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북플에 와서 글 읽으면 좋기는 하지만 이 앱을 열기가 꺼려진다. 왜 그런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지도 모르겠다. 그냥 엄두가 안난다고 할까.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몰아서 그동안 읽은 책을 정리하는
용도로만 쓰고 있다는 사실.

책에 관한 글도 가즈오 이시구로 책에 대해서만 좀 쓰다 멈춰버린 꼴이 되었는데, 내가 읽은 그의 소설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나를 보내지 마> 가 가장 좋았다.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구입해서 읽은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빌린 책이 소장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둔 책을 뒤로 하고 지금은 도서관에서 나폴리 4부작을 빌려보고 있다. 두 번째 책을 보는 중인데 가독성은 높지만 요즘 심신이 피곤하여 책장을 펼치지도 못하는 날도 있다. 벌써 1월이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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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책에 대한 흔적을 남겨보고자 최근 북풀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 어쩌다 보니 계속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읽게 되었다.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주목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한 작가의 책을 네 권이나 연달아 읽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니다.

1956년 영국의 달링턴 홀의 집사인 ‘나’ 스티븐스는 휴가를 맞아 여행을 떠난다. 6일 간의 여행길에 과거를 회상하며 한 때 같은 저택에서 일했던 켄턴 양을 만나러 간다.

달링턴 경을 헌신적으로 섬기며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숨기며 혹은 모르며, 아버지의 임종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스티븐슨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 자기합리화의 화신이다. 나치에 부역한 그의 주인에 대한 외부의 차가운 시선에 대해서도 거기엔 오해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면 달링턴경이 선택한 행동의 결과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답답하고 옹졸하기 짝이없는 ‘나’는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듯, 한 때 그의 심복이었다는 사실도 은근히 감추려는 태도를 통해 떳떳하지 못한 과거가 그렇게 인정되고 있다. 그러니까 스티븐스는 장세동 조차도 못되는 것이다.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듯 이 소설 역시 갈등과 다툼속에 사랑이야기가 진행된다. 화자인 나의 진술을 통해 감춰보려하지만, 여기저기 막는다고 막히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삐져나오는 것이 사랑의 징후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닌, 모르는 척하는 것도 아닌, 모른다고 믿고 싶은 것인 채. 억누르거나 억눌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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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1-04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인공 이름이 스티븐스으로 나오지 않던가요.

저도 지난 달에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책을
5권인가 연달아 읽었답니다. 노벨상 위력이
무섭더락요.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재미가 영 없어서
1권 읽다가 접었네요.

shuai 2017-11-04 22:49   좋아요 0 | URL
주인공이름이 틀렸네요. 고쳐놨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노벨상을 받아도 도전을 못하고 있는 작가가 있는 반면에 어쩌다보니 이렇게 연달아 만나게 되기도 하네요. 운좋게 도서관에 비치 중이어서 서둘러 빌려온 탓도 있구요. ^^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두 권을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또 무슨 책이 남아있나 둘러봤다. 반납한 ‘창백한 언덕 풍경’과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가 있던 서가로 가보니 단편집 ‘녹턴’이 대출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길래 냉큼 꺼내 손에 쥐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국작가인데, 일본작가의 책이 꽂혀있는 833.6 쪽으로 분류돼있다. 이 도서관 사서가 이름만 보고 일본작가로 생각한 것이고,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앱 리브로피아를 열어서 그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남아있는 날’이 비치자료(대출가능)다. 얼마전만 해도 이 책은 황복득 번역본(세종문고)만 지하서고에서 잠자고 있었는데 불과 2주 사이에 새 책이 들어온 것이다. 새 책이 도서관에 반입되는 동안 지하서고에 있던 그 책은 대출 중이고 예약자도 두 명이다.

