의 「시크릿」의 반박에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이 있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반박의 논리적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용단과 굽힐 줄 모르는 확신에 찬 소신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싶다. 엇비슷한 처지와 위치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타인의 주장과 이론을 반박하고 그에 대한 논리적 허구를 지적한다는 것은 본인의 주장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상당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할 이정표 내지는 인식의 틀을 확립하여 준다. 「시크릿」에서 일관되게 주장되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무행동의 모순에 대하여 실랄하게 비판하고 냉철한 일침을 가한다.


나아가 「시크릿」을 구성하고 있는 성공사례들에 대한 현실적 허구성과 인터뷰어들의 면면을 낱낱이 소개하여 비논리적 이론에 대하여 철저하게 헤짚어 놓아 비판의 기본인 검증자료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려 하였다.


또한 저자는 「시크릿」을 중심으로 성공학을 대변하는 유명한 성공학자들의 기본 중심사상이 초기 힌두교의 교리에서 비롯되어 근본사상과 가치관이 동질의 것임을 시사한다. 그들은 이러한 종교적 관점에서 현대적 의미의 믿음으로 유추 해석하여 취사선택함으로써 근원을 찾기 힘들게 되었으며 겉만 번드레하게 치장하여 확대 재생산하였음을 비판한다.


그러나 저자의 이러한 용기와 결단이 모든 것을 밝히고 보여 주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건전한 상식이 통용되고 스스로 여과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으며 나아가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할 수 있는 문화적 장치들이 보이지 않는 시스템으로 얽혀 돌아가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의 말미에서 또 다른 비판에 대하여 겸허하게 수용하고 포용할 것임을 언급한 것은 애써 그의 심정을 대변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나서서 밝히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밝혀 질 수도 있을 일이겠으나 「시크릿」의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덜 영글어진 우리의 꿈이 온전하게 자리 잡지 못하게 됨을 안타까워 하는 심정으로 퇴고의 힘겨움을 이겨 냈으리라 본다.


제 아무리 치우침 없는 객관적 비판을 가하고자 하나 어디까지나 주관적 감정이 개입되어 이루어 진 일이기에 그에 대한 겸허한 비판은 달게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대한 오늘날 반응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배타주의적 감성에 길들여진 나약한 우리네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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