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설기도
김소진 지음 / 베다니출판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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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는 거의 서평작업을 하지 않았다. 최근 내 처지가 한가하게 독서삼매에 빠질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가족들을 서울에 놔두고 혼자 제주로 내려와 살길을 모색중이다. 몇달 째 길이 막혀 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같이 따라나오지 않는 아내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슴 속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어떤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토설기도>라는 책을 만났다. 

책은 나에게 외식의 벽을 깨고 정직하게 토해내라고 주문한다. 우리들은 기도로 나아가지 않고 분노의 감정에 빠져서 자신이 칼을 들고 설치기가 쉽다. 아니면 사람에게 우리의 감정들을 토해내기 쉽다. 우리가 직접 분노하고 칼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사람을 의지하여 사람에게 아픔을 토해내면 실망하고 허무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내에게 내 감정을 토해냈다면 아내와 나는 영영 남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토해내야만 했다. 따라오지 않는 아내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로는 내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토설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토해 내는 기도하라는 것이다.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그렇게 토설기도를 계속하게 될 때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만져 주시며, 우리 안에 평강을 주신다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이 ‘펑’하고 뚫리도록 해주신단다. 속사람이 강해지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기도하면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던 것이 사라지게 만든단다. 오늘에 집중할 수가 있게 되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되므로 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토설기도는 마치 만병통치약 광고처럼 내게 다가왔다. 믿음으로 살려고 했던 다윗도 계속적으로 주변으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당하였다. 그때 어떻게 했나?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3-8)

이 책은 저자의 삶과 주변인의 삶 속에서 경험한 토설기도의 체험을 담고 있다. 토설기도가 현학적인 인식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에서 건져낸 삶의 지혜라는 이야기다. 제주의 주변 지인들에게 토설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다. 대부분은 그런 기도는 안한다고 말을 한다. 요번 주에 서울에 잠시 다녀와야 했다. 서울의 지인들에게도 토설기도를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대부분이 토설기도 경험이 있다고 말을 한다. 제주와 서울의 지역적 차이말고 또 다른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제주보다는 서울의 삶이 더 치열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은 문제를 안고 산다. 또한  그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 것이다. 서울에서 수리를 맡긴 노트북을 찾아나오다가 버스정류장에서 한눈 파는 사이에 도난을 당했다. 그 순간 사람들이 다니는 한 길가에 서서 열심히 토설기도를 했다. 노트북을 가져간 놈의 다리가 부러지게 해달라고 저주하며 기도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마음에 평정심이 돌아왔다. 지금은 노트북을 가져간 사람이 잘 쓰게 해달라고 기도가 나온다. 그 노트북엔 수천장의 기독교 성화사진이 들어있다. 수년간 모아놓은 수고의 산물이다. 그 성화들로 그 사람이 변화되기를 기도해 본다.

아내는 역시 그냥 서울에 남겠단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도 지금은 담담해진다. 나는 이미 하나님께 그녀에 대한 문제를 토설했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이 일을 하실 차례다. 아내도 나에 대해 토설기도를 했단다. 나를 저주하고 비난하고 그리고 이젠 용서했단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이제 서로에게 직접적인 언어공격을 피한채 하나님께 의지한다.

다시 제주에 내려왔다. 다음달부터는 조그만 여행자카페를 시작한다. 그걸 운영하면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토설기도의 소재로 등장할까? 내겐 원수같은 사람들이 결국 내 선한 이웃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방법을 안 셈이다. <토설기도>의 저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저자에게 영감을 준 성령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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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칼
데이빗 월커슨 지음, 탁영철 옮김 / 베다니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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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음성에 순종하고 자신의 전 생애를 온전히 바쳐나가는 여정,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감동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때문이다. 이 책이 나에게로 온것도 순탄치 않았다.인터넷 카페의 서평단 모집에 응모했고 선정이 되었지만 책은 몇주가 지나도 우송되지 않았다. 일주일 간격으로 카페 게시판에 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글을 올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관리자에게 쪽지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책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내게 어렵게 다가왔고 한동안 울어본 적이 없는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다. 그러나 그 모든 드라마들이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감동은 진실에서 나온다. 위선은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 진실이 있다고 나를 믿게 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나에게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1500만명에게 동일한 경험을 부여했고 영화배우 팻 분(Pat Boone)이 나오는 5천만명이나 감상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팻은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더이상 "예전과 같은 사람으로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한다. 나 또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 삶에 간섭하시는 어떤 힘이 존재함을 느낀다. 독자들도 그 경험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펜실베이니아 서부지역의 작은 시골교회 젊은 목사인 데이빗 윌커슨은 어느 늦은 밤, 서재에 앉아서 <라이프> 지를 읽다가 뉴욕에서 소아마비 소년을 일곱명의 아이들이 칼로 살해한 사건을 담고 있는 내용에 눈이 멈추었다. 가해자인 한 소년의 사진에서 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소년의 눈빛에 나타난 당황함과 증오와 절망이 그의 뇌리를 사로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뉴욕에 가서 그 소년들을 도우라"

