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박종대 옮김/열린책들/2021
인터넷으로 자료를 베끼는 방법
p.65
인터넷상에는 자격 있는 사람들이 만든 믿을 만한 사이트 외에 오류투성이 사이트도 정말 많다. 그런 곳에서는 어설픈 지식을 가진 이들의 졸렬한 글을 비롯해 정신 이상자나 심지어 나치 범죄자들의 글까지 난무한다. 그렇다고 모든 인터넷 서퍼들이 그런 웹 사이트의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모두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교육학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왜냐하면 요즘은 초·중·고 학생이건 대학생이건 특정 정보를 찾아볼 일이 있으면 전문서나 백과사전을 뒤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터넷으로 달려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온라인으로 접하는 자료의 적정성 여부를 선별할 수 있는 기술을 학교에서 주요 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교사들조차 학생들과 매한가지로 그것을 구분해 내지 못해 난감해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p.67
인터넷의 결함을 교육적으로 활용할 효과적인 방법도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주고 에세이나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인터넷상에서 전혀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 일련의 자료들을 찾아보고, 그것들이 왜 신빙성이 없는지 이유를 설명하시오!> 이는 여러 자료를 비교하는 기술과 비판 능력을 요하는 과제인 동시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분간하는 기술을 연마할 기회이기도 하다.
교사는 어디에 필요할까
p.75~
인터넷의 등장 이후, ... 아이들은 지식의 상당 부분을 학교 밖에서 습득하고 있다.
...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교사는 대체 하는 일이 뭘까?
...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 좋은 학급을 만들려면 단순히 사실이나 정보만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견들을 비교하고 토론하게 해야 한다.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분명 텔레비전으로 알 수 있지만, 다른 데도 아니고 왜 하필 거기서만 그런 분쟁이 끊이지 않는지, 그것도 초기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왜 계속 그러고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곳은 오직 학교뿐이다.
... 대중 매체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준다. 심지어 그 가치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매체들이 우리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을 두고 토론을 벌이고, 신문과 방송마다 그 독특한 논조와 타당성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곳은 학교뿐이다. 게다가 대중 매체를 통해 확산된 정보들에 대한 팩트 체크도 학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p.78
인터넷은 학생에게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만, 그 정보를 어떤 목적에 맞게 어떻게 찾을지,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거르고 선별할지, 또 어떤 기준으로 수용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음모와 비밀
p.101
음모론은 그 추종자들이 권력을 잡을 때만 실제 사건을 설명하는 이론과 같은 것이 된다.
음모의 심리학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많은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이 우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런 일은 드물지 않다. 우리로선 그런 불충분한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p.103
어떤 의미에서, 의심을 동반한 해석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킨다.
... 다행인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음모와 비밀보다 더 투명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음모는 그게 효과적일 경우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백일하에 밝혀지기 마련이다. 비밀도 마찬가지다. 비밀은 ...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게 돼 있다. 음모와 비밀이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건 어설픈 음모이거나 알맹이 없는 비밀, 둘 중 하나다.
비밀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힘은 그것을 숨기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밀이 있다고 우리가 믿게 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비밀과 음모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갖고 노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p.104
역설적으로, 모든 가짜 음모 뒤에는 어쩌면 우리에게 그것을 진짜 음모로 믿게 만듦으로써 이익을 보는 사람의 음모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두 명의 빅 브라더
p.119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에서는 극소수의 인원이 만인을 관찰한다면 같은 이름의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정반대다. 모든 사람이 극소수의 인원을 관찰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빅 브라더를 매우 민주적인 것으로 여기는 동시에 무척 재미있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가 방송을 보는 동안에도 우리 등 뒤에는 진짜 빅 브라더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p.120
<프라이버시>에 대한 국제회의에서 다룬 것도 바로 이 빅 브라더였다. 우리가 인터넷 웹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신용 카드를 사용하거나, 우편으로 무언가를 주문하거나, 병원에서 진찰을 받거나, 심지어 CCTV가 설치된 마트를 어슬렁거릴 때도 이제 이 진짜 빅 브라더는 속속들이 지켜본다. 모든 걸 감시하는 몇몇 권력 집단이 바로 그들의 정체다. 만일 이들의 활동이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의 등 뒤에서는 정말 엄청난 자료들이 축적될 테고, 이 자료들은 우리를 완전히 발가벗기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내밀한 면과 사생활을 훔쳐 갈 것이다.
지적인 말
p.123
<아시다시피 기자라는 직업은 감추어진 뉴스를 드러내기도 해야 하거든요.>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기자는 진실에 부합하는 뉴스만 전해야지, 진실을 지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촌스러운 상황을 드러내는 징표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는 콜카타에서 지구의 운명에 대해 토론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콜카타에서 누군가가 베를루스코니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지 나쁜 말을 하는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p.134~135
사람들은 왜 자신의 의무를 다했을 뿐인, 용감하고 신중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왜 불행할까? 그 나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정직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 요즘엔 이런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프로 정신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없다면 그 나라는 필사적으로 영웅적 인물을 찾기 마련이고, 그렇게 찾은 사람에게 금메달을 나눠 주기에 급급하다.
p.135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가 뭔지 몰라 일일이 지시 내려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나라는 불행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바로 그것이 『나의 투쟁』에 담긴 히틀러의 이념이었다.
