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랑을 잘못 배웠다
김해찬 지음 / 시드앤피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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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ㅎㅎ; 처음엔 잘 모르고 그냥 읽어봤는데 뭐지...? 이 익숙한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싸이월드 프리첼 버디버디 시절 감성은....? 싶어서 작가 소개를 읽어보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상처 없는 밤은 없다》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인스타, 페북 등에서 매 게시글마다 수천개의 좋아요를 받는 인기 작가라고 한다. '해찬글'이라는 이름으로 열풍을 불러 일으키도 했다고.

그런데 내가 인터넷을 열심히 안해서인지, SNS를 운영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인지, 혹은 독서 편식 때문인지, 아님 모두 다 때문인지 사실 처음 들어보았다. 게다가 작가 얼굴을 보니 싸이월드를 했던 세대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이런 세대를 잇는 감성이라니. 인터넷도 유행은 돌고 도나보다. 


 책은 전체적으로 에세이라기도 뭐하고 시라고 하기도 뭐한.. 그 중간 어디 쯤에 있는 저자의 담론이나 생각들을 열거한 일기에 가깝다. 덕분에 술술 빠르게 읽히기는 한다. 한창 겉멋이 들기 시작하는 중고등학생이나 감수성 예민한 말랑한 청년기의 어린 소년소녀들이 좋아할만한. 하지만 사랑은 천 명이 있으면 천 명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너는 사랑을 잘못 배웠다고 할만한 무언가가 책 속에서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직 저자가 감정의 어떠한 경지에 이르러 차고 넘친 그릇의 물줄기들을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기에 뭔가 쥐어짠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쉽다.

 사랑에 어떤 경지가 있고 수능 등급처럼 등급과 단계가 있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호호백발 노인이 되어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 아이여도 사랑의 단맛 쓴맛을 모두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매 챕터의 이야기들이 뭔가 알맹이는 없고 딱 인스타 감성의 글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떠올릴 수 있는 표본들 같다고 한다면 내 공감력만의 문제일까...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구체적인 사례나 개념 없이 사랑은 사랑이 사랑해서 사랑으로 사랑사랑사랑이 반복되니까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일어남. 사랑이 뭐였지?


 그럼에도 젊은 날을 살아가며 사랑에 울고 웃어본 이로서 공감할만한 몇가지 글귀들은 있었다. 떠나야 할 때 기꺼이 떠나야 하며, 죽음에 가까워지지만 죽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듯이 이별에 가까워지더라도 이별을 위해 만났던 것은 아니라 그 빛나던 순간엔 우리가 있었음을 기억하라는 것, 그리고 필요한 것과 사랑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고, 있을 지 없을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언젠가 사랑이 올 수도 있겠지. 그때가면 조금 더 와닿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먹고 살기 힘든 와중이어서인지 아니면 늙고 약아져서인지 아직은 아닌 거 같아.


 독서 편식 중에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고 술술 넘기면서 볼 수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던 책. 싸이 시절에 읽었으면 좋아했을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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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기술
옥정석 지음 / 대경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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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하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흉악범들이 늘어나서 보게 된 옥정석 작가의 '일상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기술'. 저자는 현재 중앙경찰학교 무도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전직 경찰관이며, 우발적이고 치명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자기 방어 테크닉의 기초를 다루고 있다. 일반 호신술 서적과는 다르게, 자기 보호를 위한 테크닉보다는 이론적인 부분, 마음가짐, 이미지 트레이닝 등에 대해서 학술적 관점에서 논한 경향이 높아서 가독성이 높거나 단기적 관점에서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적합치 않은 책이다. 그러나 어떤 무술이나 기술적인 테크닉 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마음가짐이나 임하는 태도 등에 대해서 굉장히 원론적인 부분부터 상세히 설명을 해놓았기 때문에 꾸준히 읽으며 반복적 트레이닝을 한다면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나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었다. 

