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약함을 자랑하라 - 절망의 끝에서 나를 살리신 성령님의 음성
이효진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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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속 이효진씨의 얼굴은 매끄럽지 못하다. 세살때 뜨거운 물의 수증기가 연약한 피부에 3도 화상을 입힌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과 왼손은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됐다. 아차하는 작은 부주의가 그녀의 미래까지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런 딸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어린 시절 친구들은 그녀를 파충류 괴물 같다면 놀렸다고 한다. 어린 가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상처였다. 남자도 그렇겠지만, 여자에게 특히 더 얼굴이 중요하다. 사춘기 시절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거울을 보고, 예쁘게 화장도 하며 꾸미게 된다.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시기인데,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얼굴을 숨기는데 급급했다.  

아이들의 놀림, 특히 한 아이는 그녀를 보고 무섭다며 엉엉 울었다는데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많은 혼란과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내 얼굴이 왜 이런지, 내 삶은 왜 이리 비참한지에 대해 그녀는 누군가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그녀가 왜 이런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35년간을 어둠과 절망 속에서 보냈다는 그녀. 하지만 이젠 더이상 괴롭지도,어둠속에 숨지도 않는다. 아픔을 툭툭 털고 새 인생을 살수 있었던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이상 화상 입은 얼굴에서 슬픔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더이상 부러울것도, 부끄러울것도 없다고 말하는데 그런 생각이 참 대단해 보인다.  

하나님께서 '네 약함을 자랑하라'라고 하셨고, 그녀는 상처입은 얼굴을 통해 주님의 증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럴수 있다면 자신의 고난은 결국 하나님께 쓰임받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라면서.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당당히 내세울수 있는 장점을 자랑하기 마련이다. 단점이나 상처는 되도록 숨기고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만난 후로 자신의 약함을 당당히 드러냈다. 그녀의 인생과 가치관을 바꾸게 해준 종교는 그 자체로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꼭 기독교가 아니라도 좋다. 세상에서 나 만 비참하고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할때 누군가 날 구원해주는게 있다면 그거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 기회를 붙잡고 의지한다면 더이상 불행에게 발을 붙잡히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아니라도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는게 있다면 잡아야 한다.  

이렇게 당당히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린시절의 아픔 상처를 딛고 그 누구보다 멋진 삶을 사는 그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도 그녀의 믿음이 굳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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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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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로 중독증세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딸이 있었던 대니얼 고틀립. 그 당시의 그는 참으로 행복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하고자 하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른세살에 닥친 교통사고는 그를 평생 휠체어에 앉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으로 바꿔버렸다.  한창 때 나이에 닥친 불의의 사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아내와 이혼하고 두 딸에게 아버지로서 해줘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이상 불행해하지 않는다. 사고는 육체적인 불편을 줬지만 정신적인 깨달음을 주었고,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과 상담을 해주니 말이다. 자신의 삶에서 불행만 보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 대니얼. 그가 해주는 충고,조언 이기에 더 가슴에 와닿는다.

사고를 당하기 전, 대니얼은 몸이 아픈 아내를 돌봤다고 한다. 그 과정이 힘들기도 하고 일방적인 희생과 강요받는 느낌이 들어 억울함도 생겼단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이 드는 자신이 싫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당신을 돌보느라 힘들고 지쳐"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묵묵히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돌보고 있는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이따금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니얼이 보살핌을 받는 입장에 처했다. 돌보는 사람도 힘들지만 보살핌을 받는 사람도 화나고 힘든건 마찬가지이다.  나를 보살피는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희생하고 있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상처가 됐고 죄책감도 생겼다. 또 사람들이 날 조금 더 챙겨주기 바라면서도, 보살핌을 거부하기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누군가 내 몸을 닦아주고 음식을 챙겨주고 오줌주머니를 비워주는 일 등에서 자립심과 자존감을 뺏긴것도 같다.

대니얼이 지금에와서 후회하는건 사고를 당한 직후 아내와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지나치게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때 서로를 꼭 안아주거나 원망하거나 울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저자는 뒤늦게 후회한다.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터 놓고 힘들면 힘들다고, 지치면 지친다고 말하는게 진정한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눈물을 펑펑 흘리고 소리를 지르는게 마음의 위안을 주기도 한다. 상대방이 상처 받을까봐 아무 내색을 하지 않는게 오히려 독이 된다.

