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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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벗은 모습을 보고 싶소.“ 그가 말했다.
“딱 한 번만. 그냥 보기만 하고 다른 것은 안 해요.”
p.16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약혼자와 헤어지고 엄마 세상을 떠나고 마음에 공허함만이 남아있던 루이즈에게 어느 날 레스토랑 단골인 티리옹 의사가 상상도 못할 제안을 한다. 면상을 갈겨야 할 것 같지만 루이즈는 이 제안에 묘하게 끌린다. 만 프랑을 받는 조건으로그의 제안을 수락하는 루이즈. 호텔에서 만난 티리옹 의사는 놀라우리만치 늙어보였다. 아니, 지쳐보였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천천히 옷을 벗는 루이즈. 전라가 된 그녀를 바라보는 묘한 표정의 티리옹. 바로 그 순간 티리옹은 총을 꺼내 자신의 얼굴 반을 날려버렸다. 정신을 못차리고 뛰쳐나간 루이즈. 그리고 시작되는 천일야화보다 더 재밌고 놀라운 반전의 반전을 거듭된다.


2차 세계 대전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때, 마지노선에서 근무하는 라울과 가브리엘. 갑작스런 독일군의 공격으로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라울과 가브리엘은 탈영병 신세가 된다. 파리 시민은 이제 피란을 가야하는데, 무엇에 홀린 듯 파리에 남아 엄청난 비밀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다니게 된 기구한 운명의 기동헌병대원 페르낭, 변신의 귀재로 똑똑하다는 지식인들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신나게 놀아나는 데지레.


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파리. 부상과 죽음 고통과 절망을 가슴에 안고 피란을 떠나는 시민들의 모습과 B급 코미디보다 더한 상황을 연출하는 국가의 시스템을 보여준다. 책임자들은 떠나고 유언비어를 퍼트리기 바쁘다. 국민들의 안전, 생명에는 관심이 없어보인다. 이 기시감은 무엇인가?
그런데 이 책 심각하고 천불이 나는 상황을 묘하게 비틀어 웃음을 선사한다. ‘피에르 르메트르’ 아저씨 순간 ”발자크“로 빙의한 줄. 읽다보면 헛웃음이 자꾸만 나온다.


1차 세계 대전을 다룬 “오르부아르”, 전간기(戰間期)를 다룬 ”화재의 색“에 이어 2차 세계 대전을 담은
”우리 슬픔의 거울“로 전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3부작에 담아냈다.
오르부아르에서 어린 소녀로 등장했던 “루이즈”가
우리 슬픔의 거울에서 성인이 되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오르부아르를 읽어본 독자라면 그녀의 등장만으로도 엄청 반가움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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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유럽의 도시 - 4가지 키워드로 읽는 유럽의 36개 도시
이주희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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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travel)은 ‘고생’, ‘고통’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travail’에서 기원한다”(p.241)고 한다. 집 나가면 고생이란 건 만국공통의 정서인가보다. 고생인 걸 알면서도 우린 왜 돈과 시간을 들여 아니 체력과 감정까지 들여서라도 기꺼이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
단순하게 새로운 것을 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마따나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얻기“ 위해서일까?


배낭여행 중 만난 이탈리아에 마음을 빼앗겨 11년 동안 유럽에서 거주하며 로마 지식 가이드, 박물관 학예사의 길을 걸었다는 이주희 작가.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공정 여행사의 기획자가 되어 환경에는 최소한의 피해를, 지역민에게는 보탬이 되는 지속 가능한 여행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정 무역처럼 지역 주민에게 보탬이 되는 여행을 기획하는 기획자라니! 멋지지 아니한가!


전직 역사학도답게 이주희 작가는 여행 중 만난 고대 도시에서 역사를 읽고 예술을 이야기한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돌 위에 얹혀진 시간과 그 시간 속에 쌓였을 이야기를 읽는다.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같은 돌도 누군가에게는 역사로 읽히다니!!


#역사 #예술 #책 #라이프스타일 이렇게 네 가지 키워드로 유럽의 36개 도시를 소개해준다. 익숙했던 공간을 살짝 비틀어보기, 그리고 돋보기로 확대해보기!! 스치듯 지나갔을 이야기와 공간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건물과 공간, 정치와 사회 문화, 그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것을 느끼고 보고 경험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설렘 가득한 책공간을 지은 도시를 소개하는 챕터였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을 지식의 보고 도서관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특히 독일 슈투트가르트시에 지어진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은 한국인으로서 자긍심도 느끼게 해 주었다. 도서관 설계 공모전에 당당히 선정된 이가 바로 한국인 이은영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2011년 들어선 도서관의 모습. 왜 그렇게 뭉클하던지..
이 책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일이었다.


