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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장 이수자 안유진의 단청 컬러링북 - 하늘에 색을 입히다
안유진 지음 / 이덴슬리벨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즐기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단청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을 것이다. 화려한 궁궐의 처마 밑이나 산속 사찰의 기둥, 지방의 작은 누각에 이르기까지, 단청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보수가 이루어졌더라도, 오방색의 조화와 세밀한 문양이 만들어내는 그 독특한 아름다움은 결코 바래지 않는다.

단청장 이수자 안유진의 <단청 컬러링북>은 그런 단청의 세계를 손끝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단순한 도안부터 시작해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며, 짧은 설명과 현장 사진, 그리고 색칠 가이드가 함께 제공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단청이 단지 ‘예쁜 전통문양’이 아니라 오랜 세월 우리 삶과 신앙, 그리고 자연을 담아온 색의 철학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 안유진은 신문에서 ‘전통의 맥이 끊긴다’는 기사를 보고 전통문화대학교로 편입, 20대 중반에 무형문화유산 ‘단청장’ 이수자가 된 인물이다. 젊은 이수자인 그녀가 단청을 알리는 방식으로 ‘컬러링북’을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전통은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손에 쥐고 색칠하며 즐길 수 있는 현재의 일상 속에서 이어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단청(丹靑)’이라는 말 자체가 붉은색과 푸른색을 뜻하지만, 실제 단청에는 오방색이라 불리는 다섯 가지 색이 쓰인다. 붉은색은 정열과 태양, 푸른색은 성장과 생명, 노랑은 중심과 균형, 흰색은 결실과 순수, 검정은 지혜와 깊이를 상징한다. 이 다섯 색이 서로 어우러지며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단청의 본질이다. 색 하나하나가 방향과 계절, 생명과 기원을 품고 있어 단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 된다.

단청은 단지 미적인 목적에 머물지 않는다. 목재를 보호하고 병충해를 막는 실용적 역할을 하며, 동시에 종교적 신앙심이나 권위, 위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으로 기능했다. 수백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다섯 가지 색으로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속에 하늘과 땅의 질서를 담아냈다.
책 속에는 곱팽이, 여러가지 꽃, 동물, 수호신 등 다양한 문양이 담겨 있다. 단순히 색칠하는 행위를 넘어, 각 문양의 의미와 그 속에 담긴 바람을 느껴볼 수 있다. 드라마를 틀어놓고, 혹은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색을 입히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고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된다. 색을 고르고 손을 움직이는 그 시간은 명상과도 같다.

나는 원래 컬러링북을 좋아한다. 짧은 집중 속에서 마음이 정리되고, 손끝의 작은 색이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청 컬러링북>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단청을 단순히 ‘전통미술’로만 보던 내 시선이 ‘우리의 색’으로 확장된 순간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앞으로 절이나 궁을 방문할 때, 단청의 색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얼마나 더 재미있어질지 생각만으로도 신이 난다.
글이 많지 않은 책이지만, 짧고 굵게 핵심만 전하고 바로 색칠로 이어지는 구성이 마음에 든다. 무형문화유산의 정신을 이렇게 현대적으로 풀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실감했다. 손끝으로 단청을 그려보는 경험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전통을 현재의 나로 잇는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K-컬쳐가 유행하고, '김밥'과 '사자보이스'가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이런 때에, <단청 컬러링북>은 그런 의미에서 ‘색으로 배우는 우리 문화’의 가장 아름다운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