이처럼  사고는 대니얼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언지, 사람으로 산다는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고심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최악의 상황을 맞았지만 그래도 살아지더라는 것이다. 처음엔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원망, 분노가 생겼다. 다니엘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가해자에게 저주를 퍼붓고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화'가 자신을 살아남게 하고 상처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화와 분노때문에 정작 피해를 보는건 자기 자신이었다. 소중한 삶을 느끼고 즐길 시간을 화 내느라 소비하는 꼴이 됐으니까. 대니얼은 용서란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와 화를 완전히 버리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대니얼이 만난 사람중에도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 한사람은 재활훈련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가 없자 곧바로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희망을 놓았더니 현실을 냉정하게 대면할수 있었고, 운명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하니 마음의 평안을 얻을수 있었단다. 사람들은 '희망'을 품는걸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때로는 '희망놓음'이 더 큰 약이 될수가 있다.  

정체성도 마찬가지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정체성 찾기란 환상을 쫒는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물론 정체성은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저자는 "지혜로움이란 우리에게 정체성이 없어도 살아갈수 있음을 아는것. 때로는 대명사 '나'를 보이지 않는 잉크로 써야 한다는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사람들의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놓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이 안되면 불안해한다. 낡은 이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면 이론대로 일이 풀릴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이렇게 이론은 우리를 옭아매고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렇게 생긴 불안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데, 이를 억지로 해소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란다. 그 과정에서 불안은 더이상 내 삶을 장악할수 없게 된다는게 대니얼의 조언이다. 완전히 떨쳐버릴순 없지만 불안에 휘둘리진 않는 현명한 길 같다. 

대니얼은 자신의 문제 외에도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와 부모님의 관계와 에피소드, 자신에게 상담을 해온 이들이 겪은 부모와의 문제등을 소개하며 조언을 해준다. 특히 그는 오랜세월동안 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서로를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였단다. 상대방을 바꾸려 했지만 그건 쉬운일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처럼 살지 말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원하지만, 정작 아이는 부모를 보면서 역할모델을 삼는다. 아이에게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이 마음 가는곳을 발견해서 행복을 찾도록 도와줘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다치고 상처받지만 결국은 치유되기 때문에 아이를 믿어야 한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위해주면 결국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는 셈이다. 부모가 자신의 인생부터 돌보는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내게 심리치료란 사람들이 자신안의 인간다움을 이해하고 그와 더불어 편안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니얼 고틀립. 그가 전해준 이야기와 메시지를 통해 조금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됐다.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완벽하게 자신을 알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깨지고 아프고 상처입어도 조금씩 노력하고 이해한다면 더 나은 오늘,내일이 될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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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행복하라 -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21가지 행복 습관
마르시 쉬모프.캐럴 클라인 지음, 안진환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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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 책은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마음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는게 다른것 같다.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일으킨 베스트셀러 책이 내겐 도움이 안될때도 있고, 많이 읽히지 않은 책을 보다가도 어떤 한 구절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런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내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내 안에 있던 분노,자격지심,패배자 같은 마음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나아갈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파이팅을 심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찾게 되는것 같다. 

'이유없이 행복하라'라는 제목이 시선을 확 끄는 이 책은 내용면에서 만족스러움을 주었다. 저자가 인터뷰한 100명은 인생의 행복에 대해서 알려주었는데, 그 인터뷰를 통해 공통된 습관이 있음을 발견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행복을 얻은 사람들의 비결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비결은 어렵고 얻기 힘든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 상태에 따라,노력에 따라 얻을수 있는 것들이었다. 