이 책은 분류번호 843가78ㄴㅇ. 이제 사서는 수상작가의 국적을 분명히 인지하고 번호를 제대로 매겼다. 다른 책은 다 나갔는데 이 책이 비치 중이라니, 이런 행운이. 게다가 책을 살펴보니 내가 이 책의 첫 대출자인 듯 하다. 알라딘 보관함에 넣어두고 조만간 사려고 했었는데. 뭐 샀어도 좋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빌려온 일본소설(?) 녹턴과 영미소설 남아있는 나날을 사진으로 찍어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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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0-26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 막판에 이 책하고 <녹턴>을 한 권 값에 데려온 덕분에 이번에 잘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shuai 2017-10-26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반갑습니다.
도서정가제 전 막차를 타느라 고민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죠. 정가제 시행 전에 가끔 덤핑 행사를 하곤 했는데 제 경우는 까라마조프 세 권 짜리 민음사 세계문학사본을 싸게 구입한 것입니다. 빈 종이에 가계도만 그리다가 아직 첫 권도 못읽고 방치중이랍니다. ^^
 

책을 산다는 것
살 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사야할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이다. 사고 싶은 책은 너무 많은데, 그걸 다 사서 보관할만한 공간은 한정적이고,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 하나마나 한 얘기를 했다.
이른바 꼭 사야할 책의 기준이라는 게 애매하기 짝이 없어서 소장가치가 있는 책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안심하고 사는 책이라고 해봐야 기존에 좋아해서 신간이 나오면 망설임없이 사게 되는 작가의 책 정도.

그래서 가급적 도서관을 활용하게 되는데, 이런 저런 경로로 읽고 싶었던 책을 대출해서 읽는다. 최근 대출해서 읽었던 책 중에 만족도가 높았던 책 중 “몸의 일기”가 있다. 생각의 일기가 아니라 오로지 몸에 집중해서 몸에 발생하는 병이나 신체의 변화, 몸의 행위 그리고 통증 등을 기록한 한 남자의 일기다.

몸을 말했을 뿐인데 그 몸의 물리적 변화를 둘러싼 관계를 통해 예기치 못했던 묵직한 감동이 전해져왔다. 이 정도 책이면 구입해서 봤어도 좋았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책 구입으로 이어졌냐면 그건 아니다. 막상 사놓으면 서재 한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것 같고, 그 돈으로 아직 안 읽은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몸의 일기를 읽었으니 그 연장선상에서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관’을 대출해 왔는데 이 두꺼운 책을 대여기간에 읽기는 쉽지가 않아보인다. 몸의 일기처럼 소설도 아니고 감각(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수필적인 터치로 쓴 책이라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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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 75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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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서점이라는 팟캐스트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다룬 에피소드가 올라왔다. 그 에피소드가 올라오기 전에 올 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는데, 그가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였다. 흥미로운 것은 낭만서점에서 ‘남아있는 나날’을 녹음한 시점이 노벨문학상 발표 전이라는 것이고, 게다가 그의 수상을 예상해서 고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연이었지만 아주 절묘했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그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점도 있고, 시류에 편승하고자 (^^)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찾아보았더니 대출된 소설을 제외하고 꽂혀있던 책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창백한 언덕 풍경, 그리고 녹턴이었다. 가장 읽고 싶었던 ‘남아있는 나날’은 눈에 띄지 않았다.

유명했던 일본의 은퇴 화가의 일인칭화자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아내와 아들을 잃고, 작은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는 과정에 벌어진 이야기다. 주인공의 전쟁과 무관하지 않은 자신의 경험이 드러나는데 이 이야기가 일인칭시점이다보니 처음에는 그의 생각과 경험을 따라가다보면 그를 긍정하게 되다가 차차 거리감이 생긴다.

그의 ‘외부를 향한’ 사죄가 과연 자신 깊숙한 곳의 통한으로 인한 것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자신이 한 때 가진 신념에 대한 뿌듯함과 대비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당시에 분명했던 신념에 찬 행동으로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자신을 좀 더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는 있겠다 싶다.

이 책에는 상대방이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서로가 대화를 하고 논쟁을 이어가는데 상당히 격을 차리고 겸손한 말을 밑바탕에 깔고 간다. 일본 특유의 격식인 것 같다. 작가는 50년대에 일본에서 태어나 어려서 영국으로 이민간 일본계 영국작가인데 본인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와 장소의 공기를 아주 실감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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