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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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Magister Ludi] https://pedagogics.tistory.com/130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눈가리고 책읽는당 활동'(버드 스트라이크 가제본 사전 서평단) 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출간 전 양서를 먼저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구병모 작가님과 창비출판사 측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서평 중 인용문의 쪽수(페이지)는 직접 구입한 <버드 스트라이크> 정식 단행본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다친 동물을 감싸기 위해서는 양어깨의 날개를 앞으로 모두 모아야 한다. 따라서 날개가 큰 자일수록 더 큰 동물을 보살필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새의 보호를 받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새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그들은 때가 되거나 필요한 순간이 오면 모두 일정 크기의 이상은 날개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펼쳐 보아도 비오의 날개는 그 자신의 등을 덮기에도 모자랄 만큼 짧고 작았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6쪽


 

 

 

  “우리가 하는 말 …… 대강 알아듣지? 너희는 어릴 때부터 우리 말과 벽안인(碧眼人)들의 말까지 모두 배운다고 들었는데.”

비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비오의 엄마의 엄마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시 사람들에게 유구한 세월 들볶이고 형태가 있는 거라면 뭐든 빼앗기는 과정을 거치며 이제는 고원 지대의 고유어를 제대로 기억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지장을 비롯해서 열 손가락 안에나 들까. 마을 행사 때 단체로 부르는 노랫말 정도를 제외하곤 자신들의 말을 쓸 일이 없었다. 고원 지대에 남은 거라곤 이제 한 뼘의 땅과 흐드러진 꽃과 바람 같은 것들뿐. 애당초 그런 것들조차 소유하려 들지 않고 고원의 품에 되돌려주면서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들은, 도시인의 약탈로 인해 그런 꿈을 꿀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0-21.

 


 

 지금은 이미 구병모 작가님의 신작으로 널리 알려진 『버드 스트라이크』의 정식 출간 전, ‘눈가리고 책읽는당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수령하였다. 백색의 표지에 작품의 단서로 #새인간 #작은날개 #영어덜트소설(*Young Adult(YA)소설은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을 의미한다.)이라는 단 세 개의 해시태그(키워드)만 제시되어 있는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지닌 채 작품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내가 읽는 작품의 작가와 책의 제목도 모른 채 책장을 처음 넘겨가는 와중 벽안인익인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생소한 용어에 공간적 배경이나 시간적 배경이 특수한 SF소설인가? 미래소설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졌던 것도 찰나, 작품을 읽어내려가며 익인과 벽안인들의 관계, 그리고 핵심 주인공 비오(익인)와 루(벽안인)가 그들의 집단에서 자리하는 특수한 위치를 읽어낼 수 있었다.

  과학기술과 문명을 지닌 도시에서 살아가는 벽안인들은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유사한 반면, 날개를 가진 사람들인 익인들은 도시의 벽안인과는 떨어져 그들만의 고원지대에서 살아가며 그들만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익인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벽안인들에게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심지어 벽안인들과는 달리, ‘날개를 지니고 있는특수한 인종(人種)으로 여겨져 연구나 실험의 대상으로 자리하기까지 한다.

 


  여러모로 맘에 들지 않는 생활이었지만 청사에서 지내다 보면 가끔 특별한 기회가 있었다. 청사 바에 사는 또래 아이들은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 책에서 사진으로나 보았던 익인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고원 지대에 모여 사는 익인은 날기에 최적화된 작고 가벼운 몸집에 성질은 순한 편이라 들었는데 어쩌다 오늘처럼 떼를 지어 청사를 공격해온 건지, 지적 수준이 도시인들과 같으며 동작이 빠르고 날기까지 해서 생포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잡혔는지 궁금했다. 낮에 그들이 천장과 벽을 두드려 대고 부수는 동안 진동을 일으키는 책상 밑에서 볼썽사납게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루는 이제 가까이서 포로를 관찰하는 특전 정도는 누리고 싶은, 아직은 천진난만하고 무신경한 나이였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감수성이 익인한테까지 미치지는 못했고 그들이 무언가 진귀한 대상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35.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의 벽안인과 익인들 사이에서, 현 시행의 이복(異腹)동생이며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아버지의 고향에서 평화로이 살다가 갑작스레 어머니 아마라와 전() 시행의 재혼으로 정부청사에 들어오게 된 소외된 아이 벽안인(碧眼人) , 그리고 날개가 있는 익인들 사이에서, 익인 어머니와 벽안인 친부(親父) 사이의 혼혈로 태어나 다른 익인들보다 작고 왜소한 날개를 가지고 태어난 익인(翼人), ‘비오’.