세상은 분노로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은 쉽게 타인을 미워하고 증오한다. 화해와 용서, 연민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그게 쉽다면 아마 이런 책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먹는다는게 어렵기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행복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요인은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횟수도 다를 것이다. 행복하려면 무엇을 해야한다 라는 공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자신의 행복지수를 스스로 만들수 있다는 뜻이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느낄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질 높은 삶이 또 있을까? 어떤 이유를 만들지 않아도 항상 행복하다면 이 책의 제목처럼 '이유없이 행복할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따뜻한 미소에, 도움의 손길에 행복을 느낄수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누구는 불행을 생각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희망을 보게된다. 그건 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수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행복을 찾을수 있는 기회가 와도 평소처럼 불행의 습관을 반복하고 있다면 결코 행복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행복도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걸 알게됐다. 이유없이 행복해지는것이 빈말도,내가 접하기 어려운 일도 아님을 알게됐다. 행복의 습관을 들일수 있는 용기와 꾸준한 노력이 내게 필요하다는걸 다시 한번 알려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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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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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밝은 미소를 띄우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던 아름다운 사람 장영희. 그런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TV뉴스를 통해 알게 된 날, 안타까움과 슬픔때문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어야만 했다. 선생님의 말대로 나쁜 운명을 깨우지 않기위해 살금살금 걷지않고 쿵쾅쿵쾅 저벅저벅 당당한 발걸음으로 살아와서일까? 소아마비라는 장애뿐 아니라, 암은 그녀에게 끊임없는 투병과의 싸움을 계속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녀를 하나님의 곁으로 데려가버렸다. 야속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암환자 장영희'로 비쳐지기를 싫어했듯이 나 또한 선생님을 장애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오고 암과 싸워온 교수로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더이상 슬퍼하지 않을것이다. 짧디 짧은 인간의 삶이지만 그래도 이 지구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던 선생님의 바람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가족,지인,친구들 뿐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이 그녀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몇십년이 흘러도 그녀의 글과 메시지는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독자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장영희 선생님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소위 지식인들이 으레 내보이는 권위의식이 없고 소탈하고 인간적이라는데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녀만큼 허레의식과 체면치레가 없고 자신의 모든것을 내보이며 글을쓰는 사람도 드물었다. 특히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단점을 밝힌다는건 분명 쉬운일이 아니다. 내가 만약 그녀라면, 그러니까 유명하고 실력있는 영문학 교수에 수필가에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나 자신을 좀 더 완벽하게 포장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게으름과 건망증, 무위의 재능(아무것도 하지 않을수 있는 능력이 넘친다는 뜻)을 거리낌없이 글의 소재로 삼았다 또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이 너무 게으르고 이기적이어서 라고 말한다. 그뿐인가. 자신의 마음속에는 가끔씩 평화를 싫어하고 오히려 분란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도깨비가 살고있다고 밝힌다. (내게도 이런 도깨비들이 살고있고 불쑥불쑥 튀어나올때가 있다) 이처럼 선생님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성격들이 너무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아! 선생님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나처럼 한없이 게으르기도 하고 약속시간에 늦기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을때의 경험과 느낌을 소상히 적은 대목에선 울컥 눈물이 났다. 선생님은 그때를 '내 자유의지와 노력만으로 이길수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사실이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오로지 건강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우월감을 느낄 사람들이 미웠고, 동정이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했다' 라고 고백한다. 이 이유들이 가슴속에 콱 박혔고 그 심정이 이해가 됐다. 아마 나라도 그렇게 했을것이다. 사람들의 계속 되는 위로와 안타까운 표정은 투병 생활을 더 힘들게 만들었을테고,무엇보다 선생님의 말대로 자존심이 상했을테니까. 왜 하필 내가? 라는 의문도 계속 들었을테고 말이다.

그런 힘든 상황을 겪어온 그녀였기에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을 더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게, 찬란하게 피어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본다는게,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살을 부빌수 있다는게,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고 내 일을 할수있다는게 얼마나 축복된 일이고 감사해야할 삶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고 말한 것이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이별할때 그 아픔은 표현할 길이 없지만,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어쩌면 그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언젠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입니다'라고 했던 선생님의 말을 믿는다. 그리고 선생님이 남기신 모든 글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고 살만하게 만들거라는것도 믿는다. 인간의 '선함'을 믿었고 그 본성이 세상을 살만하게 유지시켜준다고 준다고 했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살면서 나쁜 운명이 나를 덮치겠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고 이겨내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운명이 오리라는것도 이젠 안다. 아니,잘은 모르더라도 그렇게 믿고 이 한 세상을 살아야겠단 결심이 생긴다. 장영희 선생님이 살아온 날도 기적이고,살아갈 날도 기적이라고 믿었던 것 처런 나도 그렇게 믿고 살련다. 이렇게 아침 햇살을 맞으며 깨어나고 사랑하는 이 들과 웃으며 삶을 즐길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를 너무도 잘 알게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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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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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껏 달려본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아무 생각없이 바람을 가르며 뜀박질했던 행복했던 나는 어디에 있을까. 학창시절엔 친구들과 참 많이도 뛰어다녔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 소리가 좋아서, 뛰면 뛸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좋아서, 뛰고 난후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보여서 달리는게 좋았다. 달리기는 어떤 운동기구도 필요없고 그저 튼튼한 두 다리만 가지고 있으면 가능했다. 그래서 참 많이도 달렸었는데 사회인이 되고나니 내 두 다리는 멈춰버렸다. 운동할 시간이 있으면 10분이라도 더 자는게 좋았으니까. 그래서 달리기의 즐거움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난 지금 다시 달리고싶단 강한 욕망이 생겼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있다]를 읽고나서 부터다.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젊은 청춘들의 달리기를 보고있자니 잊고있었던 즐거움이 생각났고, 책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도 같이 뛰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나도 느꼈었는데 라는 회상도 하면서 말이다. 달리는건 그저 마음만 먹으면 할수 있는건데 왜 난 그동안 그 즐거움을 애써 외면해왔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고 기운이 없다는 이유로 인생의 행복 중 하나를 스스로 포기했던 거였다. 이젠 달려보고 싶다.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새벽 공기를 가르고 싶다.

