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인생수업 - 철학은 어떻게 삶에 도움이 되는가
시라토리 하루히코.지지엔즈 지음, 김지윤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철학은 인생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인생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일반적인 시각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우리의 인생살이를 바라보며 더 나은 삶, 일상생활을 더 잘 사는 방법을 찾습니다. 삶의 본질을 깨닫고, 삶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을 하는 것이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철학의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힘들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철학에서 그 어려움을 타개할 현명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다보면 많은 어려움과 수많은 선택지에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관계, 일, 돈문제, 사랑문제 등의 일상의 문제도 많고, 근원적인 외로움과 상실감, 공허함, 온갖 걱정, 근심, 불안에 빠져서 힘들어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철학에서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주위사람들이 해줄수 없는 조언과 위로를 예전 철학자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바뀌었고, 문명과 사회도 크게 달라져서 그에 따라 삶의 방식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옛 철학자들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지금에까지 쓸모가 있을지, 과거의 가치와 사상이 현대의 문명에 그대로 적용이 될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도 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의 말은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한 케케묵은 꼰대들은 잔소리 정도로만 치부하는 사람도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2천년 전이건 21세기건 사람 사는 것은 결국 똑같고 인간의 특성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과거의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일상의 고민부터 인생의 태도까지 철학자들이 오래 시간 속에서 통달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회는 변했으나 사람 사는 것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고, 철학자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그 본질에 대해 고찰하고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도 이미 앞서간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똑같이 고민하고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고, 철학자들은 그 고뇌와 고통에 대한 철학적 조언과 해답을 하나씩 쌓아갔던 겁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만들어지고, 쌓여간 철학자들의 삶의 지혜를 돌아본다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피할 수 없는 고민의 해답을 철학을 통해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옛 철학자들의 말이 사라지지 않고 오랜 시간을 지나며 전해졌다는 것은 그 말 속에 삶의 지혜와 오늘날의 우리들을 일깨워줄 지성이 들어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철학에는 오랜 시간을 거쳐오면서 축적된 많은 사람들의 지성과 혜안이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죽은 철학자의 오래된 말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통찰을 배우고, 세상을 보는 혜안을 배우게 됩니다.
이 책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흄, 칸트, 쇼펜하우어, 밀, 니체, 소쉬르, 프롬, 사르트르의 총 12명의 세계적 철학자의 지성과 통찰이 담겨있습니다. 일본과 대만을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각기 6명씩 이들 철학자의 지식과 철학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깊은 생각의 시간을 거치며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도달했습니다. 이것이 각각의 철학 사상입니다. 저자는 철학이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되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철학적 사고방식이나 견해를 줄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인생의 지혜
무지의 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라)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지식도 그것이 반드시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뜻과 자신의 무지를 발견하는 일이야 말로 진정으로 무지를 자각하는 일이라는 두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무지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당신의 지식이란 것이 완벽한 것이 아니고 모르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지의 지를 깨달의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짧은 지식 안에서만 생각을 해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게될 가능성도 높지만, 평소 모르는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정을 할 때 더욱 신중하고, 주위의 조언을 귀담아 듣기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낮아지는 겁니다. 이는 나중에 후회를 줄이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와 충돌이 일어날때에도 무조건 자기 의견이 맞다고 밀어부치기보단 나중에 자신의 생각이 달라지진 않을지 생각해보고, 모르는 지식이나 경험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도 있고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는데 자신이 완벽하게 알지 못하면서 잘난체를 하다가는 일을 그르치게 되니 지나친 자신감을 삼가라는 말과도 무지의 지는 일맥상통합니다.
무지의 지를 알기 전까진 지식의 범위는 시야와 같다고 합니다. 굉장히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아는 만큼 본다라고 말하는데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밖에 보지 못합니다. 시야 바깥쪽에는 여전히 어둠이 펼쳐져 있지만 본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죠. 하지만 무지의 지를 깨달은 사람은 지식을 초원하여 사고하는 힘을 가지게 되고, 무지의 지가 탐구심과 학습 의욕을 살려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새로운 무지의 지를 발견한다면 시야도 계속해서 확대될 것이라고 합니다.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그것을 배울 생각을 하고,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는 것이란 뜻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자세가 된 사람이 결국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겠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의 지혜
움직이는 것을 행복으로 삼지마라
행복한 인생은 밖에서 구하거나 운에 의지해서 얻으려 하면 안 된다.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한다.
