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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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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언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단어가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김훈의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밥, 돈, 몸, 길, 글. 그가 이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하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장 기본적이고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아닐까. 먹어야 살고, 돈이 있어야 먹고, 몸이 성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가야 할 길을 묻고 걷고 하는 일들. 그리고 그에게 한 가지 더 해야 할 말은 글일 것이다. 여전히 자판 두드리는 게 아니라 손으로 글을 쓴다는 그의 말에,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느꼈던 분위기가 참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김밥은 과자나 떡 같은 주전부리가 아니라, 당당히 '밥'의 계열에 속한다.

김밥은 끼니를 감당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끼니를 해결하는 밥 먹기의 엄숙성에서 벗어나 있다. 김밥은 끼니이면서도 끼니가 아닌 것처럼 가벼운 밥 먹기로 끼니를 때울 수가 있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울 때, 나는 끼니를 때우고 있다는 삶의 하중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김밥의 가벼움은 서늘하다. 크고 뚱뚱한 김밥은 이 같은 정서적 사명을 수행하지 못한다. 뚱뚱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난 내용물이 쏟아져나올 때 나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 (14~15페이지)

 

김밥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털어놓는 사람 흔하지 않을 테니까.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는 그의 말을 알 것도 같다. 제목 때문에라도 이 책이 무슨 말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이 정도의 깊이일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세상 구석구석의 장면을 그의 글을 통해 대신 듣는 기분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단순하게(?) 먹는 일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그는 아들에게 하는 말로 표현했다)에 팍팍한 세상을 현실감 있게 버틸 수 있는 자세를 전수한다. 자기는 상관 말고 '네 돈 벌어서 너 잘 쓰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부모에게 잘해야 하는 건 맞지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속에 부모를 넉넉히 챙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모두의 고통이자 숙제일 것이므로. 투덜거리듯 하는 말이 아니고, 그저 그게 맞는 것이니 그리 살아보아라,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의 그런 말투와 표정은 라면에 대해 이십 페이지 넘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장면 하나하나를 그리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 행위에 삶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담고 싶었던 걸까. 뚜렷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알 것도 같은 감정들에 그의 산문을 기다렸던 독자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세상의 돈은 자꾸만 양명한 들판을 버리고 음습한 계곡으로 흘러가려 한다. 돈은 실물의 그림자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돈의 탄생은 하찮다. 그러나 이 그림자가 실물을 만들어내고 유통시키고 유통의 마당에서 몰아내기도 한다. 돈이 인간의 마음속에 어떤 무늬와 질감을 드리우고 있는가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쉽지 않은 까닭은 사람들의 정서가 돈으로부터 완전히 격절된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돈이 주는 안도감과 돈이 주는 불안감, 돈이 주는 성취감과 돈이 주는 절망감으로부터 우리는 도망칠 수가 없다. 돈은 추상성과 구체성을 동시에 완벽하게 완성해낸다. 무서운 일이다. (187~188페이지)

 

타인의 삶을 대하듯 관조하며 한발 물러서려 했던 습관 같은 나의 감정을 그의 글로 좀 더 가까이서 보게 된다. 끝난 일도 아니고 무던해질 수도 없는 일인 세월호 사고부터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어마어마한 일들을 놓치지 않는다. 화려한 것 이면이 얼마나 어둡고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지,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그의 평발 아들을 언급하더라), 옳은 일을 보는 눈으로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는 게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품게 한다.

 

쉬운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가득한데, 밥벌이가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나가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일상의 푸념처럼, 토닥임처럼 들린다.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보다 슬픔을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모든 것은 그 이후에 이어지기 마련이므로.

 

가을의 바람은 세상을 스쳐서 소리를 끌어낼 뿐 아니라, 사람의 몸을 스쳐서 몸속에 감추어진 소리를 끌어낸다. 그 소리 또한 바람이다. 몸속의 바람으로 관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의 호흡은 그래서 가을날 더욱 선명히 느껴진다.

바람 부는 가을날, 모든 잎맥이 바람에 스쳐서 떨릴 때, 나는 내 몸속의 바람을 가을의 바람에 포개며 스스로 풍화를 예비한다. 악기가 없더라도 바람에 내맡긴 내 몸이 이미 악기다. (376페이지)

 

오랫동안 다시 만나길 기다렸다는 그의 산문을 이렇게 읽고 나니, 말랑말랑한 것보다 단단한 분위기를 먼저 느꼈다. 그의 필체를 본 적은 없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지만 아마 힘 있는 글씨체일 것 같다. 그의 말투가 그렇다. 아프고 여린 이야기마저 기운 내지 않고서는 안 될 것 같은 힘을 낸다. 얼핏 투박하게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언제 또 그의 글을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조금 더 내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의 문장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읽고 싶어졌다. 그가 글에 담은 힘이 나에게 조금 더 다가올 수 있도록.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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