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 희랍어 원전 번역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일리아스에 대해서는 아동용에서 완역까지 여러 번역이 있다.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축약본을 원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완역을 원한다면 이 단국대판 일리아스를 능가할 것이 없다.

내게는 일리아스 번역의 질을 가늠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로는 고유명사이다. "이"와 "위"를 제대로 구분하고 "우스"와 "오스"를 혼동하지 않았다면 일단 합격. 둘째로는 메넬라오스와 파리스의 결투를 보러 나온 헬레네를 본 트로이아의 원로들이 하는 말이다. "어쩌면 그 얼굴 모양이 불사의 여신들과 저토록 닮을 수가 있는가." 이 부분을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듯하다" 어쩌고로 번역한 책이라면 조르바의 표현대로 악마에게나 줘 버릴 책이다. (실제로 그런 번역이 있다!)

동서 세계문학전집의 <일리아스/오딧세이>도 완역이기는 완역이고 주석도 잔뜩 달아 놓았지만 운문을 산문으로 그냥 죽 이어 놓았다. 덕분에 엄청난 쉼표의 압박에다 전혀 한국어 같지 않은 도치문의 잔치가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왜 처음부터 끝까지 트로이아를 트로야라고 옮긴 것인가?)

홍신문화사판 <일리아스>도 완역이고 문장 또한 산문화했지만 적어도 말이 되는 산문화이다. 주석이 거의 없는데 이것은 보급용 문고판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홍신문화사판 <일리아스>가 단국대판 <일리아스>를 능가할 수 있는 단 한 부분이 있다. <일리아스> 8권, 헥토르가 그리스군 진영에 돌진하며 말들을 격려하는 대목이다. 헥토르가 모는 네 마리의 말 이름은 각각 "크산토스" "포다르커스" "아이톤" "람포스"이다. 이게 뭐가 중요하냐고? 홍신문화사판에는 여기에 해석이 붙어 있다! 각각 "황갈색" "흰 다리" "붉은색" "흰색"이라는 뜻이다. 단국대판에는 같은 부분에 이 말이름이 그 털색깔에서 왔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 넘어갔다. (덧붙이면 아킬레우스의 유명한 신마 이름인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는 "황갈색"과 "얼룩무늬"이다. 즉, 최근 개봉한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의 말을 두 마리 다 검은 말로 내놓은 것은 구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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