우리는 누구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산다. 이 내면의 소리는 항상 두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하라'와 '하지마라'다. 선택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지만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쪽이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혼란스러움을 핑계로 자신에게 들리는 그 내면의 소리를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더 이상 내면의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데이빗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명령에 순종한다.

뉴욕에서 그는 수많은 비행 청소년들을 만나고 마약과 폭력에 시달리고, 분노와 섹스에 탐닉하는 그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그것은 이내 큰 물결처럼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내었다. 이 책은 그 순종으로 얻게되는 놀라움 체험들로 빼곡하다. 칼을 버리고 십자가를 택한 십대 불량청소년이었던 니키는 이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런 베이비 런>(Run, Baby, Run)의 저자가 되었다.  

현재 전세계에 위기상담 및 홈리스를 위한 거주센터를 두고 있는 청소년 사역센터 '틴 챌린지'의 시작과 성장이 이 책의 주요 줄거리다. 책은 벌써 45번째 특별기념판으로 나올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책의 주인공인 데이빗은 2011년 4월, 80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그가 교통사고로 죽기 전에 올린 블로그 글에서 위로를 받는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지금 당장은 네게 이유를 말해 줄 수 없지만 언젠가는 모두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내 계획의 일부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네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견고히 붙들어라. 네 고통의 시기에 나로 너를 품안에 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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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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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삽화도 잘 그리지만  

글은 또 얼마나 잘 쓰는지 
 

 

 제주 촌놈이 서울에서 장가들고 거기서 직장 다니고 아이들을 길렀다. 20여년 세월을 그렇게 서울에서 보냈다. 게다가 건축잡지 기자로 일했으니 서울 구석구석 안가본 곳이 없다고 자부할만하다. 그런데 이 책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를 보고서는 꼬랑지 내리고 말았다.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올레 17코스를 걷다가 들어간 카페 닐모리동동에서였다. 카페 손님들을 위한 책꽃이에서 이 책을 찾아낸 초등학생 아들이 먼저 급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빠! 이 책 좀 봐바.", " 뭔데?", 아들 손에서 책을 나꿔챈 나는 한참을 책 속에 빠져들어갔다. 책 속에 그려진 시간들은 그 서울의 시간들은 결국 나의 시간들이었다. 나는 지금 홀로 제주에 산다. 겨우 육개월째이지만 그래도 더더욱 내가 보낸 서울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아들은 이 책 서평이 완료되면 빨리 책을 보내 달란다. 아들에게도 서평을 써보라고 해야겠다. 
 

 

도시공학을 전공한 일러스트의 시각으로 바라 본 서울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수백년의 적층을 들춰내다보면 또 나오고 또 나올 것이다. 해외 도서들 중에 이런 류의 책들을 간혹 본적이 있다. 파리나 뉴욕의 뒷골목 스케치와 함께 소소한 단상의 글들이 들어 있는;;;. 그런데 그런 책들에 대한 부러움을 이 책이 일거에 날려버렸다. 게다가 그 풍부한 삽화라니;;;; 도대체 신은 왜 이리 불공평한거람? 이 사람. 삽화도 잘 그리지만 글은 또 얼마나 잘 쓰는지 몰라;;; 처음엔 그저 네이버백과에나 나온 글이려니 하고 들여다 보는데 하나하나 자신의 눈으로 보고, 손과 발로 만져보고 걸어본 이야기들로 채워 넣은 것이 아닌가;; 정말 불공평해;;;; 집요함까지 주시다니;; 헐헐;;;;