   

이를테면 기존의 책이 나를 덮치는 범죄자의 급소가 어디이고 어디를 어떻게 가격하면 효과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사진이나 설명으로 그쳤다고 한다면, 이 책은 위와 같이 기초적인 용어와 전문적인 개념, 해당 행동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효과와 파급력, 정당 방위와 과잉 방어의 범위 등을 각 사례와 함께 상세히 설명하여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라기보다는 관련 학과 등에서 전공하며 전공적으로 해당 학문을 습득하는 강의 서적 느낌에 가깝다. 약간의 호불호는 갈릴 수 있으나 이러한 형식의 서적은 적었다 보니 한 번쯤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일반인 입장에서 가장 도움이 된다고 느껴졌던 파트는 비상시 활용 가능한 일상용품에 관한 항목. 호신을 뚜렷한 목적으로 하는 도구들 외에 일상 용품 등을 통해 사진과 자세 등을 설명해 놓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모래나 흙 등은 늘 들고 다니거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니 더 유용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기 방어는 습관이고 생활이기 때문에 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었다. 책을 읽고, 실제로 상황을 생각하며 연습을 하더라도 막상 그 상황에 딱 다치면 정도 이상의 스트레스로 인해 제대로 된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늘 상황을 이미지 트레이닝하며 반복 연습하고, 여러가지 상황을 미리 구상해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정말 기이한 범죄들이 많이 발생하고 연고도 없는 무고한 일반 시민을 덮치는 묻지마 범죄류의 사건들도 많이 늘었다. 언제 어디서나 준비된 자세로,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이겨내고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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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본 세계사 - 판사의 눈으로 가려 뽑은 울림 있는 판결
박형남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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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역사학자가 꿈이었다던 박형남 재판장의 '재판으로 본 세계사'.

저자의 말에도 잘 나와 있듯이, 재판에 대한 우리 사회와 시민들의 불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판사로서의 사명감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는 재판,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재판 등을 발굴 및 소개하여 법조인들에게는 자신의 판단에 대한 깊은 성찰을, 시민들에게는 사법부에 대한 친밀함과 이해도를 높이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재판이라는 내용이니만큼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책은 일반인이 읽기에도 큰 부담이 없이 쓰여져 있다. 제목에 '세계사'가 들어있는 만큼, 일반인도 누구나 한번 정도는 들어보았을만한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나 유명인, 세계사 흐름 속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의의가 있거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각해볼 점을 시사하는 재판 등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법률 서적보다는 주제를 재판으로 잡은 재미있는 세계사 책에 가깝다. 덕분에 책은 꽤 쉽게 술술 넘어간다.

 아무래도 나는 일반인이고 법조 계통의 지인이나 엮일 일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재판이라고 하면 어떤 죄목으로 인해 구속되었고, 어떤 처벌을 받았다 정도로만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법을 토대로 한 수많은 논의와 고민, 그리고 예기치 못한 파급력 때문에 재판정에 있는 모두가 느껴야 하는 부담감 등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목차만 보아도 알겠지만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나 유명한 재판관(혹은 피고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는 한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 주변인들을 속여 진짜 남편 행세를 했던 마르탱 게르크 재판, 여성 참정권 운동을 위해 방화를 교사한 팽크허스트 재판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명한 사건은 아니더라도 논의할만한 쟁점이나 생각해볼 의의가 있는 사건들을 첨부하여 여러가지 시사해볼 점이 있었다.


 매 챕터마다 사건의 개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점 때문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매 챕터마다 한국의 현 실정과 연관된 정서나 배경, 해당 사건과 재판의 역사적 배경, 재판관 및 피고인의 성향과 배경 설명, 그로 인한 재판의 흐름과 쟁점, 그 후 판결과 파급력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보면 조금 딱딱하게 쓰여진 부분들도 있는데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서 그런지 해당 사건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자가 판사여서 그런지 굉장히 포말하구나 싶어 웃음도 나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챕터는 '마르탱 게르', '팽크 허스트', '미란다' 재판. 타 사건들은 세계사에 있어서도 굉장히 큰 의의가 있고 유명한 사건들이란건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학창 시절 교과서나 기타 서적 등을 통해서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사건들이기도 하고, 나랑 너무 거리가 먼 다른 세계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겉핥기로 읽게 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해당 사건들은 좀 자극적이기도 하고, 요새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이거나 너무 의외였던 사건이라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군인으로 떠났던 남편의 동료가 자신이 남편인 척 돌아와 같이 부부로 살면서 아이도 낳고 살다가, 나중에 진짜 남편이 돌아와 서로 누가 진짜인지 다투었던 재판은 역사적 의의를 떠나 굉장히 신기한 사건이었다. 팽크허스트가 여성 참정권을 위해 방화를 교사하고 투쟁적으로 일어섰던 일도, 현재 사회의 핫 이슈인 젠더 문제를 떠올려 저자의 평가와 사견에 대해서 공감하며 읽게 되었다. 미란다 사건 또한 미란다의 원칙은 너무 유명해서 당연한 느낌으로 알고 있음에도 그 원칙이 생기기까지 있었던 과정은 처음 알게 되어서 꽤 집중하며 읽었다. 


