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의 문제

순서의 문제 ㅣ 진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순서의 문제

도진기 지음

시공사

총 7개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도진기 작가의 소설집으로 기발한 트릭과 공정한 설정 그리고 '어딘가 나쁜 놈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 김진구의 매력을 영리하게 배치해놓은 탐정소설이다. 작가는 전작과 달리 별도의 시리즈 명을 붙이지 않았다. 이는 주인공 '김진구'가 주축이 되기는 하지만 각각의 작품이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써 손색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선 주인공인 김진구와 주해미가 20대 초반으로 젊어졌고, 그만큼 분위기 역시 밝고 편해졌다고 평가 받는다. 첫 편, 「순서의 문제」에 등장하는 김진구는 잘생긴 얼굴 외에는 별달리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해 보이는 그저그런 청춘으로 보여지는데,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는 처지로, 여자 친구 주해미의 말을 빌리자면 '의지박약에 장래성이라고는 없는' 인물로 보여진다. 대학에서 법학을 복수전공했지만 그나마도 중퇴하고 사회의 뒷거리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시기적으로 볼 때는 제일 마지막 이야기인 「환기통」이 김진구와 주해미의 만남이 들어 있으니, 제일 앞에 와야 맞을 것이다.  김진구는 '어둠의 변호사'로 통하는 고진과는 다르다. 도덕과 정의를 위해 재능을 쓰는 여타의 탐정과는 달리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범죄에만 반응하고, 법망의 허점을 찾아내어 이용하는 데 일말의 주저도 없는 진구는 소시어패스에 가깝다. 비상한 두뇌와 마비된 모럴로 범죄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는 가끔은 범죄자만큼이나 악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한편한편 읽어갈수록 악한이라고 해도 그 매력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 묘한 캐릭터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해미와 함께 있을 때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20대 청년이 되기도 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여기에 수록된 7편의 제목을 살펴보면,

순서의 문제
대모산은 너무 멀다
막간: 마추피추의 꿈
티켓다방의 죽음
신 노란 방의 비밀
뮤즈의 계시
환기통의 순서로 담겨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범죄의 진실과 돈이라는 통속적인 대가를 거머쥐는 사이에 어느덧 나도 주인공의 편이 되어서 함께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진구의 캐릭터를 강렬하게 그려낸 표제작 「순서의 문제」를 시작으로 해서 여자친구인 주해미가 던져놓는 몇 마디 말을 토대로하여 사건의 전모를 완벽하게 파악해내는, 진구의 천재성을 보여준 「대모산은 너무 멀다」와 얼마전 TV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꽃보다 청춘을 통해서 윤상, 유희열, 이적과 함께 떠났던 페루 여행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해 주는 「마추피추의 꿈」과 이제 장소를 영동으로 옮겨서, 거듭되는 반전을 통해서 통쾌함을 느끼게 해주는 「티켓 다방의 죽음」도 좋았다. 또한, 스스로 운전을 하고 있음에도 미처 그 발견해내지 못한 채, 진구의 설명을 들으며 아차! 했는데, 시간과 공간을 완벽하게 조율한 트릭, 현장감이 살아 있는 법정 공방이 특히 돋보이는 「뮤즈의 계시」에서는 모처럼 고진 변호사가 등장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진구와 해미의 풋풋한 만남의 현장까지 담아 시간상으로는 제일 앞에 와야했지만, 진구에 대한 전반적인 캐릭터는 덜 살았다고 생각되는 「환기통」까지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2015.1.6.(화)  두뽀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