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44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브렌던 웬젤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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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ng May (그리운 메이 아줌마)》로 뉴베리상을 수상한 신시아 라일런트 작가님의 그림책을 읽어봤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에 읽었던 책이라 기록이 없어서 잔잔하고 따스한 시선이었던 것만 간신히 기억이 나네요. ^^; 하지만 그림책에서도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역시나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어린 따뜻한 시선의 시적인 언어들이 백미인 기대 이상의 책이었습니다.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어린 생명은 저절로 자라지 않아요. 그때는 모르지만 해님과 달님, 바람과 비, 사랑이 없으면 도태되어 버려요.

 

물론 좋은 날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죠. 길을 잃기도 하고 주저앉아 버리기도 해요.

 

하지만 어두운 터널에 끝이 있듯, 가시덤불을 벗어나 만나는 환한 하늘처럼, 먹구름 사이를 가르고 땅 위에 발을 내리는 햇살처럼 희망이 있어요. Don't forget it. Never forget it.

 

아아~~ 정말 아름다워요.

 

그리고 세상에는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귀요미 2대장 개와 고양이 납시었어요~~

 

그리고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 돼요.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태어나고 자라고 죽습니다. 자연의 이치지요. 유한하고 부족함이 있기에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들인 것이죠.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요.

 

 

작가가 맘에 들어 보기 시작한 책인데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반해버렸지 뭐예요.

브렌던 웬젤이라는 분인데, 그림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 귀염성과 서정성이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그림이에요. 그리고 야생동물들의 그림이 많다는 것을 눈치채셨을 거예요.

홈페이지 (https://brendanwenzel.info/)를 검색해서 들어가 봤지요. 화면의 색감 놀랍지요? 선명하고 화려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공존하네요.

 

 

 

홈페이지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어요.

"브렌던 웬젤은 털과 깃털 있는 것, 비늘 있는 모든 것들에 무한 애정을 품고 있는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예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으며 잡지, 애니메이션, 책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요. 야생 생태계와 야생동물 보호에 매우 열정적인 활동가들과 공동작업을 많이 하는 그 역시 환경 액티비스트지요."

(Brendan Wenzel is an author and illustrator with great affection for all things furred, feathered and scaly. His work has appeared internationally in magazines, animations and in several books. Brendan is a proud collaborator with many groups working to protect and conserve wild places and creatures.)

아래는 브렌던 웬젤의 그림책들이고요. 좌측 상단에 《Life》 보이시죠? 바로 이번에 리뷰한 책이네요.

 

아래쪽 달팽이 그려진 이 책이 신간이라고 해요.^^ 일러스트 찾아다니는 그림책 세계에 제가 퐁당 빠져버린 걸까요?

신시아 라일런트의 정제된 시어 같은 내레이션과 색감과 그림체 모두 사랑스러운 브렌던 웬젤의 콜라보의 최상의 결합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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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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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여성의 정년 후'인 만큼

여성이 나이가 들며 겪을 수 있는 신체적, 정서적 변화와 함께

관계의 변화 및 현실적으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을

30년간 수많은 임상사례를 경험해 온 정신과 의사이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실제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매우 피부에 와닿는다.



일에 관하여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훌륭한 일'도 아니다.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44쪽)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였던 것처럼

이후에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내겐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이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내가 얼마를 벌든,

남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당연한 일이었다.



큰아이가 태어나며 어려움을 겪어서

어쩔 수 없이 퇴사를 선택했고,

재입사라는 쉽지 않은 기회를 포기하고 아이 곁에 있기로 했다.

하지만 일을 포기한 건 아니었고,

어떻게든 내게 가능한 일을 찾으려고 발버둥쳤다.

이전의 급여 수준, 복지 수준 모두 내려놓고

그저 내가 몰입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했을 뿐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사뭇 달랐다.



"남편 돈 잘 버는데 뭘 그렇게..."

(우리집 급여통장 봤어요? 어떻게 알아요?)

"자기가 되게 특별하다고 생각하나 봐요."

(특별한 사람만 일할 수 있어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타입인가 봐요."

(그러게요. 타고나기를 그렇네요.)

"부러워요. 저도 집에서 애들이랑 있고 싶어요."

(저는 돈을 포기한 거예요. 넉넉해서 집에 있는 게 아니고요.

그쪽도 포기하면 되잖아요. 남편분 S대 석박사 출신에 S사 다니고

목동의 30평대 집 살잖아요.)



