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 - 비트코인을 뛰어넘는 새로운 화폐 혁명의 시작
이지민.이은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은 제목부터가 낯설고, 묵직하다. 솔직히 말하면 ‘코인’이니 ‘블록체인’이니 하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나는 돈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그 무지를 인정하고, 요즘 부쩍 돈과 경제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있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 모르는 척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이미 현금의 시대를 넘어, 디지털 자산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비트코인’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이라니.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지만, 이 책은 그 낯선 세계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어주는 안내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451페이지라는 두께부터 압도당했다. ‘이걸 내가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마자 ‘이건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확 왔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언어였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히 ‘코인의 한 종류’가 아니라, 앞으로 전 세계 금융의 판을 바꿀 수도 있는 개념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비트코인처럼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와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이름처럼 ‘안정성’을 목표로 한다. 달러나 금 같은 실물 자산에 가치를 연동시켜 급격한 가격 변동을 최소화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블록체인의 개념과 작동 원리도 조금씩 감이 잡힌다. 예전엔 마치 기술자들만 아는 복잡한 코드 세계 같았던 블록체인이, 사실은 ‘신뢰’를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신뢰 위에 세워진 새로운 화폐다. 그리고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디지털화폐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대한 분석도 흥미로웠다. 여전히 제도권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지 못했지만, 기술력과 투자 열기, 그리고 금융 규제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코인 투자서’가 아니라, ‘돈의 진화사’를 기록한 책에 가깝다. 화폐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왜 돈이라는 개념을 계속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물론, 나는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경제나 코인 흐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아주 유익한 데이터와 인사이트의 보고일 테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개념이 많았다.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은 뒤 ‘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감각이 남았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세상의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안에서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에 대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다. 나는 이 글을 쓰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세 번쯤은 더 읽게 될지도 모른다. 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시대에 도태되고 싶지는 않다. <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은 이런 나 같은 ‘경제 문외한’에게도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어렵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그리고 결국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이 안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케이트 마블 지음, 송섬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는 제목부터 심장을 두드린다. ‘미쳐가고 있다’는 고백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매일 지구의 온난화 시뮬레이션을 바라보며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선 한 과학자의 실존적 외침처럼 느껴진다. 케이트 마블은 이 책에서 기후 위기를 숫자와 데이터로만 다루지 않는다. 그녀는 과학의 언어를 넘어 인간의 감정으로, 지구가 겪고 있는 ‘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병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을 묻는다.


책의 첫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예언자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멸망이 눈앞에 있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 문장은 현재의 기후과학자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지구의 이상 기후, 녹아내리는 빙하, 사라지는 생명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위기’보다 ‘편리함’을 선택한다. 이 책은 그 무관심과 안일함을 향한 그녀의 절규이자, 마지막 호소처럼 읽힌다.


이야기는 ‘경이, 분노, 죄책감, 두려움, 애도, 놀라움, 자부심, 희망, 사랑’의 아홉 단계로 나뉜다. 단순히 과학적 데이터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겹겹이 쌓인 서사 구조다. 각 장마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와 삶의 단면을 겹쳐 보여준다. 기후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희망’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안에는 인간으로서의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공존한다.


그녀의 문체는 놀라울 만큼 흡입력이 있다. “관찰이 업인 과학자는 이미 시인이다.”라는 어느 추천사의 말이 딱 맞다. 데이터와 통계 속에서도 그녀는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 예를 들어, 탄소 배출량의 곡선을 설명할 때조차 그것을 ‘죽음의 곡선’으로 표현하며, 지구의 울음을 시각적으로 들려준다. 과학자이지만 동시에 시인이자 인간으로서 느낀 복합적인 감정이 문장 사이사이에 진하게 묻어난다.


읽는 내내 ‘이토록 절박한 과학자의 목소리를 우리는 왜 심각하게 듣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느끼는 분노와 슬픔은 단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의 무게다. 컴퓨터 앞에서 미래의 기후를 시뮬레이션하며 멸망과 희망을 동시에 보는 그녀의 절망이,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지구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며, 그래서 미쳐간다.


