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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머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스노우 맨'으로 유명한 요 네스뵈의 최신 번역작(?) '리디머'. 2005년 발표된 작품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서는 '스노우 맨'의 이전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에는 가장 최근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덕분에 순서는 뒤죽박죽이라지만 난 딱히 해리 홀레라는 인물 자체에는 관심 없어서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말이 시리즈물이지 형사가 동일하게 해리 홀레라는거 말고는 범인도 개요도 다 다른 사건인데 그 순서가 뭐가 중요한가 싶긴 하다.
아무튼 제목의 '리디머'는 구원자, 구세주를 뜻한다고 한다. 제목부터 뭔가 종교 색채가 짙은 듯한 스멜이 나는만큼 등장하는 인물들도 구세군, 구세군 장교와 살인 청부업자인 '어린 구세주'가 등장한다. (이 소설 자체가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는데 중점을 둔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크라임 스릴러이기 때문에 스포라는 둥 뭐라는 둥 하지는 말기 바란다. 살인 청부업자인 '어린 구세주'는 처음부터 대놓고 표적을 착실히 잘 죽이면서 돌아다니고 있으며, 그의 심리 묘사까지 너무나 논란의 여지 없이 확실하니까 말이다.)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살인청부업자의 별명이 어린 구세주라니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건 살해당한 희생자도 마찬가지다. 남을 돕고 헌신하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속내며 하는 짓은 더럽고 추악하기 그지 없는 쓰레기였으니까.
해리 홀레와 어린 구세주가 쫓고 쫓기는 과정, 어린 구세주와 청부 목표의 쫓고 쫓기는 과정이 번갈아 진행되는 가운데 드러나는 각 등장인물들의 구린내 나는 사정들, 시선들, 행동들. 각자의 생각과 사정들이 정신없이 흩어져 있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하나로 모아지면서 종내에는 아, 싶은 카타르시스가 뿜어져 나온다.
다 읽고나면 한가지 생각이 든다. '리디머'는 제목과 내용, 등장 인물 설정 모두 굉장히 잘 뽑은 소설이다. 겉은 인자하고 헌신적인 봉사자들이지만 속은 썩은 구세군, '구세주'라고 불리지만 별명과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을 살육하는 청부업자, 그러면서 제목은 또 구원자라니. 어쩜 이렇게 모든 것을 삼위일체로 짜맞춘 듯 잘 뽑아낼 수가 있을까.
같은 작가의 국내 유명작 '스노우 맨'을 볼 때는 너무 지루해서 감상평을 썩 좋게 남기지는 않았었는데, 오히려 더 오래된 전작이라는 이 리디머는 느낌이 굉장히 괜찮다. 희생자와 범죄자, 그 둘 사이에서 본인 자신 또한 구원하고자 했던 해리 홀레의 갈등도 굉장히 좋았고, 그래서 마지막 선택이 특히 좋았다. 구태의연한 결말이었다면 김이 샜을 것 같은데, 그 선택으로 인해서 소설 제목에서부터 여러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모습과 상황의 양면적 아이러니들이 정점을 찍는 느낌이다.
단점이라면 스노우 맨 때도 느낀 너무나 번잡한 곁가지와 실시간 자캐 오덕질 중인 듯한 너무나 세세한 설명들이다. 아직 이 작가 책을 두 권밖에 읽지 못했으니 단정 짓긴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그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낀건 책 앞의 1/3~1/2 정도는 떼어내 버리든가 압축을 하는게 가독성 면에서 훨씬 더 좋았을거 같단 것과, 각 등장인물들을 세세하게 설정해서 입체적으로 묘사하는건 좋은데 그 과정이 너무 길어서 중간 정도까지 참고 읽기 힘들 정도로 지루하기 그지 없는 점을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게이 강간범의 남자 만나는 취향과 헌팅 비법, 앞으로의 여행 계획 등만 해도 그렇다. 이런 부분은 내용과 직접적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은 있는 부분이라, 언급 되면 친절한 정도지만 세세하게 묘사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너무 지나친 정보 과포화로 지루함을 유발한다. 작가가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매우 섬세하고 세세하게 공들여 설정하는 성실한 타입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정밀하게 자신의 성실함을 뽐내서 독자에게 지루함과 피로함을 유발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그나마 게이 강간범은 어느 정도 연관관계가 있다고 치지만, 그만큼의 중요도조차 지니지 않는 일회성 캐릭터마저도 하나하나 배경을 설명해주곤 하는데 그런 부분은 아주 극혐이다 ㅠㅠ 과유불급임. 열심히 설정해서 쓴다는건 알겠으니 완급을 좀 조절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 부분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인물들에 몰입해서 보고, 책을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는 사람에게는 시계의 무브먼트가 정확하게 들어 맞으며 돌아가는 듯한 그 완벽함 자체도 카타르시스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생략해도 우리 뇌는 생략된 부분을 저절로 그려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의 설정 덕질을 뽐내기 위해 독자를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길...ㅠㅠ
어쨌든 굉장히 느낌이 좋았던 소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 드라마, 스릴러에 더 가깝고 개인적으로는 어린 구세주 캐릭터가 굉장히 좋았다. 어떤 정의감이나 의무감을 가진 캐릭터는 아니긴 하지만 냉철하고 잔혹한 살인 기계이면서도 뭔가 나사 빠진 듯 어리숙한 구석도 있고 목표가 아닌 사람에겐 너그러운 면도 나름 귀여웠다. 뒤쪽에는 애도를 표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