언제가 정년일까? 그건 자기가 결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가 일은 이제 그만 쉬고 싶으면 그게 정답이고,

평생 현역으로 일하고 싶으면 그게 정답인 것 같다.



노화에 관하여



누구나 내일이 되면 오늘보다 하루 더 나이가 든다.

그 결과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지며,

흰머리가 생기고 나아가서는 병에 걸리고 몸이 불편해진다. (76쪽)



마흔밖에 안 됐는데 말끝마다 "나이 들어서 그래."라는 둥

우스개소리겠지만 나이를 의식하는 말이 난 희한하게 느껴졌다.

나이에 제한받지 않는다는 것은 좋지만,

나이를 무시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일단 살이 금세 빠지지 않는다.

맘만 먹으면 하루에 6킬로미터 정도 걷고

샐러드 위주의 식단, 1일 1식으로 2달에 8~9kg을 뺐었는데,

이젠 두 배의 노력을 들여야 될까말까 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얼굴에 생기는 기미.

정말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돈이 아까워서 곧 죽어도 못 가겠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유전으로 인해 30대 초반부터 새치가 생겨서

지금은 5~6주마다 새치염색을 하고 있다.

미용실에 가자니 돈이 아까워서 좀 좋은 염색약으로 집에서 하고 있다.



역시 노화라는 것이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을 위해 노력한다.



연예인들의 '안티에이징'을 보면서도 여러 가지를 느낀다.

일본의 구로키 히토미라는 연예인은 젊어보이는 외모로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 인기가 더 많은 것 같고,

우리나라에서도 2, 30대였을 때는 다른 여배우들만큼

각광을 받지 않았다가 50대에서야 주목받는 사람도 있다.

또 컴퓨터 미인이라는 과거의 영광에서 못 벗어나는 듯

거의 발악 수준의 외모 관리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저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그 추세가 일반인에게까지 퍼져서

간단한 미용시술 등은 40대인 내 또래들에게는 일상다반사이다.

화장 정도의 감각이랄까?

그러다 보니 그 정도도 안 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관리를 안 하는 사람처럼 인식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일단은 선크림이나 꼼꼼히 발라야겠다.



설렘에 관하여



친구, 취미, 직업, 좋아하는 음악과 드라마,

지금 하고 있는 운동, 마음에 드는 책이나 영화.

그럼 나만의 아이템이 많은 사람일수록

남편의 정년 후에 무슨 일이 있어나든,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든

그에 휘둘리거나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54~55쪽)



저자가 말하듯, 일이든 연애든 취미든

설렘과 기대를 줄 수 있는

나만의 아이템이 필요하다.

나는 힘이 닿을 때까지

책을 읽고 책을 소개하고 나누고 싶다.

그게 나의 설렘이다.

그리고 며칠 정도의 짧은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건강.



자녀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점점 독립해가며 그 비중이 줄어가겠지.

충실하게 내 일과 내 사람들로 채워야지.



노후의 실제적인 당면과제



싱글이든, 부부이든

소득감소, 주거형태, 부모 혹은 배우자의 병수발 문제 등은 미리 생각해서

어느 정도는 윤곽을 잡아둬야 할 것 같다.



늘 존경하는 시아버지께서 언젠가

당신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에게 부담없도록

상조회 가입해서 다 준비해놓으셨다고

귀띔을 해주신 적이 있다.



자식된 도리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드리고 싶지만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애들 키우며 살면서

경제적인 부분이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평생독신인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

일본에는 독신자를 위한 비영리기관이 꽤 있던데

우리나라에도 곧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독신자이든 기혼자이든 노후에 닥칠

현실적인 문제를 대비하면 좋겠다.



나이 든다는 게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뒷표지의 말처럼

하루하루가 빛나는 나날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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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서
에바 피규어 지음, 에바 알머슨 그림, 박세형 옮김 / 본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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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이 함께 하는 힐링 에세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글이 가슴 속 깊이 콕콕 박힌다.
글쓴이인 에바 피규어도 육아를 경험하고 있는 엄마인가 보다.

새로운 인생

비행기는 다행히도 추락하지 않았고 너는 낯선 세상에 도착한다.
택시가 노란색이거나 운하를 길로 이용하거나
2월에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곳.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너는 마치 모국어처럼 알아듣거나
거의 알아듣지 못하거나 아예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거리와 사람과 집과 햇살이 있다.

너는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찢어버릴 수도 있다.
눈에 띄지 않게 낯선 사람들 틈에 섞일 수도 있다.
그동안의 삶을 내던져 버리고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다.
빚도 없고 조만간 한번 보자고 하는 친구도 없고
끝내지 못한 대화도 없는 삶.

