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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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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쓰리'가 무엇인가 했다. 일본 소설이니 영어 three는 설마 아닐테고. 표지의 그림이 '쓰리'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의 말처럼 '반사회적'인 소매치기이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내게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낯선 이름이고, 이 소설가의 책도 처음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흡인력이 있어 쉽게 읽힌다. 무엇보다 소매치기 장면의 생생한 묘사,인물 행동들의 묘사가 영화를 보는 듯 눈 앞에 그려진다.

주인공들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일어난 사건들, 그들간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지 각 인물들에 대한 부연 설명은 거의 없다.  

'나(니시무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맨 마지막 그를 죽이기 직전에 기자키가 "너 참 너저분하게 살았더군."이라고 한 것과 지난 날을 회상하는 아주 잠깐의 몇 몇 장면에서 '나'에 대해 유추해 볼 뿐이다.  

신처럼 이 세상을 휘두르는 기자키 외에 (아니 그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모두들 삶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정되고 지속적인 관계는 없다. 니시무라와 관계를 맺었던 유부녀 사에코는 헤어진 후 한달 뒤 자살했고, 신미도 살해당했다. 편의점에서 발견한 꼬마 소녀치기와 창녀인 그 젊은 어머니의 관계, 생활도 매우 불안하다. '내'가 그들을 도와줌으로써 그들은 나에게 조금씩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가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자키에게 약점으로 이용당하고 만다.  

기자키는 소름끼치는 존재다.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국가나 권력자보다도 더 큰 권력을 뒤에서 휘두르고 사람의 운명을 마음대로 정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자다. 기자키가 니시무라에게 들려준 '운명의 노트' 이야기는 기자키가 생각하는 최고의 쾌락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그가 예로 든 이야기는 끔찍하다)

기자키는 몇 가지 임무를 니시무라에게 맡긴다. 꼬마 소매치기와 그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임무 수행 전 꼬마 소매치기에게 상자를 주고 함께 공던지기를 한다. 작별인사를 하며 '시시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세상과 어울려 살 수 없으니 소매치기도 되지 말라고. 니시무라가 그 임무를 수행해 내는 과정은 이 소설에서 극적인 재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자키의 칼(그가 명령한)에 찔린다. 애초부터 그렇게 되기로 되어 있었다면서. 그러나 소설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으리는 암시를 남기며 끝난다. 기대할 것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라는 걸까. 혹시 속편이 나온다면 살아남은 내가 기자키에게 어떻게 복수를 하며, 그 꼬마 소매치기가 어떻게 성장해서 또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려지지 않을까. 

파편화된 인간관계가 일본 소설에서는 주로 많이 다루어지지 않나 싶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실제 우리 삶이 많은 부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 소설을 읽고 나면 금속성의 차가운 기운이 더 많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야기 중간중간 등장하는 '탑'. 실제 작가의 경험과 의식에서 나온 이 '탑'은 어떤 지향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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