요즘 블로거들은 카메라 찍기가 대세다. 그래서 다들 웬만하면 데세랄(DSLR)을 들고 다닌다. 파워 블로거들 중에는 그동안 찍고 쓴 단상들을 모아 책 한 권 내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또 하나의 유행이 있다. 10년도 더 전에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목터지게 외쳤었지만 찻잔의 태풍으로 끝나버린 그 구호가 이제는 우후죽순처럼 서점가의 진열대를 장악해 버린 것이다. 나는 이 현상이 너무나 반갑다. 주커버그가 모든 사람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것을 꿈꾸던 그 상상력으로 페이스북을 만들었듯이 재기발랄한 이런 작가들이 계속 등장해 그 충만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독자들의 눈을 그리고 읽는 즐거움을 배가 시켜주니 말이다. 가히 이제 세상은 인문학적 상상력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 책은 안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시와 골목, 최신식 건물들과 유적과 심지어 유물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이 책과 카메라를 들고 작가가 걸은 길을 따라가 보고 그가 그린 스케치와 동일한 앵글을 찾아내서 찍어보라. 어차피 당신은 이 작가만큼의 스케치 실력은 없을테니까;;;;(앗 아니라구요? 죄송;;;) 그리고 작가가 찾아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지 그것도 탐색해 보라. 이제 블로그 쓰기 창을 열어 몇번 정리해 가다보면 당신의 표현력이 갑자기 쑥쑥 자라난 것을 느낄 것이다. 당신의 안목이 더 성장했음을 미리 축하하고, 그 감사는 저자 이장희에게 돌려라. 그의 다음번 도전이 자못 궁금해 진다. 

흠 잡을데 없는 이 책에서 딱 한가지 굳이 대라면;;; 글이 조금 독백조다;;; 그래선지 너무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이다. 다음번에는 좀 통통 튀는 그의 글 맛을 기대해본다. 왁자지껄 따라다니는 탐방객들 앞에 서서 마이크 잡고 웃겨주고 울려주는 그런 목소리를 담은 글이라면 어떨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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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죄 죽이기 - 삶 속에서 죄를 죽이기 위한 9가지 방법, 개정판
존 오웬 지음, 김창대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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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죄 죽이기

죄를 이겨나가는 즐거움 

 

 

청교도 신학의 최고봉 이라 하는 존오웬이라지만 그의 책은 처음이다. 이 책이 존 오웬의 대표작이라니 가히 궁금함이 앞섰다. 저자는 거듭해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열망하라'고 외친다.

태초의 인간이 저지른 죄로 인해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라는 다소 불편한 출발은 우리가 그 죄를 여전히 물려받으면서 죄의 인간으로 태어나고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 현실을 들여다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할 때 돌을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이 책은 의미있게 다가온다. 우리가 죄를 죽이려 죄를 자각하지 않거나 잊음으로 도리어 죄에 더욱 얽매이게 됨을 우리는 잘 안다. 어떤 죄는 무디어졌고, 어떤 죄는 심하게 가슴을 누르고, 또 어떤 죄는 기도하는 중 갑자기 생각남으로 바로 회개로 이어지는 것도 있다.