하지만 너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네게는 자식이 있고 얽혀 있는 인간관계가 있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있다.
이루어질 가망이 없기에 오히려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혼자만의 생각,
모든 걸 버리고 훌쩍 떠나는 상상, 미지의 목적지로 향하는 편도 항공권.
그것이 바로 자유일지도 모른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휴~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런 생각 수백 번도 더 했던 것 같지만
결론은 지금 있는 자리가 내가 있을 자리라는 확신.
하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고 훨훨 날아 갔다오는 건 내 자유.

출산 전, 회사 다닐 때는 1년에 한 번 정도씩 나를 위한 선물로
일본에 2박 3일 다녀오곤 했는데,
육아를 핑계로 작년에 무려 9년만에 도쿄에 갔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니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구나, 실감했다.
막히는 고속도로로 시집 가는 것보다 가까웠다.
머릿속으로 얼마나 그려보고 또 그려보고...
어떤 노래 가사처럼 그리워하다 미워하다 지워버렸지, 뭐.
내가 거닐던 거리가 있었고, 나에게 다정했던 사람이 있었고,
가을의 햇살과 밤에 내리는 가을비가 있었다.

하지만 책 속에서 나는 전 세계를 활보하고 다녔다.
책 안에서 자유를 얻었다. 책이 없었으면 못 견뎠을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 역시 나는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얻는다.



거울과 너

너를 보고 있으면 네가 보인다. 수많은 그녀가 보인다.

어릴 때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느끼고 홀로 겉돈다는 것을 알았던 그녀.
제발 쉬는 시간이 끝나길 기도하며 학교 화장실에 처박혔던 그녀.
긴 머리도 짧은 머리도 다 맘에 들지 않았던 그녀.
책과 함께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그녀.
'용맹정진' 또는 '절차탁마' 같은 사자성어를 수집하던 그녀.
일회용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던 그녀. 안경으로 귀를 꼭꼭 숨기는 그녀.
걸핏하면 우는 그녀. 너무 겁에 질려서 울지도 못하는 그녀.
남들에게 뒤쳐질까 봐 불안해하는 그녀. 가끔은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그녀.
섣부르게 마음을 주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그녀. 혼자서도 척척 잘해내는 그녀.

기억의 상자에 비밀을 간직하는 그녀. 시치미를 뗄 줄 모르는 그녀.
일상적으로 만연한 사회적 편견에 괴로워하는 그녀.
남모르게 무덤까지 가져갈 어떤 일들 때문에 조금 후회하는 그녀.
거짓말이라고는 할 줄도 모르고 하기도 싫은 그녀. 이제는 더 이상 길어질 코도 없다.
전화를 거는 것보다 514개의 메시지를 보내는 게 더 편한 그녀.
누런 이가 보일까 봐 입을 닫은 채 웃는 그녀. 상투적이지 않은 농담을 들을 때만
누렇게 변색된 치아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활짝 웃는 그녀.
숫기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규모 모임에서는 온갖 수다를 떠는 그녀.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만 있다면 돈을 갖다 바칠 수도 있는 그녀.
생각하려고 글을 쓰는 그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건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그녀.
마침내 사람들이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된 그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알아보는 그녀.



어쩜, 나랑 똑같네.

섣불리 마음 주고 후회하고, 한없이 정이 넘치는 것 같다가도,
혼자 뭐든 잘하는 나.
전화 거는 것도, 전화가 오는 것도 살짝 공포스러운 나.
메시지는 514개 아니라 51400개라도 보낼 수 있는 나.
숫기 없어 보이지만 한편 수다스러운 나.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는 나.
내가 너무나 미워서 마구 미워하다가
그런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혼자 훌쩍이는 나.
참 수많은 '나'가 내 안에 있다.



그림책은 작은 미술관이라고 애정 이웃 빛살무늬 님이 그러셨는데,
정말 작은 미술관을 만났다.

인쇄지도 고급스럽고 잘은 모르지만 프린팅도 무척 잘된 것 같다.
슬플 때마다 펴봐야지.

오월의 감성을 몇 배나 더 촉촉히 적셔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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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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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하나사키 마이가 가만히 있지 않아>, <변두리 로켓> 등 책이 나오는 대로 거의 드라마화될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하는 이케이도 준의 책이 왜 이렇게 번역되어 나오지 않는지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이렇게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 직전, '은행 불패' 시절에 입행했던 한자와와 그의 동기들은 그 추락의 쓰나미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고 있다. 입행 당시의 꿈은 어느 정도 축소되거나 좌절되거나 타협하거나 하는 개인적인 좌절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버티고 있다.



