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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눈뜰 때 ㅣ 소설Y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 창비 / 2023년 5월
평점 :
<호랑이가 눈 뜰 때, 이윤하>
이윤하 작가의 <호랑이가 눈 뜰 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한국 신화와 SF가 결합된 K-판타지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한국적 요소를 좋아하는 편이라 많은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또, 디즈니+에서 영상화가 확정되었고, 휴고상에 최종 노미네이트되었다는 문구도 내 기대감을 올려놓았다. 평소 SF 장르를 즐겨 읽었기에 호랑이, 여우, 천인, 도깨비, 용이 등장하는 우주군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공용어가 한국어인 ’천 개의 세계‘에는 다양한 종족이 살아간다. 호랑의령의 주황 세빈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3살 주황 세빈은 우주군에서 근무하는 삼촌 ‘환’을 존경하며 언젠가 자신 또한 우주군 생도가 되는 날을 꿈꾸며 호랑이령 가족들의 엄격한 규율과 훈련들을 수행해나간다. 그 수행 과정 속 작은 의문이 피어오르기도 하지만 엄격한 가모장과 부모의 통솔 아래 의심은 접어두고 자신에게 친근한 ‘순이 이모’와 훈련을 이어나간다. 우주군 생도 입대 허가 편지를 받은 날, 자신이 존경하던 삼촌 ‘환’이 반역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편지가 전해져오고 주황 세빈은 혼란 속에서 해태호에 입대하게 된다. 반역자로 몰린 삼촌 ‘환’ 때문에 불안감을 가지고 입대한 주황 세빈이 막 우주군 생도 선서를 하려던 때, 해태호에 알 수 없는 굉음과 함께 비상상황이 발생한다. <호랑이가 눈 뜰 때>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해태호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침입자에 맞서 싸우려는 주황 세빈과 그이의 동료들의 모험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직접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호랑이가 눈 뜰 때>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이 이야기의 다양한 인물들은 자신의 성별을 선택하여 뱃지로 표시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은 ‘그’, ‘그녀’, ‘그이’의 세 가지 성별을 지칭하는 말이 등장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지휘 또는 통솔권자가 여성이고 가족의 형태가 모계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읽은 대부분의 SF소설들이 여성을 중심으로 한 서사인데, <호랑이가 눈 뜰 때>는 여성이 중심이 되는 듯 하다가도 논 바이너리들이 등장하며 다양한 성별에 대한 관점이 등장한다. 또, 이 소설의 대부분의 인물의 이름은 외자이다. 주인공인 주황 세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물의 이름이 외자로 등장한다. 작가가 이러한 설정을 넣은 것에는 의도가 있겠지만, 소설을 읽으며 인물들의 이름과 성별이 헷갈려 문장을 다시 읽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주황 세빈은 13살의 나이로 해태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순간적인 선택들로 해결해나간다. 그 당시에는 그 순간에서의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이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 선택들은 주황 세빈이 일을 해결하는데 능력을 발휘한 것이 된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의 주인공이 당면한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경험이 적은 13살다운 선택들이라 그 선택들을 응원하게 된다. 우주군 경험도 없는 13살 주인공이 능숙하게 문제를 해결해나갔다면 아마 난 이 책에 금방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협력하며 자신만의 팀을 꾸려나가는 주인공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다보면 주황 세빈이 언젠가 하나의 커다란 배를 가진 선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다만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높았기에 아쉬운 부분들이 부각되었던 것 같다. 첫 번째로는 한국 신화와 한국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것에 비해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러한 요소들이 많이 눈에 띄지 않았으며, 눈에 띄더라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야기의 주된 요소인 호랑이령, 여우령, 도깨비, 천인, 용 그리고 무당과 귀신이 소설 내에서 잘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호랑이령과 여우령에 대해서는 외형적 특성과 그들의 능력으로 소개가 조금이라도 된 반면 도깨비, 천인, 용 등은 굳이 안 넣었어도 될만큼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크게 의미가 있지 않았다. 인물들의 외형적 특성과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의 종족을 설정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 속 등장하는 삽사리와 잡채, 제사, 은장도 등도 비슷한 이유로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 신화적인 요소와 SF가 결합했다는 말에 기대를 많이 했기에 이러한 요소를 더 잘 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며 혼자 아쉬워했다. 두 번째로는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황 세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여서 1인칭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작가가 주황 세빈의 입을 빌려 세계관과 현재 주인공과 주변 인물에게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쓴 문장들의 호흡이 자기들끼리 합이 맞지 않아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가끔 의식의 흐름처럼 문장들이 나열되어 뚝뚝 끊긴다는 느낌을 소설을 읽는 내내 느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여서 영어로 쓰인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을 했을텐데, 그래서 그런지 일부 문장 구조나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어색하기도 했다.
디즈니+에서 영상화가 된 <호랑이가 눈 뜰 때>를 상상해보았다. 주황색 털을 가진 호랑이가 안광을 뽐내며 포효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영상화가 된다면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책에 묘사되는 우주와 우주선, 그리고 인간일 때와 자신의 종족으로 변신했을 때의 인물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영상에서는 내 상상보다 더 황홀하게 표현되기를 바란다.
다소 아쉬웠던 점이 있었지만, 한국적인 요소를 SF에 녹여낸 <호랑이가 눈 뜰 때>는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큰 박수를 받을만하다. 소설 곳곳에 녹아있는 한국적 요소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던 책이었다. 출간 전 대본집의 형태로 받아 표지가 없지만 출간된 책을 보니 위엄있는 호랑이 한 마리가 표지에 그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살았지만, 일본에 의해 사라진 호랑이가 책 표지 위에 살아 숨쉬며 잊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속 무섭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했던 호랑이를 떠올리게 되었다. 전래동화에 자주 등장해 익숙했던 호랑이를 주황 세빈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던 <호랑이가 눈 뜰 때>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한국적 요소가 결합된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그 관심이 또 다른 다양한 한국적 요소가 담긴 SF소설들로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