죄의 대한 그리스도인이나 현대인의 생각은 언제나 강박관념으로 다가온다.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죄가 늘 우리옆에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실제로 죄를 짓지 않고 살기가 어디 그리 쉬웠던가? 죄의 움직임이라는 것이 외관상으로는 고요해보이지만 그것은 조류의 움직임이 활발한 매우 깊은 바닷물과 같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우리 인생은 어찌보면  죄가 극단으로 내 딛는 것을 동조하거나 방조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제목이 좀 불편하다. '내 안에 죄 죽이기' 과연 죽일 수 있나? 내 의지로 내 안의 죄가 다 사라지게 할 수는 있는 것인가? 처음에 이 책을 접할 때 솔직히 약간 이단은 아닐까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죄를 죽일 수 있다는 이론이 자못 궁금해졌다. 그러나 이 책은 이론을 떠나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은혜 안에서 죄의 지배를 벗어나라고 주장한다. 또한 마음의 죄를 느끼고 늘 인식하며 염두에 두라고 가르친다. 분명히 우리 안에는 죄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은혜를 통하여 이겨 내야만 진정 죄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죄에서 해방되고자하는 열망이 없다면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육체의 병이 생기면 괴로운 나머지 바쁘게 치료한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병인 죄도 초기에 발견하여 신속히 치료해야만 한다. 한번 악을 행하기는 어렵지만 그게 쌓이다 보면 악행이 점점 커지고 나중엔 그 행동이 악인줄도 모르고 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원에  땅을 일구어 귀중한 화초 씨인 은혜를 받아 심었지만 주위에 잡초같은 죄를 방치해선 은혜가 자랄 수 없다. 우선 죄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죄와 싸워 이기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통해 죄 죽이기 보다는 은혜를 어떻게 자라게 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어서 더 좋다. 또한 중요한 것은 죄 앞에서 겸손해야 함을 배운다. 가장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모세와 바울도 그들의 지식이 온전함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그들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지식이란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죄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찔렀다는 걸 항상 기억하라. 우리는 죄의 결과에 대해서만 동요하지만 우리 안에는 무수히 많은 여러 종류의 죄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늘 죄에 대한 경계를 가져야하며 스스로 죄 앞에 겸손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도 죄를 죽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다만 다스리려는 노력을 죽을때까지 경주하며 사는 법을 배웠다. 9장에서 이 책의 결론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죄를 다스리기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 들이다. 죄를 통제하기 위해선 그리스도의 죽음의 토대위에서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내안의 죄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결론을 짓는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 책의 한문장 한문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책을 읽는 즐거움과 함께 죄를 이겨나가는 즐거움도 같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죄를 다스리고 싶은가? 거룩한 삶을 살고 싶은가? 그럼 은혜안에 거하면 된다.

 

존 오웬 (John Owen, 1616-1683) 존 오웬은 영국 청교도 신학자와 설교자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청교도의 황태자’ 또는 ‘영국의 칼빈’이라고 불리며, 어거스틴, 루터,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교회사 최고의 영적 거인 중 한 사람이다. 존 오웬은 열두 살에 옥스퍼드의 퀸즈대학에 입학해 1632년에 학사, 1635년에 석사를 마쳤으며, 후에 옥스퍼드 부총장까지 역임했다. 특히 오웬은 십대 학창시절 동안 매일 18∼20시간씩 엄청나게 공부에 매진하면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와 같은 고전어의 통달과 고전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랍비문학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쌓았으며,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고대 교부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 스콜라 신학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이러한 바탕 위에 개혁신학을 구축하여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오웬은 학문과 경건을 결합한 대표적인 인물로서 히브리서에 관한 교회사 최고의 책이라 할 수 있는 4000페이지 7권으로 된 히브리서 강해를 비롯하여 주옥같은 50권 이상의 단행본과 수많은 설교들은 1850∼55년 굴드에 의해 24권의 전집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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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서 빈둥거리다 길을 찾다 - 명문가 고택 편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3
이용재.이화영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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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은 있지만 현실에 안 나가는 선비가 한량이다. 요즘은 현실감각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한량이라고 하지만 옛 한량들은 현실감각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속의 때를 묻히기 싫었을 뿐. 그들이 그렇게 살면서 찾고자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찾다 보면 거기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
- 저자의 인터뷰 서문 중에서

저자 이용재는 건축잡지 쪽에선 선배이기도 하다. 단 한번도 얼굴 마주쳐 본적이 없는;;;. 먹고 살기 힘든 건축잡지 사정은 그 만큼이나 나도 뼈저리게 느꼈던 바다.  나도 건축잡지 편집장 직을 때려 치우고 돈이 좀 되는 건축자재에서 10년 세월을 보냈다. 그 10년 세월을 이용재 선배는 길에서 보냈다. 택시운전수를 하면서 문화기행을 다니고 또 글을 쓰고;;; 그러다가 2007년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이 대박이 나버렸다. 택시기사 5년만에 이뤄낸 성과! 이제 그는 진짜 한량이 되었다. 본인은 한사코 빈둥거렸다지만 이번 낸 <고택에서 빈둥거리다 길을 찾다>에서 보듯 21개의 전국에 산재한 명문 고택들을 찾아다니고 또 책을 만들어 낸 것을 보면 말만 빈둥거린 것이다. 그는 치열하게 자신의 삶과 대면했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길에서, 고택에서 찾아내었다. 빈둥거림을 미학의 경지에까지 끌어 올린 선배에게 박수를 보낸다. 게다가 그의 딸 이화영까지 이번 책에 공동저자로 나서서 이 책의 읽은 즐거움을 배가 시켜 놓았다.