공은 상사가 가로채고, 실수는 부하의 것으로 전가하는 악습이 팽배한 속에서 부실 융자 사건으로 5억 엔의 부실 채권이 발생하게 되고 한자와를 고분고분한 일개 융자 과장으로 우습게 봤던 지점장 아사노는 그에게 모든 것을 덮어 씌워 좌천시키거나 자회사 파견으로 매듭지어려 했으나 한자와는 보통내기가 아니었으니, 지점장은 역공, 반격을 받고 몹시 당황한다.



게다가 그 사건은 단순한 부실 채권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지점장 아사노와 채무자 서부오사카철강의 히가시다 사장이 손을 잡고 자작극을 꾸민 '계획도산'이었다. 이건 형사 사건으로 넘어갈 중대한 범죄였다. 실제로 서부오사카철강의 하청업체들은 줄도산을 당하게 되고 수많은 직원들은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인 것이다.



한자와는 뛰어난 두뇌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 그리고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인망으로 '언더독'끼리 손을 맞잡고 지점장 아사노와 히가시다 사장, 그리고 히가시다의 하수를 일망타진한다.



아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통쾌하고 함께한 이들의 우정과 의리에 막 가슴이 뭉클하다.



언더독의 반란, 인생역전, 약한 자들의 연대, 그리고 성장과 우정 이야기는 아무리 보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게다가 얼마나 탄탄하게 구성된 이야기인지 4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가 마구 넘어간다.



은행권은 아니었지만 금융권에서 계속 성장하고 나만의 여성 리더십으로 서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 때문일까? <한자와 나오키>를 드라마로도 몇 번이고 보고 또 보며 볼 때마다 감동을 받아 울었었다. 드라마로의 각색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드라마의 내레이션으로도 부족했던 부분들을 더 꼼꼼히 읽으니 더욱 이해도가 높아졌다.



회사에 재직 중이었다면 입사 15년차, 중견이었겠다. 초짜 대리 나부랭이일 때, 공을 가로채인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기업의 생리를 조금이나마 경험했던 적이 있다. 어떤 업무를 맡았는데,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위의 고참 과장님도 "○대리, 이거 해서 내."라고만 하셨다. 원래 하고 있었던 일의 일환이었고 누구 참견 없이 앉아서 파고들면서 일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찾아가며 작성하여 영어로 번역해서 상사에게 보여드렸다. 건성으로 보시고 내라고 하시길래 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이미 많은 인프라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잘 정리해서 냈다. 그런데 그게 덜컥 상을 타버린 것이었다. 나름 글로벌한 일이었기 때문에 부사장급에서 이거 뭐냐고 사장님께 보고해야 한다고 난리가 났고 그제서야 과장님 보고 준비하시느라 바빠지셨다. 회사에서는 서로들 관심 없는 것 같지만 옆 부서들은 서로 상대방 부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옆 부서에서 몇 선배가 그거 너 혼자 한 거 아니었냐고 그랬었다. 조직생활의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걸까, 난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생각했다. 세상만사에 기대라는 것이 없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난 여기서 내 일 하고 월급 받고 죽이 척척 맞는 동기들하고 하하호호 지내는 게 그냥 좋았기 때문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자와 나오키 같은 리더십, 동기, 직원이 있는 조직이라면 정말 희망이 넘치겠다. 그런 인망, 능력 한없이 부러웠다. 그런 것들을 미처 키우고 성숙해지기 전에 불가항력적으로 조직생활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미련 아닌 미련으로 남아 있다.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시즌 2가 나오기로 확정된 시점에 이 책이 나와서 더욱 흥이 넘치기도 한다. 시즌 1이 너무나 어이없이 끝나서 바로 시즌 2를 모두들 학수고대했으나, 그게 무한정 연기되었었다. 주연을 맡았던 사카이 마사토가 명실공히 <한자와 나오키>가 출세작이긴 했으나 그 이전에 방영되었던 <리갈하이>에서도 강하고 코믹한 캐릭터가 어필되었기 때문에 연기의 스펙트럼도 넓히고자 했다고 하고 바로 대하 드라마와 다른 정신과 의사 역으로 나오는 드라마에 캐스팅되었었기 때문에 시즌 2는 유야무야되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한자와 역으로 물망에 올랐다느니 하는 말들이 있었지만 사카이 마사토가 아닌 한자와 나오키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팬이긴 하지만 '기쿠타'로 히메카와 레이코 곁에 있어주길 바람) 그런데, 무려 6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 이제 시즌 2가 나온다고 한다. 이 시리즈의 1, 2권이 시즌1으로 나왔으니 3, 4권의 내용이 시즌 2에서 다루어질 듯하다.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시리즈 4권을 모두 숙독하고 나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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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온 시 너에게 보낸다 - 나민애가 만난 토요일의 시
나민애 지음, 김수진 그림 / 밥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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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음미하기보다는 시에 대해 '공부'하여 시험 보는 데 익숙한 세대라서인지(어느 세대인들 안 그럴까마는...) 시를 보면 마음으로 스며들고 다가오는 게 아니라, 이건 무엇에 대한 비유인지, 주제는 무엇인지, 내가 몰라서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부담감이 확 올라온다. 그래서 피했던 것 같다. 직관적으로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해인 수녀님이나 용혜원 목사님, 나태주 시인 등의 시는 마음의 더듬이를 곤두세우지 않아도 읽을 수 있어서 좋아하기도 했고 편지 쓸 때 적어서 보내기도 했다.