  벽안인들의 청사에 납치되어 취조를 받던 비오가 고원으로 도망치기 위해 루를 납치한 다소 기이한 만남으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결국 인종(人種)간의 경계를 넘어 루와 비오가 갖게 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자연스런 이끌림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집단)에서 누구보다 약하고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타인과 동일시(同一視)한다는 것이 위험요소도 분명히 있겠으나, 비오와 루의 경우 이를 통해 외로운/소외된 이들 간의 연대와 유대로 이어졌고 그 외로움을 이해하고 품어 주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선물과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기실 우리 모두가 누군가로부터 평가받거나 판단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축복이나 선물과 같은 귀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난 걸 후회하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부끄럽지도 않아. 사실 축제 날 나 말고 다른 두 친구는 뜨거운 불 앞에서 이미 다른 이들의 청혼을 받았는데, 나한테만 아무도 청혼해 온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의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 말이야.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07.

 


 

“아주 잠깐이라도, 그 인연을 귀하게 여기세요.”

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기에 루는 엉거주춤 일어서려고 했으나 지장은 그대로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어떤 우여곡절을 거쳤든 간에,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나 연결된 데에는 이치가 있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론 설명되는 연결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살아 있는 이유랍니다. 그러니 이어진 끈을 섣불리 자르려 하지 말고 그리로 마음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지내는 동안 루, 당신에게 평안이 있기를.”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26.


 

  작품 내에서 벽안인들과 익인들 사이의 불평등한, 차별적 관계와 루와 비오의 소외된 위치에 대한 내용과 메시지들이 유독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큰 목소리)로 들려오고 그만큼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오래 전부터 2019년을 살아가는 현재까지 이러한 이슈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하며 읽어 온 우리 세대의 명작, 해리포터(Harry Potter)만 해도 마법세계에서 순수혈통과 혼혈, 머글 간의 차별이 핵심이슈로 등장하며 머글 출신이기에 차별받거나 심각한 욕설을 듣기도 하고, 집요정과 같은 존재는 생명체로서의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 최근 10주년을 맞이한 구병모 작가님의 등단작 위저드 베이커리(2009) 또한 말을 더듬고 집안에서 마음 줄 곳이 없는 소외되고 외로운 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바 있다. 그만큼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다시금 차별의 실체와 소외된/외로운 이들 간의 연대와 유대, 존재의 필요에 대해 역설한 버드 스트라이크의 목소리가 반가우면서도 아직도 이러한 문제가 사회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고 동시에 고맙기까지 했다. 비단 다문화가정이나 난민문제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성별(여성/남성), 장애유무, 성적 등 다양한 방면, 어떠한 상황에서 약자이며 소수자일 수 있고 소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빠, 어떻게 좀 해 봐요. 내 작은 날개로는 이 아이를 덮을 수 없어요.

죽어 가는 다람쥐를 안고 속을 끓였던 그 때, 아버지는 뭐라고 했더라.

사막의 밤바람이 부러진 뼈마디를 속속들이 핥고 지나간 비오는 이제 상반신을 완전히 일으켜서 버티고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날개 따위 신경 끄렴.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던가?

-그냥 그대로, 꼭 안아 주면 돼.

그것이 뭐든 간에 자신이 가진 것을 주면 된다고, 아버지는 그랬던 것 같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56.

 


 

“베푸는 겁니다. 무엇이든 나눠 주는 거지요. 자기가 가진 거라면, 하다 못해 한 줌의 체온이라도 말입니다. 조각 내서 나눠 줄 수 없으니 그 순간 눈앞에 있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마음의 전부를 주는 것, 그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258.


 

한편 작품이 영 어덜트(Young Adult) 소설, 즉 성장소설이자 교양소설(입사식 교양소설)로서 정체성을 지니고 자리할 수 있는 성장에 대한 화두또한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익인들의 사회에서 성인이 되는 열여덟 살을 맞는 이행식은 굉장히 중요한 순간으로 다가오는데 루의 항의로 인한 지장의 내적 갈등과 변화 전까지 비오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작은 날개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열여덟살의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행식에 참석할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였다.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를 통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고 예속된다면 그것을 진정한 성장이라 볼 수 있을까?

2019년 대한민국의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성인들이 20-30대에 이르기까지 심리적,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심리적, 경제적 독립이 되어있지 않으니 완벽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이르기에도 어렵다. 주요 애착대상이었던 가족, 부모에게서 온전히 독립하여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혼자 비행하기 위한 독립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작품은 비오의 일화를 통해 이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비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지장이 지니는 문제의식과 비오의 정체성 확립은 익인들 모두와 비오의 성장에 주요하게 자리한다.