책의 표지도 그 감정을 완벽히 담아낸다. 푸른 빙하와 두개의 붉은 태양아래 늘어선 지구의 모습들이 담긴 커버는 마치 지구의 현재를 상징한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살아 있으나 병든 행성의 초상 같다. 그리고 희망을 섞어넣었다.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는 단순히 환경문제를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건 인간의 무감각에 대한 고발이자,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케이트 마블은 독자에게 ‘우려’를 멈추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걱정만 하는 시대”에 머물 수 없다. 지구는 이미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누군가는 재활용 쓰레기 하나를 더 분리하고, 누군가는 불필요한 소비를 멈출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런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그녀의 미침은 절망이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그리고 그 열기는, 읽는 이의 마음에도 오래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동화 : 세계명화 100편 - 세계 10대 화가의 명작을 영어로 읽어요! 영어동화 100편
하현주 지음, 마이클 A. 푸틀랙 감수 / 이지스에듀(이지스퍼블리싱)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동화 시리즈 세계명화 100편>은 영어 교재의 틀을 빌리고 있지만, 그 안에는 미술과 언어의 감각적 결합이 담겨 있다. 고흐, 고갱, 드가, 르누아르, 루소, 마티스, 모네, 세잔, 클림트, 클레. 이름만 들어도 예술의 공기가 느껴지는 이 10인의 화가들이 남긴 명화 100편이, 한 장 한 장 고급 인쇄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지스에듀 특유의 정교한 색감과 질감 덕분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치 작은 미술관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단순한 감상용 화집에 머물지 않는다. 그림 옆에 적힌 짧고 리듬감 있는 영어 문장들이, 학습의 긴장감 대신 감정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Look at the light. Feel the sky.”와 같은 문장은 단순한 영어 예문이 아니라, 그림의 감정을 시처럼 옮겨놓은 문장이다. 문법보다 리듬이 먼저 와닿고, 설명보다 감정이 앞선다. 그래서 영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그림과 함께 문장을 흡수하게 된다.


각 페이지마다 있는 QR 코드는 이 책을 특별하게 완성시킨다. 단순히 듣기 자료가 아니라, 원어민의 리듬과 억양을 통해 그림의 공기를 함께 느끼게 해준다. 한줄 한줄 해석해 놓지 않아도 원어민의 리딩으로 자연스럽게 문장 자체을 흡수할 수 있다. 학습이 아닌 감상의 경험, 공부가 아닌 몰입의 시간이 된다. 아이에게는 자연스러운 영어 노출의 장이 되고, 어른에게는 언어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음악 같은 책이다.




게다가 단순히 그림 옆에 단어 뜻을 덧붙여놓는 방식이 아니라, 문장 안에서 단어의 감정을 함께 알려준다. 예를 들어 ‘bright’라는 단어가 고흐의 해바라기를 통해 전달될 때, 그것은 단지 ‘밝은’이라는 뜻이 아니라 ‘생명의 뜨거운 기운’이 된다. 이런 식의 연결은 사전을 넘어서 언어가 감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그래서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영어와 미술이 함께 흘러든다.


<영어동화 시리즈 세계명화 100편>은 공부의 형식을 빌린 감상의 책이다. 눈으로 그림을 읽고, 귀로 문장을 듣고, 마음으로 뜻을 이해하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다. 영어를 공부하는 책이 이렇게 예뻐도 되는가 싶을 만큼, 페이지마다 색과 소리가 살아 있다. 미술과 언어가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 이 작은 기적은 ‘배움’보다 ‘느낌’을 먼저 생각하게 한다. 결국 이 책이 가르쳐주는 건 단어가 아니라, 단어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림과 영어를 함께 배운다는 건 단순히 언어를 익히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림 속 이야기를 영어로 표현하며 우리는 실생활에 필요한 문장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동시에 인문학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기른다. 색과 선, 감정이 담긴 예술 작품을 통해 언어가 살아 있는 맥락으로 다가오고, 그 과정에서 교양과 감성을 함께 쌓을 수 있다. 결국 그림과 영어의 만남은 지식과 감정, 배움과 즐거움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새로운 형태의 독서가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나 아는 나만 모르는 챗GPT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챗GPT & AI 입문서 CHATGPT,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Suno, 노트북LM, Sora, 감마, 냅킨
이성원(누나IT) 지음 / 한빛미디어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누구나 아는 나만 모르는 챗 GPT>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정말 딱 나 같은 사람을 겨냥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챗GPT로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심지어 돈을 번다는데 나는 여전히 ‘그게 대체 뭐길래 다들 난리야?’ 하는 수준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 묘한 거리감. 이 책은 바로 그 어색한 간극을 자연스럽게 메워주는 안내서다. 어렵지 않게, 그러나 허투루 지나가지도 않게.




책은 ‘AI 초보자’의 눈높이를 정확히 짚는다. 첫 장부터 계정 생성 방법, 프롬프트 입력법, 그리고 자주 하는 실수까지 차근히 짚어준다. 마치 옆자리에서 손가락으로 직접 화면을 가리켜주는 듯한 친절함이다. 그래서인지 읽다 보면 ‘아, 이제 나도 챗GPT를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기술 서적이라기보다, “나처럼 AI가 낯선 사람”을 위한 마음이 담긴 책이다.