60년생과 91년생, 한 세대라는 간극이 공동집필로 메꿔진듯하다. 도대체 이 맛깔스런 책은 누가 더 기여를 한거유? 암튼 이제 영국으로 디자인 공부하러 간다는 딸에게 이 서평으로 응원 메시지 대신 전한다. 그리고 이제 제주에 낙향해서 선배말처럼 한량으로 살아보려는 나에게 이 책이 너무나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아울러 전한다.

21세기 디지털시대에 웬 고택 이야기? 게다가 고택으로 우려먹은 책들도 사실 서점가에 넘쳐나는데. 하지만 이용재는 고루하고 따분하다는 고택에 대한 선입견을 부셔버린다. 그만의 해학적인 글쓰기를 통해서다. 페이지마다 한 두줄로 쓰여진  그의 해학적인 코멘트를 읽어보라. 게다가 촌철살인 같은 그 짧은 단문들이라니;; 생각을 표현하는데 단어 몇개 뿐인 문장의 나열로도 충분한 의미를 전달하는 그의 글쓰기를 보고 새삼 내 잡문이 부끄러워진다. 책에는 일단 사진이 많다. 287페이지나 되니 작은 분량도 아니지만 마치 잡지를 보듯 편한 레이아웃과 글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고택투어 전문 여행사도 생겨날 판이다. 

그가 고택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에겐 오래된 미래를 만나는 공간이다. 그가 찾아다닌 고택들은 괜히 명문가가 아니다. 그냥 오래됐다고 고택이 아니다. 저자는 하얀 공간, 무념의 비워진 공간을 꿋꿋한 ‘선비정신’으로 오랜 세월 채워 온 명문가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 넣었다. 그래서 고택에 남겨진 선인들의 삶의 자취를 과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미래로 치환시켜 놓았다. 그는 왜 고택에서 빈둥거려 보라고 했을까? 고택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은, 물론 깨달음은 애써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다. 선비정신이 깃든 곳에서 마음을 비우고 어린아이처럼 빈둥거리는 것! 그 자체가 새로운 인생체험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잊고 살던 것들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그가 만일 고택의 건축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냈더라면 그저그런 책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대여섯권의 책을 집필하면서 그는 많이 약아졌다. 이제 그는 장안의 지가를 올릴만한 이야기꾼이 되어버렸다. 고택에서 찾아낸 권력과 인생의 허망함, 꼿꼿한 선비의 절개, 학문과 예술, 나눔과 베품 등을 그만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버무려 놓았다.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을 인문학의 반열에 올려 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감히 말하건데 이용재 선배가 이제서야 확실하게 그 길을 텃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는 설계하는 건축가는 아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건축이란 법규와 재테크의 수단이란 굴레 속에서 헤맬때 그는 건축을 이해하는 방법론을 너무나 쉽게 풀어놓았다. 그것이 공학이 아닌 인문학적인 건축 바라보기의 시작이다. 이제 고택에서 시작했으니 그가 써대야 할 인문학적 건축 바라보기는 그 소재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더불어 사람들의 건축에 대한 안목, 그리고 건축가를 이해하는 안목이 높아져서 우리네 건축문화의 질이 한결 높아질 걸 생각하니 흐뭇하기까지 하다.    

이 책 서문에 넣은 소설가 이경자의 글에서 한 가지만 고치고 싶다. "건축가 김수근이 건축은 냉동음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라는 첫 문장이다. 원래는 바흐가 말한 '건축은 동결된 음악'이란 표현인데 김수근 선생이 그리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냉동음악'과 '동결된 음악'은 표현의 미세한 차이가 아닌 것 같다. 건축판의 식자들은 결코 냉동음악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다음 판에서는 수정했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저자는 고택이라는 동결된 음악을 잘 해동해서 맛깔스런 요리로 밥상 위에 올려 놓았다. 독자들은 그저 숟가락만 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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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10-0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