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번영,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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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경제학은 ‘악의 근원지’ 일까? 과연 자본주의는 더 이상의 효용성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일까? 코엔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악은 이미 번영일로의 길에 들어섰다. 아니 너무 번창해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자주 연출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일부로 시작한 경제학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우린 왜 경제학의 이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경제학은 인문학을 넘어 종교적 현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뛰어난 철학가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하기위해선 지금의 경제학만으론 분명한 한계가 보인다. 맹목적인 믿음 뒤에 따르는 고통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변수다.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양화란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놀랍게도 찬란한 문명들이 서양화란 그늘에 가려 무수한 짓밟힘을 당했다. 중국이 그랬고 인도가 그랬다. 하지만 21세기 세상의 쏠림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성장,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비상은 분명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린 그들의 성장 뒤에 숨겨있는 어두운 이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자전거 한 대씩을 사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동차 한 대씩을 보유하게 된다면 지구는 생존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바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성장을 멈추게 할 어떠한 명분도 찾지 못하고 있다. 코엔은 사이버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신흥강대국에서 뿜어대는 열기로 인해 노후된 서양화의 폐해가 우리를 뒤덮을 것이라 경고한다.

로마의 몰락과 함께 중세 암흑기가 도래한다. 당시의 유럽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질병이 세상을 초토화시킨 시절이었다. 부족한 식량과 인구문제는 항상 유럽인들이 해결해야할 생존의 조건이었다. 그들이 외부로 눈을 돌린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은 아프리카까지 항해를 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화약을 만들었지만 폭탄을 제조할 줄 몰랐고 나침반을 만들었지만 항해엔 관심이 없었다. 몽고의 침략에 고민하던 황제의 결정은 결국 서양화를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 이에 반해 12세기와 18세기 사이 어느 시점에 유럽에선 부가 부를 낳은 자기촉매과정이 탄생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계몽주의와 르네상스 그리고 산업혁명의 부흥이다.

코엔은 현대 경제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특히 갈수록 첨예해지는 도덕적 논란과 근거가 없는 금융상품의 폐해를 예로 들며 앞으로 인류의 집단적인 자기파멸을 경고한다. 그 중심에 생태계의 파괴가 있다. 생태계는 그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문제와는 관점이 다른 문제다. 어떻게 되었든 모든 것은 지상이나 지하로 사라졌지만 근원적인 자원은 고찰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누구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했지 전 인류적인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강대국일수록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는 생산성 상승으로 가격이 낮아지는 만큼 ‘쉽게 쓰고 버리는 경제’가 세상을 휩쓸고 있다고 말한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경제의 오래된 논리가 지구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거의 없다해도 무방할 것이다.

‘악의 번영’은 상당히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무려 12장에 달하는 코엔의 해박한 지식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담고 있으나 너무 많은 것을 한곳에 보여주려한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의 총명함은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경제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꾸어 준다. 피하지 못할 두 가지의 종속변수가 항상 우리를 괴롭혀 왔다. 바로 인구와 토지문제다. 맬서스의 법칙이 더 이상 효용가치를 잃어버렸을 때 우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가져야만 했다. 하지만 파티를 깰 어떠한 명분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위기는 항상 풍요 속에서 탄생한다. 세계사를 전환시킨 대부분의 전쟁은 번영과 평화 속에서 발생했다.

과연 전 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은 존재하는가? 애덤스미스의 이론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역사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현상을 태동시킨다. 제3세계, 사이버세계는 인류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공존과 번영의 길목에서 과연 지구인들은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코엔교수의 뛰어난 경제학적 고찰과 서양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고려해볼 시간이다. 패러다임은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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