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관련 공부나 일을 하는 분들과 만나면 심심찮게 듣는 말이 있다. "시중에 나온 번역 관련 책은 거의 다 읽어봤다" 혹은 검색해서
관련 글은 전부 읽었다 등등. 그런 이야기를 한창 듣던 시기에는 나도 그저 '대단하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 이후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새삼 돌이켜 보니 나도 이제는 시중에 나온 웬만한 번역 실용서는 거의 다 읽은 기분이 든다. 예전에 영국 워킹홀리데이
출국 전에는 블로그 포스트는 물론이고 유튜브에 올라온 워홀러들 영상은 국가를 가리지 않고 거의 99% 다 본 기억이 난다. 다른
이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면서라도 어떻게든 불안을 달래고 싶었던 인간의 묘한 심리였을까? 이미 다 지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멍하니 구경한 시간에 뭐든 구체적인 공부나 준비를 했으면 훨씬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됐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오랜 습관을 여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대신 요즘은 남의 경험을 구경할 때면 이걸 어떻게 나의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 《번역가 K가 사는 법》을 읽게 된 타이밍이 제법 절묘해서 책을 받자마자 부록으로
숙제를 하나 끼워넣자고 마음 먹었다. 7월말엔가 쓰기 시작해서 내내 다른 일을 핑계 삼아 지지부진 미뤄오던 (애초에 아무도 시키지
않은) 출판기획서를 마무리해서 에이전시와 출판사에 열심히 돌리고, 이 포스트에 꼭 그 후기까지 함께 실어야지 다짐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법 이 책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취지의 숙제였고 다행히 완성은 했다. 아직 돌리지는 못했지만. 이건 순전히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얻은 성취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5653
나는
주로 영한 번역서를 즐겨 읽고/사는 탓인지 저자인 김택규 번역가/작가의 이름은 좀 낯설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게된 후 검색을 좀 해봤는데 위의 인터뷰를 읽고 저자가 좀 더 궁금해졌다. 거의 광풍급(?)으로 국내를 휩쓴 《부의 추월차선》의
저자 엠제이 드마코가 자신의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자기의 진짜 경험으로 책을 쓰는 대신 책을
위해 가짜 경험을 서술하고 더 나아가 그 책을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례가 적지 않지만 자신은 정말 자신이 부자가 된
방법만을 진실되게 책에 실었다고. 《번역가 K가 사는 법》을 읽고 나니 엠제이 드마코의 이 말이 불쑥 떠올랐다. 이
책은 현역 번역가(이 단어는 저자의 직업과 관심사를 아우르기에 너무 한정된 수식이지만)인 저자가 번역으로 시작해 점점 더 깊숙이
연루하게 된 책 만들기의 여정을 술술 읽기 쉽게 정제하면서도 어디에서도 흔하게 듣지 못할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기꺼이 나눈, 번역가의
진솔한 기록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당시 저자의 경험과 이후 이
책을 발판 삼을 독자들의 고군분투가 한 데 모여 완성되는 합동 프로젝트(?)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쉽고 간단한
건 아마 첫 단계인 '읽기'일 것이다.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으니 어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숙제 때문에 서평 쓰기가 다소 늦어지기는 했지만 사실 빠르고 쉽게 잘 읽히는 책이라 나도 하루이틀만에 후딱 읽었다. 내가
꼽고 싶은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문화 백수'다(이걸 중심 주제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꽤 오래 내 성향이 유별나다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관심사가 잡다하고 문화 생활 전반에 지출을 많이 했으며, 영화든 공연이든 전부 혼자 훌쩍 가서 봤다(이건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과정 내내 느낀 건 여러가지 의미로 내가 좀 다르다는 거였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이 재밌는
감정을 공유해줄 상대를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재밌지만 좀 울적했고 외로웠지만 그나마 재밌어서 버텼다.
번역이
그런 내 삶에 개입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그걸 선명한 개념이자 언어로 받아들이자마자 바로 몸으로 알았다. 아,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이후로 몇 년 간 나는 내가 느껴온 재밌음의 대상 즉, '이런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탐구하며 보냈다. 그러는 동안 IT 업계 종사자 혹은 공대생뿐이던 내 주위는 이제 영화와 드라마, 책과 같은 예술과 창작을
좋아하고 향유하는 이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굳이 같은 걸 보고 읽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여럿 곁에 둘 수
있게 된 게 새삼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수'가 쓰이는 뉘앙스나 용례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문화 백수'라는 단어는 처음
발견하자마자 좋아하게 됐는데, 내게 이 단어는, 문화 생활을 좋아하고 우선시하며 순전히 이런 생활을 지속하는 삶을 살기 위해 결국
좋아하는 일의 범주에서 생업을 이어나가는 이들을 연상케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문장의 실질적 의미는 시소처럼 자주
이쪽저쪽으로 기운다. 어느 날은 '좋다'는 감정이 크기도 하고, 다른 날은 '일'이어서 느끼는 괴로움이 더 크기도 하고, 그
균형을 스스로 꾸준히 잘 맞추지 않으면 결국에는 좋아하던 감정이 사라지고 일로만 남게 되거나, 좋아하는 감정만을 겨우 남기고 다른
일을 찾는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책 속의 다음 문장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일은 도저히 하고 싶지 않고,
또 할 수 없는 분만 출판번역을 했으면 해요."
