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힘껏 달려본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아무 생각없이 바람을 가르며 뜀박질했던 행복했던 나는 어디에 있을까. 학창시절엔 친구들과 참 많이도 뛰어다녔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 소리가 좋아서, 뛰면 뛸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좋아서, 뛰고 난후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보여서 달리는게 좋았다. 달리기는 어떤 운동기구도 필요없고 그저 튼튼한 두 다리만 가지고 있으면 가능했다. 그래서 참 많이도 달렸었는데 사회인이 되고나니 내 두 다리는 멈춰버렸다. 운동할 시간이 있으면 10분이라도 더 자는게 좋았으니까. 그래서 달리기의 즐거움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난 지금 다시 달리고싶단 강한 욕망이 생겼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있다]를 읽고나서 부터다.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젊은 청춘들의 달리기를 보고있자니 잊고있었던 즐거움이 생각났고, 책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도 같이 뛰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나도 느꼈었는데 라는 회상도 하면서 말이다. 달리는건 그저 마음만 먹으면 할수 있는건데 왜 난 그동안 그 즐거움을 애써 외면해왔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고 기운이 없다는 이유로 인생의 행복 중 하나를 스스로 포기했던 거였다. 이젠 달려보고 싶다.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새벽 공기를 가르고 싶다.

가케루는 달리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육상 선수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육상부에서 퇴출당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 일만 없었더라면 가케루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탄탄대로를 걸었을것이다. 물론 강압적인 분위기와 다른 선수들의 질투를 견뎌내며, 달리기의 즐거움을 모른채 살았겠지만. 그런 가케루에게 인생 최대의 사건이 벌어진건 편의점에서 빵을 훔쳐 달아나던 그날 밤 이었다. 가케루가 달리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기요세는 바로 자신이 찾던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다.

부상 때문에 예전처럼 달릴수 없게된 기요세에게 최대의 꿈은 '하코네 역전 경주'에 나가는 것이었다. 총 10명의 선수가 뛰어야하는 경주인데 딱 한명의 선수가 모자라 신청할수가 없었는데, 그러던차에 달리기에 재능이 있는 가케루를 보게 된 것이고 기요세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기요세가 살고있는 지쿠세이소엔 그를를 포함해 총 9명의 간세 대학 하숙생들이 있었고 가케루가 합류하면서 10명, 즉 경주에 나갈수 있는 인원이 되었다. 물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달리기를 할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기요세의 반 협박과 구슬림에 넘어가 얼떨결에 경주 선수가 된 것이다.

쌍둥이 조지와 조타, 담배를 많이 피는 니코짱, 만화책만 보느라 체력이 꽝인 왕자, 흑인 유학생인 무사, TV퀴즈쇼에 열광하는 킹, 머리가 좋은 유키, 시골에서 올라온 신동, 그리고 가케루와 기요세가 바로 새로 만들어진 팀의 선수들이었다. 누가 봐도 오합지졸에 성공가능성은 50%도 안돼보인다. '하코네 역전 경주'는 풋내기 아마추어들이 도전할 일이 아니었다. 오랜세월동안 달리기를 해온 선수들도 탈락하는게 부지기수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곳에 지쿠세이소 하숙생들이 참가하겠다는건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었고 죽음의 레이스였다.

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좀 하다가 그만둘 생각이었고 열정도 없었다. 하지만 기록이 좋아지면 질수록 이들의 열의는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의 응원도 한몫했다. 특히 가케루를 못마땅하게 보는 타 대학 선수의 노골적인 비웃음이 기폭제가 되어 이들의 단결심은 더 견고해졌다. 절대로 그들에게 질수 없다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목표했던 지점에 골인할수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이틀 연속으로 진행되는 '하코네 역전경주'는 선수 10명 모두의 땀과 노력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가장 잘 달리는 가케루와 가장 못 달리는 왕자나 흘리는 땀과 노력은 같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게 바로 역전 경주가 주는 감동이다. 1등이 아니면 달리는 의미가 없고, 빨리 달리는것만이 진정한 달리기가 아니냐는 의문에 기요세는 이렇게 대답한다. 장거리 선수에게 가장 큰 찬사는 빠르다가 아니라 강하다 라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강인함을 필요로 한다고 말이다.

처음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선수들은 '하코네 역전 경주'를 하면서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달리는 모습에 감동 받은 나 또한 부르르 전율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산다는것도 강인함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속도에만 신경을 쓰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건 강인하게 사는게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이 뛰는 속도에 신경쓰지 않고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나만의 길을 묵묵히 달려나가는것 말이다.

달리기에 관한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하게 만드는, 가볍게 읽을순 있지만 그 내용의 무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책이다. 거기다 무작정 달리고 싶게 만드니 새로운 즐거움과 동기를 얻으며 책을 덮었다. 다른 분들도 이와 같은 체험을 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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