 판결의 보폭만큼 세계는 진보했다. 

 재판정의 내가 모르는 사건과 재판들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 싶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세계사 책을 읽는 것 같은 재미만을 느낄 수는 없었다. 남의 재판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내가 알게 모르게 사회의 인식 변화나 제도 개선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닌 사건들이었다. 그러한 현실을 재판정에서도 인식하고 있기에 판사의 판결은 굉장히 신중하고 막대한 책임감이 요구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녔던 불신 의심과 달리 매 재판마다 얼마나 많은 국민정서와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하여 심사숙고하고 유보하고 고민에 고민, 토론에 토론을 또 거쳐야 하는 과정인지 어느 정도나마 엿보게 된 심정이다. 꼭 법조인이나 해당 계통에 관심이 있지 않더라도 사회에 관심이 있는 인문 교양서로도 한  번쯤은 꼭 읽어보면 좋을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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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안 와 웅진 모두의 그림책 13
고정순 지음 / 웅진주니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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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 주니어에서 출판된 워킹맘과 그런 엄마의 아이를 위한 그림책 '엄마 왜 안 와'.

 작가는 어린 시절 엄마가 늘 늦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피곤해 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고 한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과 눈매를 알아도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어린 아이들에게  무엇 때문에 늦는지, 왜 피곤한지 설명해주기에는 엄마의 마음도 여유가 없고 버거운 세상이긴 하다. 하지만 자녀를 사랑함에도 이런 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제시되지 않았으니 부모의 답답한 마음도 클 것이다. 작가는 지금 어른이 되어서야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림책이다보니 분량이 많거나 길지는 않다. 그러나 워킹맘으로 바쁜 일상과 가사노동, 육아를 병행해야만 하는 고단한 엄마들에게 자녀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적당한 방안을 제시해주고, 아이들에게도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특히 삽화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엄마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습을 동물들과 함께하는 모습에 빗대었는데, 복합기가 서류를 뱉어내는 모습은 토하는 코끼리, 회의를 하는 모습은 길 잃은 동물들, 전화를 하는 모습은 잠 안 자고 울어대는 새들, 화난 상사는 꽥꽥이 오리, 전철을 타는 모습은 공룡의 배 속 등으로 묘사하였다. 단지 엄마의 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에 빗대어 표현을 한 덕분에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엄마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또한 엄마가 회사에서 일을 하며 늦는 이유에 대한 묘사 뿐만 아니라 마지막엔 자녀에 대한 엄마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해주었던 점이 좋았다. 어린 시절 맞벌이 때문에 늘 피곤해 하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때에도 이런 책이 있었다면 엄마도 나도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맞벌이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엄마나 아빠가 휴직을 하거나 전업을 하며 자녀를 돌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반절 이상의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며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다. 전체 아이들의 반절 이상은 부모가 왜 늦는지도 모른 채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녀를 사랑하고 보살피지만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잘 모르겠는 부모와 하염없이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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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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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노우 맨'으로 유명한 요 네스뵈의 최신 번역작(?) '리디머'. 2005년 발표된 작품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서는 '스노우 맨'의 이전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에는 가장 최근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덕분에 순서는 뒤죽박죽이라지만 난 딱히 해리 홀레라는 인물 자체에는 관심 없어서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말이 시리즈물이지 형사가 동일하게 해리 홀레라는거 말고는 범인도 개요도 다 다른 사건인데 그 순서가 뭐가 중요한가 싶긴 하다.  

 

 아무튼 제목의 '리디머'는 구원자, 구세주를 뜻한다고 한다. 제목부터 뭔가 종교 색채가 짙은 듯한 스멜이 나는만큼 등장하는 인물들도 구세군, 구세군 장교와 살인 청부업자인 '어린 구세주'가 등장한다. (이 소설 자체가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는데 중점을 둔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크라임 스릴러이기 때문에 스포라는 둥 뭐라는 둥 하지는 말기 바란다. 살인 청부업자인 '어린 구세주'는 처음부터 대놓고 표적을 착실히 잘 죽이면서 돌아다니고 있으며, 그의 심리 묘사까지 너무나 논란의 여지 없이 확실하니까 말이다.)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살인청부업자의 별명이 어린 구세주라니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건 살해당한 희생자도 마찬가지다. 남을 돕고 헌신하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속내며 하는 짓은 더럽고 추악하기 그지 없는 쓰레기였으니까.