―《번역가 K가 사는 법: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1부 나의 이야기 중
이 말은 쉽게 읽히지만 사실 어렵게 쓰인 문장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보너스로 내게는 '문화 백수'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인 제목의 팟캐스트 <예술 방면 활동가들>이 떠올라 함께 소개해본다.
https://www.podty.me/cast/177164?gnbDidAdultAuth=false
관심
분야가 넓으면 때론 그걸 줄줄 늘어놓기보다 그 관심사의 집약체인 사람 자체로 하는 설명이 더 빠를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들여 나름의 질서에 기반해 쌓은 내 문화적 정체성(?)은 번역 일을 할 때 생각보다 도움이 된다. 특히 번역가/프리랜서의 입문
시기를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잘 넘어온 이들이라면(나는 아직 이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더욱 그렇다. 혼자 하는 작업 자체는
물론이고 어떤 작업을 할 것인지 하는 전반적인 고민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일에 포함되고, 결국에는 번역이라는 바다(?) 위에서는
내가 온전히 이 항해의 조타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물론 함장도, 항법사도 전부 내가 해야 한다). 문화적 정체성은 그런
나의 동력이자 근간이 되어준다. 그래서 사실 이 책 역시 이제 막 번역에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보다는 짧게든 길게든 번역 일을
시작해 보려 여러 시행 착오를 조금이라도 겪어본 분들 혹은 경험을 통해 쌓은 문화적 정체성이 비교적 분명한 분들께 더 유용한
쓸모가 있으리라는 짐작을 해본다.
나는
재밌게 일하고 싶어서 번역을 선택했다. '재밌는'이라는 수식은 '번역'이라는 너른 분야를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기준으로
한정한다. 이 문장의 구조를 비틀어 보면 '모든 번역이 재밌지는 않다'는 뜻과 같아진다(원 명제의 대우). 게다가 말했듯이
'재밌다'는 수식부터가 일찍이 스스로 차근차근 정립해나가지 않으면 나도, 남도 알 수 없는 모호한 의미라서, 내가 재밌는 번역을
하려면 나부터가 '나에게 재밌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런 일감을 맡을 수 있도록 방향(커리어 패스)를 잘 설정해 항해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내가 자발적으로 재밌어서 하는 이런 서평을 쓰는 일이나, SF 판타지 소설을 발굴해 아무도 의뢰한 적 없는 기획서를 쓰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다르니까. 처음 영국에 갔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타국에서 한껏 눈치를 살피며 다니는 동안은 나조차도 애초에 왜 내가 이곳까지
왔을까 이유를 찾지 못하고 길을 잃은 기분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내가 좋은 일을 하려면 결코 그 명분을 바깥에서
찾아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모두가 반대하더라도 그 일을 밀고나갈 분명한 이유가 내 안에 뿌리 깊게 존재한다면 머리를 비우고
그냥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면 된다. 내 삶의 자유가 온전히 내 손에 있는 삶을 사는 법을 나는 어쩌면 번역을 통해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번역을
공부하면서 알게된 또 다른 내 취향 하나는 내가 언어를 좋아한다는 거였다. 번역을 영어 공부로 알고 시작했지만 이젠 한국어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얄팍하게나마 각 언어의 특성을 알아가는 과정이 참 재밌다. 예전에 어느 문화권 출신이 중국어를 배우기에 더
수월할까 고민해본 일이 있는데, 당연히 입문 단계라면 일본이나 한국 같이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언어권 출신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기는 할 것이다. 더 멀고, 더 낯설수록 더 기초적이고 당연한 것부터 인위적으로 학습해 나가야 하니까.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내가 만나본 글말로써의 중국어는 사실 한국어보다는 영어와 접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 구조부터, 구두점을 쓰는 방식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의 속성과 상관 없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우친 사실이 하나 있다. "중국어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결국엔 가장 탁월하게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렇게만 쓰면 이 명제를 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그래서
여기에 전제를 하나 붙이겠다.
"적어도, 중국어를 배우기에 누가 더 수월할지 고민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중국어를 가장 탁월하게 구사할 수 있을 사람을 꼽으라면
그건 중국어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번역 일을 하기에 누가 더 수월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그 일을 가장 오래 안정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 사람을 꼽으라면
그건 번역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번역은 정말 그렇다. 논리적으로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번역은 억지로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고, 시키지 않아도 누군가는 어쩐지 홀린 듯이 하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번역가
K가 사는 법》은 독서라는 행위 자체의 특성상 모든 이가 같은 감응을 받을 수야 없겠지만, 일부 독자들에게는 어쩌면 삶을 완전히
뒤흔드는 경험을 선사할지 모르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번역'이라는 단어가 그 의미를 좀 더 입체적으로 확장한 것
같아 뿌듯한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코딩할 줄 아는 디자이너'처럼 '기획할 줄 아는 번역가'가 업계의 보편적인 표준으로
자리잡게 될까 살짝 두려운 기분도 든다.
어쩐지 다음 편의 존재를 암시하는 듯한 공포 영화의 엔딩 같은 마무리가 되었다. 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