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장식한 저자의(아마도) 표정이 재밌다. 장서의 `괴로움`보다는 난처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표정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어떻게 저 지경까지...라며 탄식할 수 있겠지만 장서가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 일면 부럽기도 하다. 현재 장서량은 많지 않지만 집에 작아 본의 아닌 장서의 괴로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이사가고 싶다
수기(修己)하여 치인(治人)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하는 유교적 사상에서 덕(德)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그 정반대에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테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키아벨리가 있다. 개인과 정치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며 때론 군주의 잔인함역시 필연적임을 주창한다. 하지만 군주의 ˝부도덕˝이란 공공의 이익이 선행될때만 사용가능한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군주는 ˝가능할때는 기꺼이 덕을 따르고 필요하다면 덕을 기꺼이 무시할˝수 있는 것이다. 정치든 세상이든 다면적이기 때문에 수단의 대결이 행위의 목적에 대한 최소한의 동의가 전제된다면 얼마든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오독하지말자...분명 공공의 이익이 선행된다 면!이다. (특정 소수 말고..)
˝길이 끊어지면 이야기가 끊어지고, 이야기가 끊어지면 반지혜가 생겨난다. 무지와 무시, 혐오와 집착, 학살과 숭배가 양두사의 머리처럼 동시에 자라난다..˝ 오랜 시간의 단절은 우리가 이어져 있단 사실조차 잊혀지게 만들었다. 만연한 우월감과 열등감이 그 결과물일터. 끊어진 길을 잇는 과정, 그 과정속에서 이야기를 잇는 것. 그 연결이 우리를 지혜의 발견으로 이끌기 때문에 여행기는 충분히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