우리가 행복이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물질적인 것이거나 외부의 것입니다. 돈, 집, 차, 취직, 외모, 연애, 결혼 등 외적 조건을 행복의 요소라고 생각하고 그 조건을 충족하면 행복해 질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경쟁에 뛰어들어 부단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외적 요소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가 아니라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외적인 행복의 요소를 산정해서 그것을 추구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살다보니 그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필연적으로 불행하게 됩니다. 스스로 행복의 요건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가 불행도 함께 만드는 셈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행복의 요소로 꼽는 첫번째는 아마 돈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 행복의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생각을 딱 잘라서 부정했습니다. 우리도 돈으로 행복을 살수가 없다고 너무나 많이 말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완벽하게 공감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문제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요소는 아니지만 돈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고통과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돈이 행복을 위한 주요 요소가 아니라고만 했지, 행복을 추구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외재적인 善이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돈이 내면적인 요소 외에 우리를 행복으로 향하게 하는 동력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어떤 좋은 일을 행하려고 할 때 만약 돈이 없다면 선행을 베푸는 일 자체가 불가능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힘들어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즉, 일상생활에서 돈이 있고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더욱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맹목적으로 돈을 추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2천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도 돈이 행복을 배가시킨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하나도 없네요
쇼펜하우어의 인생의 지혜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자발적으로 고독을 누려라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모든 것을 움직인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의 의지란 자연 속의 온갖 힘을 말하는 것으로, 생물의 생명력, 충동, 본능, 욕망 등 모든 것이 의지라고 했고 이 의지는 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자연의 섭리나 동물적 감각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안에 있는 충동, 욕망 같은 것도 의지라고 하고, 우리는 의지에 따라 몸을 움직이게 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의 온갖 것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 가치를 판단하고, 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모이고 모여서 이 세계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원하는 의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형태로 사회가 이루어지고 움직여진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세계는 개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장소로 발전했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개인의 의지가 세계의 의지를 만들고, 세계의 의지에 개인의 의지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상호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에 지배당하면 사는 동안 의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의지의 노예가 되는 것이죠.
쇼펜하우어는 의지에서 해방되면 충동에 따라 움직이지 않게 되고, 무엇을 누앞에 두어도 동요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위해 쇼펜하우어는 고독을 권유했습니다. 외로움으로서의 고독이 아니라 세상의 소란스러움에서 한발짝 떨어져서 스스로 세상에 등을 돌리고 세상에 범람하는 형편없는 가치관이나 투쟁에 구속당하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고독을 선택하란 것입니다. 수많은 의지가 모인 세계 속에 갇혀있다면 그 의지를 벗어나지 못하니 고독을 통해 의지의 세계에서 한발 떨어지잔 뜻입니다.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면 타인의 의지에 휘둘리거나 생각의 노예가 되어 살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자유로움과 풍족함을 줄 것입니다.
밀의 인생의 지혜
외부에 휩쓸리지 말고 나다운 나를 지켜라
밀은 완벽하게 자유롭게 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의 완벽한 자유라는 것은 타인의 권리와 테두리에 의해 결정되는 셈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타인의 권리로부터 나의 자유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는 톨레랑스와 한계자유의 개념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와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은 내가 상대의 자유를 인정해줌으로서 나 역시 타인으로부터 나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수자의 의견에 의해 소수자의 의견이 압박을 받기도 합니다. 다수자에 의한 전제는 사회의 전제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자에 의해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소수자는 다수자의 의견에 간섭을 받고 편향성으로 압박을 받게 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밀은 개인의 주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주권이란 가능한 한 자유로운 자기 자신으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타인의 방해나 지시를 그대로 따르거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양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개인의 주권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몰개성의 시대에 나만의 개성을 지키자는 말로 쉽게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데카르트 파트는 조금 어려워서 다시 한번 천천히 정리하며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철학이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라고 정확히 행동강령을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또 선택지를 딱 잘라서 결정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철학자들은 애매하고 아사모사한 말을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철학이 삶과 인생에 도움을 준다지만 알듯모를듯한 선문답을 어려운 말로 늘어놓기 때문에 정작 그 핵심을 잡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인생 전반에 도움이 되는 지혜와 깊은 통찰을 주는 것은 분명하고 그것들을 마음에 잘 세긴다면 우리 인생의 깊이도 한층 깊어질 것 또한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