 


 

  우리는 열여덟 살을 맞이하는 해에 날을 정해 놓고 다 같이 모여서 이행식을 한단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일. 아이에서 어른으로 건너가는 날. 그 도약을 모두가 함께 축하하는 날. 그해에 열여덟 살을 맞이하는 사람이 비록 한두 명에 불과하더라도 그 날은 마을 전체의 축제일이란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한 해에 한 명은 꼭 있어. 많을 때는 아홉 명까지도 있었고 나 때는 세 명이었지. (중략) 사실 내게는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니었단다. 내 몸의 달맞이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했고, 그날의 축제는 나이를 한 살 다 먹는다는 의미일 뿐 사람의 인생에 어떤 경계나 구획이 명확히 그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축제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누구도 내가 다음에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지 않는데, 그 시간과 함께 아이의 껍질을 벗고 어른이 되었다고 선포하는 행위가 나한테는 새삼스럽게 여겨졌단다.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05-106.


“그 애는 아닙니다.”

“예?”

“비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올해 열여덟 살이 되긴 하지만 비오는 우리 안에서 온전한 어른으로 지낼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그런 비난에 가까운 폭언을 고스란히 받아 내면서도 비오의 앉은 자세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중략)

“……우리 비오라면서요.”

(중략)

“그래도 실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 전 제 얘기를 코로 들으셨나 봐요. 웅장하고 경직된 청사 안에서 아무도 저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숨 쉬는 것 말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입 밖에 낼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갈 수 있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없었어요. 제가 원해서 그곳으로 간 게 아닌데도요. 그런 저한테도 축복을 이야기하시고서, 이렇게 가까이 있는 비오에게는 이러실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28-130.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지나치게 잘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규격에 맞도록 어깨를 움츠린다는 게, 좋기만 한 일이었을까? 안 그래도 작은 날개가, 비오의 마음에 영향을 받아 더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더 크게 활짝 펼칠 자격이 없다 하면서.

지장은 비오에게서 어른이 될 권리를 빼앗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일인지에 대한 확신이 옅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초원조는…….”

졸고 있는 줄 알았던 옛사람이 문득 입을 열어 소리를 내자 지장은 고개를 들었다.

“아기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간에…… 생긴 그대로 품어 주었네.”

다른 사람들의 불안과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가, 생각보다 너무 길고 가혹한 대가가 되어 그 애에게 영원한 유목민 내지는 이주자의 낙인을 찍어버린 걸까. (중략)

“그러니 그 작은 날개로 어디까지 날겠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이제는 날 수 없는 몸으로 초원조의 부름을 기다리는 옛사람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나.”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45-147.


  비오는 그 전까지 형식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썼던 이행식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실은 자신이 이 문을 통과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얼룩의 자리를 옅은 기대감이 채워나갔다. 비오는 한 명의 당연한 익인이었다. 도대체 날개가 있는데 익인이 아니라면 뭐란 말일까?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187.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본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잊을 수 없다. 그 드라마의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현실을 비판하면서 결국 자녀의 인생이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핵심 메시지로 강조하고 있었다. 구병모 작가의 <버드 스트라이크> 또한 맥을 같이한다. ‘는 비오를 구하면서 자신이 지닌 힘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며 유영기 조종사의 직업을 선택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였고 비오는 어머니와 가족, 익인 사회의 품을 떠나 완벽한 독립을 위한 비행을 시작했다.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청년들의 가능성을 규정하지 않고 그들이 그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끔, 스스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10년간 오랜 사랑을 받은 구병모 작가의 등단작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선택과 ,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최신작 『버드 스트라이크』에서도 이 주제의 맥이 다른 언어와 서사로 그려진다. 루와 비오의 성장을 통해 다시금 청(소)년들에게 성장에 대한 자각을 촉구한 구병모 작가님에게 진실로 감사드리며 10주년을 축하하고 싶다.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선택하는 삶을 통한 성장에 대한 작품들을 더욱 오래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보며 차기작을 다시금 기다린다.



 

 

 

엄마와 나를 그 집에 두고 먼저 떠난 비오가 원망스럽기도 해. 하지만 그것이 비오의 선택이라면, 존중해 주려고. 비오는 결코 원해서 그와 같은 몸을 하고 이 세상에 온 게 아니니까.

출발하기 전날까지 지장 어른을 비롯해서 아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오랫동안 인사를 나눴어. 그걸 보니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라는 걸, 일시적이며 기분 전환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완전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꼭 그렇게 우리 옆에서 멀어지고 홀로 되어야만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나아가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날아가고 싶은지……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 수 있는 거냐고, 마지막 날 밤까지도 나는 묻지 않았어.

아이들이란 언젠가는 부모를 떠나는 게 맞는 거라고 엄마가 허락한 걸, 내가 무슨 자격으로 따질 수 있겠어.

 

 

-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창비, 2019, 33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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