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책을 보면 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옵니다. '정신과 박티팔 씨의 엉뚱하지만 도움이 되는 인간 관찰의 기술' 최근 본 책 중 가장 긴 제목의 책이네요. 그리고 박티팔이란 어딘지 욕처럼 들리는 이름도 엉뚱하게 느껴져서 재미있었고요. 그런데 이 박티팔이란 이름은 사회성이 부족하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을 일컫는 '스키조티팔 퍼스널리티 디스오더 (정신 분열형 성격 장애)'에서 따온 말이라고 하네요. 막 지은 촌스런 이름이 아니라 나름 의미있는 심오한 이름이었네요. 정신과 임상 심리사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박티팔 씨는 오래 묵은 감정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서 쌓인 감정이 많이 생겼다고 느끼고, 신세한탄이나 속풀이를 위한 욕설이나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웃긴 글만 써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글을 쓰고, 웃고를 반복했더니 슬펐던 것들이 전부 날아갔다고 하네요. 애초에 박티팔 씨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쓴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스스로의 묵은 감정을 날려버리기 위해 글을 쓴 것인거죠. 요즘 위로와 공감의 책이 쏟아지는데 박티팔 씨는 자신에게는 위로가 무거운 주제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아름다워야 위로를 하지 개떡같은 세상에서 위로가 과연 되겠는가 라는 생각인거죠. 세상은 시궁창인데 아무리 아름답다고 말해본들 그건 거짓말이고 위로가 안될거라는 뜻 같네요. 그러면 차라리 거짓말 같은 위로보단 박티팔 씨처럼 글을 읽고, 웃고를 반복하면서 슬펐던 마음을 날려버리는 게 더 현실적인 감정 솔루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개그맨 전유성 씨가 쓴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란 책이 있어요. 인생을 너무 교과서적으로 정공법으로만 살지 말라는 말 같은데 박티팔 씨의 이 책도 복잡한 세상에서 정면 승부 따위는 필요없다고 말을 하고 있어요. 복잡한 세상을 살다보면 온갖 사람과 만나고 부딪히면서 많은 트러블에 휩싸이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맺기는 어려운 일이고, 많은 후유증과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때론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들과도 트러블이 일어나구요. 나는 가만 있는데도 시비가 붙을 때도 많으니까요. 말하자면 난 내 주행선에서 안전운전을 하고 있는데, 다른 차선에서 차가 끼어들어 접촉사고가 나는 식인거죠. 나와 밀접한 관계의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옷깃만 스치는 사이에서도 관계맺기를 해야 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됩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관계맺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을 귀찮아하고 관계를 피곤하게 여기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도 관계라고 하네요. 타인과의 의미있는 관계맺기를 일부러 의식하는 데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의식을 해서 관계맺기를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항상 의식을 해서 사람을 관찰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런 점이 인간 관찰의 기술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박티팔 씨의 글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구어적이라서 정말 재미있습니다. 정신과 임상 심리사가 쓴 인간관계를 다른 서적이라고 하면 뭔가 전문용어도 하나씩 쓰윽 나오고, 어려운 행동심리학 이론이나 심리학적 솔루션을 말할 법한데 그런 어렵고 복잡한 내용 대신 온라인 카페 게시판에 올릴것 같은 재미있는 어투와 웃긴 일상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군데군데 똥 이야기가 나온다거나, 남편과 전국 모텔에 돈을 뿌리며 다녔다거나, 언어의 대화가 잘 되지 않아 몸의 대화를 많이 했다거나 하는 식의 표현들이 많이 나와서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웃으며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리곰탕과 너구리로 알게되는 엄마의 마음, 리니지에 빠진 카페 사장님의 일화로 알게되는 세상의 나쁜사람이론, 아빠에 대한 담론,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이야기 등 정말 아무것도 아닌 주변인물의 일상의 에피소드와 온갖 잡다한 신변잡기가 전개되는데 박티팔 씨의 끝내주는 글빨(!)로 인해 재미있게 읽힙니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과의 에피소드에서 인간을 관찰한 이야기가 한두줄 반전과도 같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의 평소 행동이 왜 그랬었는지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형식입니다.
'엉뚱하지만 도움이 되는 인간 관찰의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인간을 관찰하는 이런 저런 기술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고 박티팔 씨가 주변 인간을 관찰한 내용과, 박티팔 씨의 시트콤과 같은 재미있는 일상을 지켜보며 우리가 박티팔 씨라는 인간을 관찰하면서 얻게 되는 정보들을 종합하여 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이런 경우엔 이렇게 생각을 하는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그 기술을 체득하게 됩니다. 어쩌면 박티팔 씨의 인간을 관찰하는 기술의 핵심은 즐겁게 인생을 살고, 유머와 웃음이 있는 성격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