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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주변이 부담스러웠을까, 효용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일까?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대중들로서는 반겨야할 일이지만 과연 부자나 기업들이 순순히 정부의 부탁(?)을 들어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래퍼곡선을 창안한 아서래퍼는 증세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한다는 위린 버핏을 위선자라 언급하며 두루뭉술한 정부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래퍼의 이론은 돈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금이 줄어든다고 부자나 기업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간교하게 세금을 줄일 방법을 강구할 것이며 이는 정부가 목적한 증세의 기대효과와는 달리 경기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증세는 감세만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래퍼는 버핏이 말로만 증세를 주장하지 말고 절대적인 세금기준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버핏의 위선적인 선행(?)을 꼬집는다. 워린버핏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제정책이 그만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비는 경제성장의 주춧돌이다. 올바른 소비는 저축과 더불어 가계와 기업에 큰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무분별한 소비는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소비는 인간의 한계점을 벗어나기 일쑤다. 흔히 탐욕이라 불리는 인간의 욕망은 항상 거대한 거품을 양산해왔다. 자유개발 경제체재 하에서의 소비는 성장의 견인 돌로 미덕이란 칭호까지 받아왔다. 하지만 과도한 소비를 떠받들고 있었던 건 부채뿐이었다. 제조업 지수의 하락, 실업률 상승, 소비지수 하락, 의심하지 않아도 미국경제의 침체는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닐까? 오히려 신용사회를 부추기며 과도한 부채를 권장한 정부와 기업의 입장은 더욱 애매모호하다.

성장 없는 경제는 죽은 것일까? 경제의 근원적인 목적은 오로지 성장에 대한 환상과 이윤추구뿐일까? 출처를 알 수 없는 파생금융상품의 난립이 성장에 그토록 필요한 도구였을까? 제조업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금융장세는 세계경제의 파이를 엄청나게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의 든든한 배경을 완성시켜준 것은 소비를 통한 탐욕이었다. FRB와 미국정부는 무제한적으로 달러를 찍어 시장에 풀면 경기가 저절로 회복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토록 믿었던 시장의 역할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편협한 믿음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것이란 믿음 못지않게 미국인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상황을 일거에 무너뜨린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학의 배신’은 우리 믿음에 대한 배신이다. 실패를 거듭한다고 경제시스템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며 화폐경제의 불합리성 때문에 돌연 물물교환의 시대로 회귀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우선적으로 경제학적 명제를 새롭게 고찰할 필요를 느낀다. 그토록 믿었던 경제학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가? 합리적인 시장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결해주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상황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빈과 부의 격차는 더욱 격심해지고 사회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우린 인간이 아닌 인격체로서 자본이라는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 시장자본주의는 대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새로운 특권층을 위한 통제 권력으로 바뀌어버렸다. 통제적이고 일률적인 시스템 하에서 마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은 역사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의 배신은 통치자가 되어버린 시장의 비합리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한 이면에 감추어진 기업들의 반사회적 인격이 어떻게 공공재의 기능을 무너뜨리는지를 기업의 윤리관(?)과 대중의 무관심을 통해 직접적으로 고찰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경제학은 대중의 방관위에서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의 전환을 요구한다. 시장이나 돈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경제의 참다운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이 오직 이윤과 편익에 중심을 두었다면 이젠 경제학적 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단순히 양적팽창으로 풀려는 것 보단 대중의 이해와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경제학이 탄생할 주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자신이 보고 가는 길은 정상이라 말하지만 대중이 보기에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경제학의 허상은 자신의 믿음만이 옳다고 우기는 ‘안톤의 실명’과 흡사하다. 대중의 눈을 무시하고 소수의 판단이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정책적 논리는 그들 앞에 놓인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오직 경제학은 참다운 정치 기반에서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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