 해리 홀레와 어린 구세주가 쫓고 쫓기는 과정, 어린 구세주와 청부 목표의 쫓고 쫓기는 과정이 번갈아 진행되는 가운데 드러나는 각 등장인물들의 구린내 나는 사정들, 시선들, 행동들. 각자의 생각과 사정들이 정신없이 흩어져 있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하나로 모아지면서 종내에는 아, 싶은 카타르시스가 뿜어져 나온다.


 다 읽고나면 한가지 생각이 든다. '리디머'는 제목과 내용, 등장 인물 설정 모두 굉장히 잘 뽑은 소설이다. 겉은 인자하고 헌신적인 봉사자들이지만 속은 썩은 구세군, '구세주'라고 불리지만 별명과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을 살육하는 청부업자, 그러면서 제목은 또 구원자라니. 어쩜 이렇게 모든 것을 삼위일체로 짜맞춘 듯 잘 뽑아낼 수가 있을까.

 같은 작가의 국내 유명작 '스노우 맨'을 볼 때는 너무 지루해서 감상평을 썩 좋게 남기지는 않았었는데, 오히려 더 오래된 전작이라는 이 리디머는 느낌이 굉장히 괜찮다. 희생자와 범죄자, 그 둘 사이에서 본인 자신 또한 구원하고자 했던 해리 홀레의 갈등도 굉장히 좋았고, 그래서 마지막 선택이 특히 좋았다. 구태의연한 결말이었다면 김이 샜을 것 같은데, 그 선택으로 인해서 소설 제목에서부터 여러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모습과 상황의 양면적 아이러니들이 정점을 찍는 느낌이다.


 단점이라면 스노우 맨 때도 느낀 너무나 번잡한 곁가지와 실시간 자캐 오덕질 중인 듯한 너무나 세세한 설명들이다. 아직 이 작가 책을 두 권밖에 읽지 못했으니 단정 짓긴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그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낀건 책 앞의 1/3~1/2 정도는 떼어내 버리든가 압축을 하는게 가독성 면에서 훨씬 더 좋았을거 같단 것과, 각 등장인물들을 세세하게 설정해서 입체적으로 묘사하는건 좋은데 그 과정이 너무 길어서 중간 정도까지 참고 읽기 힘들 정도로 지루하기 그지 없는 점을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게이 강간범의 남자 만나는 취향과 헌팅 비법, 앞으로의 여행 계획 등만 해도 그렇다. 이런 부분은 내용과 직접적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은 있는 부분이라, 언급 되면 친절한 정도지만 세세하게 묘사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너무 지나친 정보 과포화로 지루함을 유발한다. 작가가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매우 섬세하고 세세하게 공들여 설정하는 성실한 타입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정밀하게 자신의 성실함을 뽐내서 독자에게 지루함과 피로함을 유발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그나마 게이 강간범은 어느 정도 연관관계가 있다고 치지만, 그만큼의 중요도조차 지니지 않는 일회성 캐릭터마저도 하나하나 배경을 설명해주곤 하는데 그런 부분은 아주 극혐이다 ㅠㅠ 과유불급임. 열심히 설정해서 쓴다는건 알겠으니 완급을 좀 조절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 부분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인물들에 몰입해서 보고, 책을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는 사람에게는 시계의 무브먼트가 정확하게 들어 맞으며 돌아가는 듯한 그 완벽함 자체도 카타르시스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생략해도 우리 뇌는 생략된 부분을 저절로 그려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의 설정 덕질을 뽐내기 위해 독자를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길...ㅠㅠ 

 어쨌든 굉장히 느낌이 좋았던 소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 드라마, 스릴러에 더 가깝고 개인적으로는 어린 구세주 캐릭터가 굉장히 좋았다. 어떤 정의감이나 의무감을 가진 캐릭터는 아니긴 하지만 냉철하고 잔혹한 살인 기계이면서도 뭔가 나사 빠진 듯 어리숙한 구석도 있고 목표가 아닌 사람에겐 너그러운 면도 나름 귀여웠다. 뒤쪽에는 애도를 표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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