히잡을 쓰라고 누가 명령했을까?
p.143~
최근에 이슬람 수니파에 속하는 예라히 할베티 형제단의 이탈리아 총대리 가브리엘레 만델 칸이 『이슬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 거기엔 얼굴과 머리카락을 가리는 히잡이 이미 이슬람 시대 이전에도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로 기후적인 원인에서 말이다. 그런데 히잡 착용과 관련해서 늘 인용되는 코란 24장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고 한다. 가슴만 가리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이슬람 연합회의 코란을 찾아냈다. 거기 24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독실한 여성들에게 이르노니 시선을 늘 낮추고, 순결을 지키고, 밖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 외에는 어떤 장신구도 내보여서는 안 된다. 또한 천으로 가슴을 가려야 하고, 남편, 아버지, 남편의 아버지, 자신의 아들, 남편의 다른 아들, 자신의 형제, 형제자매의 아들> 등을 포함해서 <여자의 알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 말고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매력적인 곳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 이란 학자 알레산드로 바우사니의 고전적 코란 번역 ... <베일로 가슴을 가려야 한다>는 규정을 발견했다.
... 코란은 여성들에게 단순히 정숙하게 입을 것을 요구했다.
... 그렇다면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라고 요구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만델은 어느 정도 고소한 심정으로 답한다. 그 인물은 바로 「고란도 전서」의 사도 바울이라는 것이다. 물론 바울은 이 의무를 설교하고 예언하는 여성들에게로 한정했다. 그런데 바울 이후 또 다른 기독교인인 테르툴리아누스가 코란이 나오기 아주 오래전에 자신의 저서 『여성의 치장』에서 이렇게 썼다.
너희는 오직 너희 남편의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한다. 너희가 다른 남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남편은 더욱 흡족해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 마리아의 후손들이여, 어떤 아내도 남편의 눈에는 추해 보이지 않는다. ... 세상의 모든 남편은 만일 기독교인이라면 아내의 방정한 품행을 중시하지, 아내에게 아름다움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 살갗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화장으로 왜곡하고, 눈썹을 검정 물감으로 길게 그리는 여자는 하느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 하느님은 너희가 베일을 쓰길 원하신다. 아마 남들이 너희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오호, 이제야 알 것 같다. 과거의 온갖 그림들 속에서 성모 마리아와 독실한 여성들이 왜 무슬림 여성들처럼 베일을 쓰고 있는지.
사랑과 증오
p.175~
사람의 계명은 우리에게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이 계명이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누구도 증오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은 통상 개별적으로 나타나지만) ... 반면에 증오는 집단적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특히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 이렇듯 독재 체제와 포퓰리즘은 대중에게 증오를 요구한다. 심지어 사랑을 표방하는 종교도 근본주의에 빠지면 증오를 부추길 때가 많다. 적에 대한 증오는 국민과 신도를 하나로 묶어 동일한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몇몇 사람을 향해서만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지만, 증오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나 한 국가, 한 인종, 다른 피부색이나 다른 말을 쓰는 인간 집단들을 향해 나와 내 이웃의 가슴을 분노의 불꽃으로 뜨겁게 한다.
p.177
이것이 바로 우리 인류의 역사가 예부터 증오와 전쟁, 학살로 점철된 이유이다. 거기엔 사랑이 끼어들 자리가 별로 없다. 사랑의 행위가 우리에게 내재된 견고한 이기주의의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고 나오려면 정말 불편하고 힘든 점이 많기 때문이다. 증오의 환희에 대한 우리의 본능은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민을 그리로 몰아가기 무척 쉬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반면에 인간을 보편적 사랑으로 이끄는 것은 나병 환자에게 입을 맞추라는 끔찍한 요구처럼 우리 체질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또 다른 아리스토텔레스의 발견
p.252
은유는 지금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우리 <눈앞에 바로 떠올리게>...
달리 말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은유에 과학적 기능까지 부여했다. 그것도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다시 발견하는 과학이 아니라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처음 드러내는 과학으로서 말이다.
몬탈레와 딱총나무
p.255
딱총나무를 그렇게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시인이 자연 속에서 실제 딱총나무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 따라서 산문의 원칙은 <사물이 먼저고, 말은 그다음>이다. 만일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사물을 잘 알고 있으면 그에 맞는 말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 반면에 시는 정반대다. 시인은 먼저 말과 사랑에 빠지고,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즉, <말을 먼저 장악하면 사물은 절로 이어지는 것>이다.
불신과 동일시
p.267
스칼파리는 괴테의 베르테르를 언급한다. 우리는 당시 얼마나 많은 낭만적인 젊은이들이 그 작품의 주인공과 동일시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안다. 그들은 그 이야기를 사실로 믿었던 것일까?
... 이유는 이렇다. 우리는 보바리 부인이 결코 존재하지 않은 인물임에도 그녀와 비슷한 운명을 겪은 여자들이 현실 속에 많이 있음을 알고, 또 우리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는 그녀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인생 일반과 우리 자신에 대한 가르침을 끌어낸다.
우리가 B를 아예 무시해 버리면?
p.287
아무리 <똥싸개>를 외쳐 대도 반응이 없자 나는 더 이상 <똥싸개>를 외치지 않았고, 그 뒤로는 좀 더 풍부하고 복잡한 어휘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 그런 어휘들을 감칠맛 나게 활용하는 나를 보고 부모님은 아주 유식한 아들을 두었다며 무척 기뻐하셨다.
골 빈 인간들과 신문의 책임
p.308
신문은 인터넷의 노예일 때가 많다. ... 이제 그런 습성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웹 사이트들을 분석하는 데 힘을 쏟는 게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