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편집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볍게 해본 적이 있었다. 나는 뭐든 읽고 있는 대상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교정/윤문하는 버릇이 있는데 내 입맛대로 문장의 구성을 주무르는 것에 가까우니 사실상 이걸 제대로 된 교정으로 보기야 어렵겠지만, 아무튼 이런 걸 하는 편집자가 되고 싶어 한동안 열심히 북에디터를 드나든 시기가 있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내가 소위 '머글'이던 때의 이야기다.

편집자만큼 그 역할을 단편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포지션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편집자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동안 미디어를 통해 구현된 다양한 편집자상을 접했다. 사실 20세기 말 한국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편집자(혹은 편집장)의 모습은 아마 <짱구는 못말려>에 종종 등장하곤 하던 만화가 혹은 소설 작가의 원고를 독촉하는 이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해 본다(만화적 재미를 위해, 극중에서 이들은 제대로 원고를 받는 일이 없으며 늘 울상이 된 채로 해당 에피소드의 대미를 장식한다). 세상에는 이런 서글픈 어른의 자화상 같은 모습을 한 편집자들도 있을 테고, 전기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널리 이름을 날린 맥스 퍼킨스 같은 편집자도 실존한 바 있으니 아마 현실 세계 편집자의 모습도 그 사이 어딘가에 좌표를 두고 있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편집자의 마음》을 읽고 내 안에 그려 본 편집자의 상은, 한 권의 책이라는 미지의 모험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함선의 함장 같은 모습이다. 최초의 모티프를 제공하는 건 저자이지만, 그걸 책이라는 물성으로 완성해 독자와 만나게 하는 여정을 가장 속속들이 알고 선두에서 그 과정을 이끄는 편집자의 모습은 <스타트렉>의 한장면에 빗대어도 모자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그 모험이 모든 승무원의 협업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함장 즉 편집자란, 말하자면 이 모험의 대표자격인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편집자가 저자라는 이름의 신발로 바꿔 신고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책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자신의 문장과 타인의 문장 인용을 명확히 구분해 서술하는 대목에서 그의 편집자적 정체성(?)이 선명하게 드러나 섬세하고도 독특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다년간의 경험으로 몸소 겪어낸 깊은 통찰을 바로 그 경험의 산출물 중 하나일 글쓰기를 도구 삼아 유려하게 엮어낸 이야기로 목넘김이 좋은 반면 뒷맛이 쓰다는 점에서 맥주를 닮았다. 내가 맥주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30대가 막 된 시점부터였는데 처음 내게 맥주를 마시게 한 게 부드러운 목넘김이었다면, 꾸준히 맥주를 사랑하게 만든 건 씁쓸한 뒷맛과 알딸딸하게 이어지는 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정수 역시 단연 본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4부 '나를 지키며 일하기'에 있다. 이 부분이 빠졌더라면 알찬 실용서로서 기능이야 했을지언정 이 책의 기획 의도 '출판의 미래'는 완전히 빠진 이야기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단순히 개인적 운으로 치부하는 대신 시야를 더 넓혀 근원적인 구조의 문제점을 고민한다. 저자가 출판 노동자로서 쌓아온 경험이 내가 정보산업 노동자로서 겪은 일과 여러모로 접점이 많았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움과 묘한 반가움이 뒤섞인 감상이 들었다.

누구도 내게 '출판의 미래' 같은 걸 궁금해 하지야 않겠지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책에서 출판 시장의 미래 한 폭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여러 경우의 수로 뻗어나가는 평행 세계 시나리오 중 저자가 소망한 것처럼, 우리가 같이 만들고 같이 읽고 때론 같이 울며 그렇게 결국에는 같이 웃는 미래를 현실로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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