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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평점 :
원제가 '여성의 정년 후'인 만큼
여성이 나이가 들며 겪을 수 있는 신체적, 정서적 변화와 함께
관계의 변화 및 현실적으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을
30년간 수많은 임상사례를 경험해 온 정신과 의사이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실제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매우 피부에 와닿는다.
일에 관하여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훌륭한 일'도 아니다.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44쪽)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였던 것처럼
이후에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내겐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이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내가 얼마를 벌든,
남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당연한 일이었다.
큰아이가 태어나며 어려움을 겪어서
어쩔 수 없이 퇴사를 선택했고,
재입사라는 쉽지 않은 기회를 포기하고 아이 곁에 있기로 했다.
하지만 일을 포기한 건 아니었고,
어떻게든 내게 가능한 일을 찾으려고 발버둥쳤다.
이전의 급여 수준, 복지 수준 모두 내려놓고
그저 내가 몰입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했을 뿐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사뭇 달랐다.
"남편 돈 잘 버는데 뭘 그렇게..."
(우리집 급여통장 봤어요? 어떻게 알아요?)
"자기가 되게 특별하다고 생각하나 봐요."
(특별한 사람만 일할 수 있어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타입인가 봐요."
(그러게요. 타고나기를 그렇네요.)
"부러워요. 저도 집에서 애들이랑 있고 싶어요."
(저는 돈을 포기한 거예요. 넉넉해서 집에 있는 게 아니고요.
그쪽도 포기하면 되잖아요. 남편분 S대 석박사 출신에 S사 다니고
목동의 30평대 집 살잖아요.)
언제가 정년일까? 그건 자기가 결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가 일은 이제 그만 쉬고 싶으면 그게 정답이고,
평생 현역으로 일하고 싶으면 그게 정답인 것 같다.
노화에 관하여
누구나 내일이 되면 오늘보다 하루 더 나이가 든다.
그 결과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지며,
흰머리가 생기고 나아가서는 병에 걸리고 몸이 불편해진다. (76쪽)
마흔밖에 안 됐는데 말끝마다 "나이 들어서 그래."라는 둥
우스개소리겠지만 나이를 의식하는 말이 난 희한하게 느껴졌다.
나이에 제한받지 않는다는 것은 좋지만,
나이를 무시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일단 살이 금세 빠지지 않는다.
맘만 먹으면 하루에 6킬로미터 정도 걷고
샐러드 위주의 식단, 1일 1식으로 2달에 8~9kg을 뺐었는데,
이젠 두 배의 노력을 들여야 될까말까 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얼굴에 생기는 기미.
정말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돈이 아까워서 곧 죽어도 못 가겠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유전으로 인해 30대 초반부터 새치가 생겨서
지금은 5~6주마다 새치염색을 하고 있다.
미용실에 가자니 돈이 아까워서 좀 좋은 염색약으로 집에서 하고 있다.
역시 노화라는 것이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을 위해 노력한다.
연예인들의 '안티에이징'을 보면서도 여러 가지를 느낀다.
일본의 구로키 히토미라는 연예인은 젊어보이는 외모로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 인기가 더 많은 것 같고,
우리나라에서도 2, 30대였을 때는 다른 여배우들만큼
각광을 받지 않았다가 50대에서야 주목받는 사람도 있다.
또 컴퓨터 미인이라는 과거의 영광에서 못 벗어나는 듯
거의 발악 수준의 외모 관리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저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그 추세가 일반인에게까지 퍼져서
간단한 미용시술 등은 40대인 내 또래들에게는 일상다반사이다.
화장 정도의 감각이랄까?
그러다 보니 그 정도도 안 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관리를 안 하는 사람처럼 인식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일단은 선크림이나 꼼꼼히 발라야겠다.
설렘에 관하여
친구, 취미, 직업, 좋아하는 음악과 드라마,
지금 하고 있는 운동, 마음에 드는 책이나 영화.
그럼 나만의 아이템이 많은 사람일수록
남편의 정년 후에 무슨 일이 있어나든,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든
그에 휘둘리거나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54~55쪽)
저자가 말하듯, 일이든 연애든 취미든
설렘과 기대를 줄 수 있는
나만의 아이템이 필요하다.
나는 힘이 닿을 때까지
책을 읽고 책을 소개하고 나누고 싶다.
그게 나의 설렘이다.
그리고 며칠 정도의 짧은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건강.
자녀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점점 독립해가며 그 비중이 줄어가겠지.
충실하게 내 일과 내 사람들로 채워야지.
노후의 실제적인 당면과제
싱글이든, 부부이든
소득감소, 주거형태, 부모 혹은 배우자의 병수발 문제 등은 미리 생각해서
어느 정도는 윤곽을 잡아둬야 할 것 같다.
늘 존경하는 시아버지께서 언젠가
당신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에게 부담없도록
상조회 가입해서 다 준비해놓으셨다고
귀띔을 해주신 적이 있다.
자식된 도리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드리고 싶지만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애들 키우며 살면서
경제적인 부분이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평생독신인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
일본에는 독신자를 위한 비영리기관이 꽤 있던데
우리나라에도 곧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독신자이든 기혼자이든 노후에 닥칠
현실적인 문제를 대비하면 좋겠다.
나이 든다는 게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뒷표지의 말처럼
하루하루가 빛나는 나날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