특히 흥미로웠던 건 단순히 챗GPT 사용법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AI 서비스들을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글쓰기, 이미지 생성, 영상 편집은 물론이고 음악을 만드는 사이트까지 알려준다. 사실 나는 음악 생성 AI에 관심은 많았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책 속에서 이미지 수정 앱인 ‘나노바나나’와 원하는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Suno’ 같은 플랫폼을 발견했을 때, 마치 비밀스러운 문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내일부터 하나씩 실행해봐야겠다”는 다짐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인구수를 대비하지 않고도 세계에서 챗GPT의 유료 이용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사실. 그만큼 우리는 빠르게 변화에 반응하고, 또 새로움에 호기심을 품는 민족이다. 그런데 그 호기심이 때로는 ‘두려움’과 한몸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을 덮을 즈음엔, 기술이 내 일상을 위협하는 낯선 존재가 아니라, 나를 돕는 든든한 도구처럼 느껴졌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AI의 작동 원리나 모델의 내부 구조를 깊이 파고드는 책은 아니다. 이론보다 ‘활용’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래서 기술적인 탐구보다는 “일단 써보자”는 실용적 접근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훨씬 잘 맞는다. 하지만 그게 이 책의 단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모든 배움에는 단계가 있고, 이 책은 그 첫 번째 계단을 가장 다정하게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나도 이제 참여할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간단한 글쓰기나 아이디어 정리에만 국한되던 나의 AI 활용 범위가 한층 넓어졌다. 챗GPT가 단지 답변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내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협력자처럼 다가왔다. 책을 읽는 동안 ‘이건 나에게도 가능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결국 이 책은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정작 나만 모르는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열어준다. 그 문턱에서 주저앉아 있던 나를 조용히 일으켜 세운다. 같이 가자며 손을 내미는 책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AI 시대의 구경꾼이 아니다. ‘나노바나나’와 ‘Suno’를 실행하며, 그 세계 안에서 나만의 창작을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의 용기를, 바로 이 책이 선물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청장 이수자 안유진의 단청 컬러링북 - 하늘에 색을 입히다
안유진 지음 / 이덴슬리벨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즐기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단청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을 것이다. 화려한 궁궐의 처마 밑이나 산속 사찰의 기둥, 지방의 작은 누각에 이르기까지, 단청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보수가 이루어졌더라도, 오방색의 조화와 세밀한 문양이 만들어내는 그 독특한 아름다움은 결코 바래지 않는다.




단청장 이수자 안유진의 <단청 컬러링북>은 그런 단청의 세계를 손끝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단순한 도안부터 시작해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며, 짧은 설명과 현장 사진, 그리고 색칠 가이드가 함께 제공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단청이 단지 ‘예쁜 전통문양’이 아니라 오랜 세월 우리 삶과 신앙, 그리고 자연을 담아온 색의 철학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 안유진은 신문에서 ‘전통의 맥이 끊긴다’는 기사를 보고 전통문화대학교로 편입, 20대 중반에 무형문화유산 ‘단청장’ 이수자가 된 인물이다. 젊은 이수자인 그녀가 단청을 알리는 방식으로 ‘컬러링북’을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전통은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손에 쥐고 색칠하며 즐길 수 있는 현재의 일상 속에서 이어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단청(丹靑)’이라는 말 자체가 붉은색과 푸른색을 뜻하지만, 실제 단청에는 오방색이라 불리는 다섯 가지 색이 쓰인다. 붉은색은 정열과 태양, 푸른색은 성장과 생명, 노랑은 중심과 균형, 흰색은 결실과 순수, 검정은 지혜와 깊이를 상징한다. 이 다섯 색이 서로 어우러지며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단청의 본질이다. 색 하나하나가 방향과 계절, 생명과 기원을 품고 있어 단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 된다.




단청은 단지 미적인 목적에 머물지 않는다. 목재를 보호하고 병충해를 막는 실용적 역할을 하며, 동시에 종교적 신앙심이나 권위, 위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으로 기능했다. 수백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다섯 가지 색으로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속에 하늘과 땅의 질서를 담아냈다.

책 속에는 곱팽이, 여러가지 꽃, 동물, 수호신 등 다양한 문양이 담겨 있다. 단순히 색칠하는 행위를 넘어, 각 문양의 의미와 그 속에 담긴 바람을 느껴볼 수 있다. 드라마를 틀어놓고, 혹은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색을 입히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고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된다. 색을 고르고 손을 움직이는 그 시간은 명상과도 같다.




나는 원래 컬러링북을 좋아한다. 짧은 집중 속에서 마음이 정리되고, 손끝의 작은 색이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청 컬러링북>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단청을 단순히 ‘전통미술’로만 보던 내 시선이 ‘우리의 색’으로 확장된 순간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앞으로 절이나 궁을 방문할 때, 단청의 색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얼마나 더 재미있어질지 생각만으로도 신이 난다.


글이 많지 않은 책이지만, 짧고 굵게 핵심만 전하고 바로 색칠로 이어지는 구성이 마음에 든다. 무형문화유산의 정신을 이렇게 현대적으로 풀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실감했다. 손끝으로 단청을 그려보는 경험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전통을 현재의 나로 잇는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K-컬쳐가 유행하고, '김밥'과 '사자보이스'가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이런 때에, <단청 컬러링북>은 그런 의미에서 ‘색으로 배우는 우리 문화’의 가장 아름다운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