가케루는 달리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육상 선수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육상부에서 퇴출당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 일만 없었더라면 가케루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탄탄대로를 걸었을것이다. 물론 강압적인 분위기와 다른 선수들의 질투를 견뎌내며, 달리기의 즐거움을 모른채 살았겠지만. 그런 가케루에게 인생 최대의 사건이 벌어진건 편의점에서 빵을 훔쳐 달아나던 그날 밤 이었다. 가케루가 달리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기요세는 바로 자신이 찾던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다.

부상 때문에 예전처럼 달릴수 없게된 기요세에게 최대의 꿈은 '하코네 역전 경주'에 나가는 것이었다. 총 10명의 선수가 뛰어야하는 경주인데 딱 한명의 선수가 모자라 신청할수가 없었는데, 그러던차에 달리기에 재능이 있는 가케루를 보게 된 것이고 기요세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기요세가 살고있는 지쿠세이소엔 그를를 포함해 총 9명의 간세 대학 하숙생들이 있었고 가케루가 합류하면서 10명, 즉 경주에 나갈수 있는 인원이 되었다. 물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달리기를 할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기요세의 반 협박과 구슬림에 넘어가 얼떨결에 경주 선수가 된 것이다.

쌍둥이 조지와 조타, 담배를 많이 피는 니코짱, 만화책만 보느라 체력이 꽝인 왕자, 흑인 유학생인 무사, TV퀴즈쇼에 열광하는 킹, 머리가 좋은 유키, 시골에서 올라온 신동, 그리고 가케루와 기요세가 바로 새로 만들어진 팀의 선수들이었다. 누가 봐도 오합지졸에 성공가능성은 50%도 안돼보인다. '하코네 역전 경주'는 풋내기 아마추어들이 도전할 일이 아니었다. 오랜세월동안 달리기를 해온 선수들도 탈락하는게 부지기수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곳에 지쿠세이소 하숙생들이 참가하겠다는건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었고 죽음의 레이스였다.

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좀 하다가 그만둘 생각이었고 열정도 없었다. 하지만 기록이 좋아지면 질수록 이들의 열의는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의 응원도 한몫했다. 특히 가케루를 못마땅하게 보는 타 대학 선수의 노골적인 비웃음이 기폭제가 되어 이들의 단결심은 더 견고해졌다. 절대로 그들에게 질수 없다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목표했던 지점에 골인할수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이틀 연속으로 진행되는 '하코네 역전경주'는 선수 10명 모두의 땀과 노력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가장 잘 달리는 가케루와 가장 못 달리는 왕자나 흘리는 땀과 노력은 같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게 바로 역전 경주가 주는 감동이다. 1등이 아니면 달리는 의미가 없고, 빨리 달리는것만이 진정한 달리기가 아니냐는 의문에 기요세는 이렇게 대답한다. 장거리 선수에게 가장 큰 찬사는 빠르다가 아니라 강하다 라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강인함을 필요로 한다고 말이다.

처음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선수들은 '하코네 역전 경주'를 하면서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달리는 모습에 감동 받은 나 또한 부르르 전율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산다는것도 강인함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속도에만 신경을 쓰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건 강인하게 사는게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이 뛰는 속도에 신경쓰지 않고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나만의 길을 묵묵히 달려나가는것 말이다.

달리기에 관한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하게 만드는, 가볍게 읽을순 있지만 그 내용의 무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책이다. 거기다 무작정 달리고 싶게 만드니 새로운 즐거움과 동기를 얻으며 책을 덮었다. 다른 분들도 이와 같은 체험을 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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