낯익은 유럽 속에서 만나는 낯선 도시 이야기.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는 건 어떨까?
관광과 먹거리 중심이 아닌 역사와 예술이 숨어있는 도시를 소개하는 인문학 가이드. 어떤 여행서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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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파더스 클럽 -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성장일기
강혁진 외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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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육아일기 쓰는 게 뉴스에 날 일인가?”p.269


암요 암요 뉴스에 날 일입니다.
아이는 함께 만들었지만 양육은, 육아일기는 거의 엄마의 몫이었고, 아빠들의 육아휴직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지 말입니다. 백 년 후에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로 대한민국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저출생 시대이고, 인식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빠들의 양육 참여도는 그닥 높지 않으니까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 뭐예요?
성별도 나이도 각기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 다섯 명이 모여 매주 일요일 밤 9시에 이메일로 발행하는 육아일기 뉴스레터입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참여한 다섯 명의 아빠들은 마케터, 금융서비스 기업 콘텐츠 제작자, 투자자, 기획자 등 직군도 다양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현생에 치여 갓생은 꿈도 못 꿀 거 같지만 그럼에도 육아휴직을 비롯해 육아일기까지 쓰면서 자신들이 겪은 돌봄 이야기, 초보 아빠로 좌충우돌 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이야기들. 아내에게 전해들은 ‘낮에 이랬어, 저랬어’가 아닌 ‘이렇구나, 저렇구나’의 온도. 주양육자였지만 늘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로 살았던 여성들에 대해 쏟는 마음까지…


엄마와 아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허락하지 않고 서투르고 몰라서 두려운 마음이 내 아이 돌봄에 적극 나서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실수하면서 배우고 익히고 그러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몸짓과 언어를 이해하며 사랑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일 테지. 그 시간들은 그저 한 남자가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뿐 아니라 한 사람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제공해준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아빠들의 성장 스토리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MBC 뉴스데스크, EBS 다큐프라임이 주목한 아빠들, 주요 일간지 인터뷰 요청 등 2022년 2월 6일 일요일 밤 9시 첫 번째 뉴스레터를 보낸 후 나타난 세상의 뜨거운 반응이다. 뉴스레터를 보내기 전부터 몇몇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아빠들의 이런 움직임이 너무 반가우면서도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화제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돌봄에 대한 이야기가 (힘들어 죽겠어요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아닌) 계속 세상에 나와주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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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달 민트래빗 일본 전국학교도서관협의회 선정 도서
도미야스 요코 지음,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송지현 옮김 / 민트래빗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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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로 예순여섯 살이 된 도미야스 요코는 노마 아동문예상, 일본아동문학자협회상,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등 오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의 아동문학상을 휩쓴 작가이다. 일본 전국학교도서관협의회 ‘2022그림책’ 으로 선정된 “신비의 달”을 만나보자.


달아, 달아. 신비한 달아….


어둠이 찾아오면 밤 하늘을 환하게 비춰주는 달.
달빛이 내려앉은 곳에선 어떤 일이 생기는 걸까?


달빛을 받은 들판에선 꽃들이 피어나고
밤하늘과 하나가 된 바다에선 물고기가 춤을 춥니다.
숲속 곤충들은 요정을 변하기도 하고
잠 자는 아이들은 하늘로 둥실 떠오르기도 합니다.
고요한 사바나의 사막, 가난이 깃들 마을,
전쟁의 포화속에서 폐허가 된 마을까지..


신비한 달은 어디에서나 그 빛을 비춰줍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에게
밤이 무서워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달빛이 선사하는 희망을 들려주세요.
그 밤 아이들도 신비한 달빛을 받아
상상도 못한 꿈의 나라를 헤엄칠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선 고래, 거북이, 코끼리, 꽃, 희망을 잃어버린
친구들을 만나 누구보다 신나게 놀고 있지 않을까요?


달아, 달아. 신비한 달아.
너는 언제나 내려다보고 있구나.
이 세상의 기쁨을.
이 세상의 슬픔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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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자 은유 추천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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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p.13


책의 저자인 낸시 애러니는 생후 9개월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던 아들 댄의 죽음을 경험한다. 아픈 아들을 돌보면서 부서지는 마음과 몸, ‘아픈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에 갇힌 자신의 삶을 본다. 그리고 그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쓰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제 3자의 입장이 될 수 있었고, 치유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아들을 돌보는 힘든 순간에도 즐거운 순간이 많았음을 잊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전적 에세이 덕분에 아들과 함께 하는 여정히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절묘하고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한다. 이 엄청난 치료제를 알리기 위한 ‘마음으로부터 글쓰기’ 워크숍을 45년 동안 운영하면서 자신과 같이 치유가 시작된 이들을 보게 된다. 글쓰기를 통해 변한 삶에 대한 기록 그리고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내미는 친절하고도 유머러스하며 감동적인 안내서이다.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 독후감, 글짓기, 레포트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직장인일 때 쓴 보고서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넘쳤다. 그런데 내가 어쩌다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그 지난한 일을 굳이 자진해서 쓰는 것인가.


글감은 늘, 거의 대부분 나를 할퀴고 간 상처들이었다. 내 몸에 심장에 뇌에 박혀 자꾸 찌르기만 하던 일들. 꺼내놓기 부끄러운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희한도 하지, 내 속에 담아놓았을 때는 엄청난 일처럼 느껴지던 것이 끄집어내 종이 위에 적으니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오는 하나의 과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태어남과 죽음 그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유난히 아팠고, 유난히 즐거웠던 그런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러니 그저 넌 킵 고잉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내 삶과 어린 시절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었다.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과 사건이 용서가 되기 시작했다. 글쓰기의 효과가 내 삶에 나타나던 순간이었다. 이 경험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에도 적용될 것이다.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이야! 괜찮아!’


그러니 아플 땐 아파하고 기쁠 땐 기뻐하기로 한다. 그런 모든 감정들과 일들이 모여 결국 나의 삶을 이룰 것이고 나를 만들어갈테니 말이다.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은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그러니 오늘을, 현재를 충분히 누리고 즐기며 살 것!! 그리고 쓸 것!! 


”지금 저곳에 당신의 이야기와 똑같은 모양의 상처를 지닌 누군가가 있으니까…“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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