밥북에서 나온 나민애 문학평론가의 시평집이 나온다기에 참고서 옆에 두고 든든하게 시를 읽으며 배워보고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나. 현대시 연구자에게 한 수 배워서 더 깊은 시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 이 책은 그 이상이다. 나의 기대 이상이다.

영혼을 울리는 엄선된 시의 향연

내가 고른 초콜릿도 좋지만 포장된 초콜릿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생각하며 하나씩 골라먹는 초콜릿은 더 좋다. 평론가가 엄선한 인생과 자연, 사랑과 한에 대한 몇 십 년간의 명시들이 이 속에 있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서 읽어도 감동이 있다. 그 감동을 해설이 더해준다. 이건 해설이라고 할 수 없다. 해설의 경지를 넘어선 '시 에세이'이다.

시를 읽으며 울 수 있는 나. 아직 내가 살아있나 보다. 아직 내 감성과 영혼이 살아있나 보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우음 2장 中)

우스개소리 반, 진담 반으로 '꽃길만 걸으세요.'라고들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는 꽃으로 길을 깔아주고 싶은 마음... 누구나 힘든 짐이 있다. 이 자리가 도무지 가시방석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 이랴. 하지만 이 자리가 꽃자리인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느니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우리의 인품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다가왔다. 이 시가...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나태주, 시 中)

마음에 반짝 불이 들어옵니다. 시로 인해...

어떻게 하면 나도 지구 한 모퉁이를 더 좋은 곳으로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갈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책 같다. 좋은 책을 나눠보고 좋은 책 이야기를 하고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시인을 알아가니 작품세계가 보여온다

부호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살다가 천형이라 불리는 나병을 앓게 되어 세상의 천대를 받았던, 문둥이 시인으로 알려진 한하운 시인, 장동건, 원빈 저리가라 할 정도의 멋쟁이이자 낭만주의자였지만 소박하고 진실한 내면의 소유자였던 박인환 시인, 평생의 반려인 아내를 잃고 보는 곳이 모두 텅 비어있으며 봄이 다 지나가도록 꽃 한 송이 못 봤다는 시를 읊은 김광섭 시인 등...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거나 이름 정도만 알고 있거나 대표작 한 두 작품만 알고 있던 시인들의 성장배경이나 일화 등을 소개해 주니 시인이 더욱 피부로 다가온다. 그 시가 더욱 심장을 파고든다.

시평의 언어 자체가 예술

시 에세이라고 부르고 싶다. 시와 함께 읽는 수필이라고 할까?

시인과 시,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애정과 애틋함이 담긴 시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다정한지 모른다.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작품이다.

돈도 안 되는 시 때문에 술을 마시고 우는 시인 아버지... 고기가 먹고 싶은데 예쁜 에나멜 구두를 사다 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시를 공부한 어린 평론가... 그 시를 이해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공부했다는 어여쁘고 대견한 마음의 어린 평론가의 모습이 보인다.

돈이 안 되는 것을 사랑하고 돈이 안 되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겐 너무나 사랑스럽다. 너무나 어여쁘다. 그런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위해 식량을 모아두는 대신, 햇살과 색깔과 언어를 양식으로 저장해 둔 나의 프레드릭들이다.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돈이 안 되는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의 언어와 시 속에 담긴 햇살을 나도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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