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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고구레 빌라' 이름이 굉장히 독특하죠?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고는 뭔가 이름이 촌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고구려'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 같기도 하구요. 아무튼, 표지의 오른쪽 귀퉁이에 초콜릿처럼 보이는 2층 목조 건물이 바로 '고구레 빌라'입니다. '고구레'가 들어가는 제목으로 미미여사 (미야베 미유키)의 <고구레 사진관>이 작년 12월에 출간되었는데요. 이렇게 제목이 겹칠 수 있는 것도 묘한 타이밍이죠?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에는 같은 '고구레'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 의미가 좀 다릅니다.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에서의 '고구레'는 木暮 (나무 목, 저물 모)의 한자로 씌였구요. <고구레 사진관>에서의  '고구레'는 小暮 (작을 소, 저물 모) 의 한자로 씌였습니다. '고구레' 라는 이름을 쓰는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두 작품 다 언어유희의 형식으로 '고구레'를 사용한 듯 보여집니다.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에서 '고구레'라는 이름의 빌라 주인은 70대 할아버지입니다. 나무가 저문다, 고 하면 오래된 목조 건물 즉, 고구레 빌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暮 (저물 모) 의 다른 뜻을 살펴보면 '늙다, 노쇠하다(老衰--)'는 의미도 있습니다. 70대의 고구레 할아버지가 주인인 건물, 혹은 고구레 할아버지 자신, 혹은 자신의 성(性)적인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할 수 없는 노쇠한 뒷방 늙은이, 이 모든 의미를 함축한 언어유희가 아닐까 합니다.

 

 

         옛 주인인 죽은 고구레 씨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흉흉한 소문과 폐점한 가게 (33년이나 된 무섭게 오래된 집, 바로 <고구레 사진관>이 자리 했던 그 곳. ) 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레 사진관’이라는 간판을 그대로 단 채로 생활을 시작한 하나비시 집에 어느 날 한 소녀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과는 다른 한자가 씌여졌는데요. 小暮 (작을 소, 저물 모). 小 (작을 소) 의 뜻 중에 '적다고 여기다, 가볍게 여기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옛 주인인 고구레씨의 유령이 나타나는 소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판을 그대로 단 채 생활을 하죠. 모든 불가사의는 가볍게 여기는데에서 시작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暮 (저물 모) 는 밤, 저물녘, 해질 무렵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데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불빛이 없이는 주변을 자세하게 볼 수가 없습니다. 줄거리 상으로 보아 '가볍게 여긴 밤'이라 함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사람들의 속마음이 아닐까요? 심령사진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발견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인 만큼 유령이 된 고구레 씨의 못다한 말들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우리 말로 번역하면 그저 '고구레'일 수 밖에 없는 말이 실제 그 나라의 말로 파고 들어보면 묘한 언어유희와 함께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뜯어보고 나니까, <고구레 사진관> 도 참 재미있겠는걸요 ^^

 

 

이제 본론으로 들어와서  이 오래된 2층짜리 목조 건물 '고구레 빌라'에는 다양한 연애소동이 벌어집니다. 삼각관계, 훔쳐보기, 외도, 불임 그리고 생명, 갑작스런 섹스에 대한 갈망. 닫혀진 공간 속에 살면서 저마다의 집안 풍경을 그저 상상할 뿐, 집집마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권리는 물론 없죠. 사생활 침해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각기 다른 연령들의 다양한 연애관, 성(性)에 대한 사고방식을 당당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그것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예요.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연애 에피소드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연애를 통해서 각자 연애를 하는 이유,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하고 있어요.

 

책표지의 주책없다 하겠지만 섹스가 하고 싶네 라는 문구 때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노골적일 수가! 아무리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고는 하나 죄다 저런 내용만 있으면 어떻게 하나 내심 걱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친구가 남긴 유언 -죽기 전에 섹스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갑자기 섹스에 대한 갈망에 사로 잡힌 고구레 할아버지. 누군가가 날 필요로 했으면 좋겠다 (85쪽), 난 섹스가 하고 싶어. 거절당하고 싶지 않아. 누군가가 날 원했으면 좋겠어. (87쪽) 70대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내말고 욕구를 충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나이가 들면 이렇게 느닷없는 욕구에 휘말릴 수도 있는 걸까요. 하지만, 할아버지도 원래부터 70대는 아니셨고 꼭 욕구 충족을 위한 발언이라기 보다는 자식도 건실하게 다 키워놓았고, 빌라에서 나오는 세를 받아서 생활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다른 경제활동도 없으시기 때문에 뒷방 늙은이로 남고 싶지 않다, 는 슬픔을 내비친 것이라 생각됩니다. 문득, 쓸쓸해지네요.

 

 

개는 고양이나 펠리컨과는 달리 주인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자신을 지배하고 돌봐주는 존재가 없으면 자기 존재감을 깨닫지 못한다. 그런 점도 인간과 같다. 사회라는 수렁에 목까지 잠겨 살 수밖에 없는 동물. (99쪽)  애견미용사인 미네. 어릴 적 무심코 저질렀던 자신의 실수로 인해 어떤 일이든 마음껏 하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마음을 닫아 버렸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사랑, 혹은 연애라는 것은 동경의 대상 그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공감과 관찰은 사람과 거리를 만든다. 카메라를 손에 들었어도 깊이 생각하는 성격은 여전했다. 그래서 나미키는 사랑과 발정을 뻔뻔스레 하나로 통합하는 것도, 사랑과 하나가 된 발정이니 괜찮다고 치부하며 상대방 몸속에서 작동하는 행위도 어딘지 뒤가 캥겨 좀처럼 실현하지 못했다. (280쪽) 사랑과 행위를 동일시 하지 않는 것. 자신의 여자를 소중히 할 줄 아는 나미키.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 쉽지 않은 녀석입니다. 태양이 존재할 때는 한없이 환해지지만 태양이 사라졌을 때에는 고개를 떨구는 해바라기처럼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봅니다. 아마 아직 행위라는 것 자체가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부끄럽거나 그것에 대해 떳떳하지 못한 나이이기 때문일런지도.

 


미친듯이 연애와 행위를 하지만 정작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미쓰코, 그런 미쓰코를 윗층에서 훔쳐보는 간자키, 수수한 매력을 지닌 마유, 마유가 일하는 곳의 사에키 부부 등 그들에게는 각자의 연애방식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모습이 겹쳐집니다. 처음에는 성(性)이라는 소재 때문에 조심스러웠지만 다양한 그들의 사고방식을 통해 자연스레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그건 그들이 사는 방식이니까요. 자칫 가볍게 지나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내면을 행위라는 본능을 통해서 조금은 깊게 파고 들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 '고구레'라는 뜻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조금 더 깊은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오타발견>

 

- 96 쪽 :  차양처럼 생긴 지붕은 전철기다리는 --->차양처럼 생긴 지붕은 전철 기다리는

- 255 쪽 :  아기를 길 때는 다급해서 그랬지 ---> 아기를 길 때는 다급해서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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