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꽤 몇 년 전인데(원작은 2016년에, 한국어판은 이듬해 2017년 출간됐다)
실제로 읽기까지 3년이나 걸렸다는 게 좀 묘한 기분이 든다. 올해는 부쩍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와 괴리에 관해 자주
재고해 보게 된다. 《신경 끄기의 기술》 역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연달아 읽다 보면 저자들이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어떤 공통된 흐름을 찾게 된다. 이 사람들을 따라하려면 이런저런
루트를 좇으면 되겠구나 하는 통찰을 얻게 되는데, 문제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독서란 그저 아는 것이 최선인 채로
남는다는 데 있다. 나부터도 그렇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경제적 상황을 돌파하고 새로운 삶을 시도해 볼지를 여러 책을 통해 수없이
학습하면서도 그저 이러한 과정이 책 앞에서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앎에 그치고 마는 것이 때로는 신기한 기분마저 든다.
인간에게 지식과 실천은 철저히 분리된 영역에 존재하며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아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은 무의식에 기대어 절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렇게
곤경에 빠진 독자들에게 저자 마크 맨슨이 제시하는 통찰은, '신경을 끄라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우리가 지금 온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여러 자극 요소들 중 각자에게 필요한 극히 일부만을 선별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것인데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된 아이디어만
놓고 보자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만, 사실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라는 게 비슷한 속성을 띤다. 중요한 건 대단히 새롭고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독서 행위의 한복판에서 우연히 자신과 주파수가 맞닿는 누군가의 문장을 만나는 일이다. 때론 이런 사소한
말들이 모여 우리의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술술 읽기 쉽고, 거듭 말하지만 초중반은 내용면에서 대단히 특별하달 게 없다. 하지만 마지막장 '결국 우린 다 죽어' 대목을 읽고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졌다. 이 책은 우리가 왜 삶을 열심히 살면 좋은지, 그 근원적인 동기를 다룬다. 죽음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전면에 나서는 일이 잘 없다. 우리는 죽음을 알고 있지만 죽음을 진짜 알고 있지는 못하다. 살아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고, 이왕 살아갈 거라면 그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쓰고 싶어지게 되는데(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선형의 시간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어떤 순환 고리 속에 놓여 있음을. 전부 쓰고 보니 굉장히 철학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도 마지막장에서 저자가 희망봉에
오르는 대목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 책이 이렇게나 깊은 내면의 감정을 건들 줄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왠지 2020년과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에야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재밌고 하찮은 우연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