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케이트 마블 지음, 송섬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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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는 제목부터 심장을 두드린다. ‘미쳐가고 있다’는 고백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매일 지구의 온난화 시뮬레이션을 바라보며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선 한 과학자의 실존적 외침처럼 느껴진다. 케이트 마블은 이 책에서 기후 위기를 숫자와 데이터로만 다루지 않는다. 그녀는 과학의 언어를 넘어 인간의 감정으로, 지구가 겪고 있는 ‘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병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을 묻는다.


책의 첫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예언자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멸망이 눈앞에 있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 문장은 현재의 기후과학자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지구의 이상 기후, 녹아내리는 빙하, 사라지는 생명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위기’보다 ‘편리함’을 선택한다. 이 책은 그 무관심과 안일함을 향한 그녀의 절규이자, 마지막 호소처럼 읽힌다.


이야기는 ‘경이, 분노, 죄책감, 두려움, 애도, 놀라움, 자부심, 희망, 사랑’의 아홉 단계로 나뉜다. 단순히 과학적 데이터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겹겹이 쌓인 서사 구조다. 각 장마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와 삶의 단면을 겹쳐 보여준다. 기후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희망’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안에는 인간으로서의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공존한다.


그녀의 문체는 놀라울 만큼 흡입력이 있다. “관찰이 업인 과학자는 이미 시인이다.”라는 어느 추천사의 말이 딱 맞다. 데이터와 통계 속에서도 그녀는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 예를 들어, 탄소 배출량의 곡선을 설명할 때조차 그것을 ‘죽음의 곡선’으로 표현하며, 지구의 울음을 시각적으로 들려준다. 과학자이지만 동시에 시인이자 인간으로서 느낀 복합적인 감정이 문장 사이사이에 진하게 묻어난다.


읽는 내내 ‘이토록 절박한 과학자의 목소리를 우리는 왜 심각하게 듣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느끼는 분노와 슬픔은 단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의 무게다. 컴퓨터 앞에서 미래의 기후를 시뮬레이션하며 멸망과 희망을 동시에 보는 그녀의 절망이,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지구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며, 그래서 미쳐간다.


책의 표지도 그 감정을 완벽히 담아낸다. 푸른 빙하와 두개의 붉은 태양아래 늘어선 지구의 모습들이 담긴 커버는 마치 지구의 현재를 상징한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살아 있으나 병든 행성의 초상 같다. 그리고 희망을 섞어넣었다.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는 단순히 환경문제를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건 인간의 무감각에 대한 고발이자,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케이트 마블은 독자에게 ‘우려’를 멈추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걱정만 하는 시대”에 머물 수 없다. 지구는 이미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누군가는 재활용 쓰레기 하나를 더 분리하고, 누군가는 불필요한 소비를 멈출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런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그녀의 미침은 절망이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그리고 그 열기는, 읽는 이의 마음에도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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