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대한 흔적을 남겨보고자 최근 북풀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 어쩌다 보니 계속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읽게 되었다.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주목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한 작가의 책을 네 권이나 연달아 읽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니다.

1956년 영국의 달링턴 홀의 집사인 ‘나’ 스티븐스는 휴가를 맞아 여행을 떠난다. 6일 간의 여행길에 과거를 회상하며 한 때 같은 저택에서 일했던 켄턴 양을 만나러 간다.

달링턴 경을 헌신적으로 섬기며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숨기며 혹은 모르며, 아버지의 임종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스티븐슨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 자기합리화의 화신이다. 나치에 부역한 그의 주인에 대한 외부의 차가운 시선에 대해서도 거기엔 오해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면 달링턴경이 선택한 행동의 결과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답답하고 옹졸하기 짝이없는 ‘나’는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듯, 한 때 그의 심복이었다는 사실도 은근히 감추려는 태도를 통해 떳떳하지 못한 과거가 그렇게 인정되고 있다. 그러니까 스티븐스는 장세동 조차도 못되는 것이다.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듯 이 소설 역시 갈등과 다툼속에 사랑이야기가 진행된다. 화자인 나의 진술을 통해 감춰보려하지만, 여기저기 막는다고 막히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삐져나오는 것이 사랑의 징후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닌, 모르는 척하는 것도 아닌, 모른다고 믿고 싶은 것인 채. 억누르거나 억눌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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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1-04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인공 이름이 스티븐스으로 나오지 않던가요.

저도 지난 달에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책을
5권인가 연달아 읽었답니다. 노벨상 위력이
무섭더락요.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재미가 영 없어서
1권 읽다가 접었네요.

shuai 2017-11-04 22:49   좋아요 0 | URL
주인공이름이 틀렸네요. 고쳐놨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노벨상을 받아도 도전을 못하고 있는 작가가 있는 반면에 어쩌다보니 이렇게 연달아 만나게 되기도 하네요. 운좋게 도서관에 비치 중이어서 서둘러 빌려온 탓도 있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