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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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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의 신간 소식이 반가웠지만, 이번 세 번째 도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편하게 읽히는 책 한 권을 만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이 책을 얼마쯤 읽었을까, 저자의 글에서 '제임스 설터'가 몇 번 언급된 부분을 보다 생각났다. 아, 그 책의 번역가였구나. 제임스 설터의 전작 두 권을 읽으면서 봤던 이름이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번역가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했던 작품이었다. 감정적으로 흥분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제임스 설터가 그렇게 썼는지, 아니면 번역가의 번역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법 담담하게 읽었던 여운 때문이었다. 저자와의 그런 인연(?)이 생각난 순간, 이 책이 달리 보였다. 편하게 읽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흥분되지 않는 감정의 선을 더 그어갈 수 있다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분명 어떤 감정이 들어가 있기는 한데, 내가 읽은 이 책은 감정의 흐름보다는 조금은 담담하게 읽혔다. 저자의 말투와 흐름이 여전했다는 느낌?

 

무엇을 강요하거나 억지스럽게 소개하려는 애쓰는 게 없다. 담담하게 풀어가는 일상의 한 부분이며, 저자의 생활 대부분을 이루는 책과 예술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지극히 사적인 저자의 시선을 담은 뉴욕이란 도시 생활기이자, 그곳에서 살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일기처럼 풀어낸 글이다. 때론 타지에서 겪는 향수가 살짝, 삶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세상 보기가 약간, 그림과 작가에 대한 지식이 많이, 담겨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과 자신이 쓴 글을 되짚어보는 일이자, 앞으로의 시간을 꾸려갈 어떤 마음의 확인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시선으로 읽게 했다. 무엇보다 저자의 사적인 도시의 이야기다, 그동안 내가 뉴욕이란 도시에 가졌던 선입견을 흐리게 했다는 거다. 상당히 거리감 있게, 뭔가 어울리지 못하고 삭막하게,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표본처럼 여겼다. 그런데 말이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뉴욕이든 어느 도시든 특별해지는 건 한순간이더라. 그 특별한 감정을 함께한 곳이 저자에겐 뉴욕이었을 뿐이다. 뉴욕에서 살면서 크게 작게 저자가 겪어간 시간이나 장면이 저장한 기억이 이 글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러한 것들이 모여 저자에게 특별하고 사적인 도시로 만든 거다. 그 도시 전체가 아니라 저자를 품었던, 저자가 걸었던 그 길이 이젠 그냥 도시가 아니고, 그냥 길이 아닌 게 된 것. 읽다가 문득, '나에게 그런 도시는 어디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쉽게도 그런 특별한 기억저장소로 들어갈 도시가, 나에겐 없더라.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숨 쉬고 걸었던 그곳의 이야기가 사적이고 특별해 보였다. 반면에 그 특별함에 속하지 않은 나도 불편하지 않게 읽을 수 있게 한다. 낯선 곳을 걷는 기분으로, 낯선 사람들과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표정으로, 낯선 기분을 즐기게 하면서.

 

사람들이 내가 쓴 책에서 원하는 것은 결국 뉴욕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요했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 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87~88페이지)

 

거의 모든 예술가의 도시라고 여겼던 곳. 뉴욕의 갤러리들과 거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게 한다. 공연과 영화를 찾아다니며 음악으로 귀를 붙잡고, 그 시대의 패션과 스타일을 그리게 한다. (이 책은 2005~2010년까지의 기록이다) 예술 작품들을 이야기하고, 무심코 책 한 권을 꺼내 어느 구절을 찾게 한다. 사실 나에게는 저자의 관심사나 기록, 저자가 언급하는 예술 작품들의 흥미로움이 그대로 전해지지는 않았다. 내가 잘 몰라서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다. 하지만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예술을 대하는 자세와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평범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그 진지함과 특별함에 눈길을 머물게 하곤 했다. 한편으로는 그 분위기를 끌어가며 뭔가 더 말하고 가르쳐주려고 하는가 싶었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읽는 이에게 강요하는 게 없어서다. 그저 저자의 생활 주를 이루는 것들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런 관심사가 있고, 이런 일을 하며, 이런 사람들과 이런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다. 바로 여기, 뉴욕에서...'라고 말하는 듯이.

 

언급되는 작품들과 작가들의 이야기에서, 미술을 보는 전문적인 눈을 가지면 좋겠다는 부러움의 시선도 가지게 된다. 그림을 자유롭게 보면 된다고 하지만, 제대로 볼 줄 아는 자연스러운 지식을 말한다. 여러 작가를 말할 때는 애정과 관심이 넘쳐 보였고, 그들의 작품과 생을 들려줄 때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관심 두게 된다면 예술을 접하는 깊은 눈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많이 들어본 작가도 있었지만, 저자가 어디에 아껴두었다가 꺼낸 것처럼 생소하게 들리는 작가도 있었다. 아마도 여기서 저자의 취향을 살짝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패션, 미술, 문학 등 다양하게 그 취향의 멋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자가 번역한 작품들, 애정 있게 보는 그림들, 시대의 흐름을 말하는 패션의 대가들.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작가와 작품들의 이야기가 연결된 듯하다. 같은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위대한 질문이야말로 큰 영감을 준다.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모두 위대한 질문이었고 다른 작가들이 밟고 올라서는 토대였다. 이렇게 우리가 방을 채워가는 수많은 답들은 그 자체로 다시 방만한 질문이 된다. 과연 우리가 이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중요한 것들을 누구의 힘으로 어떻게 지킬 것인가. (171페이지)

 

뉴욕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느낌이 강했다. 오랜 시간 뉴욕에 머물면서 보고 듣고 겪었던 저자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곳과 이곳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지. 몰랐던 장면들에 낯선 시선을 던지면서도 신중하게 듣게 하면서, 단어 하나가 품은 여러 의미를 어느 순간에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한다. 이건 아마도 살아가는 태도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적용하는 듯하다. 매일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적어낸 것을 이렇게 한 권으로 만나게 되어,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아, 이런 문화의 이야기가 여기서 들려오는군요.'라고 알게 되었다고 말해야만 할 것만 같다. 번역자로 만났던 저자 특유의 분위기가 글 곳곳에 녹아있어 이국의 도시를 이야기하는데도 친근함은 있다. 번역자로만 알고 있던 저자의 이름에 다른 이름이 많이 더해질 듯하다.

 

 

덧)

책 재킷을 벗겨내어 펼치면 안쪽에 자리한 뉴욕의 지도가 하나의 산책로로 정리되어 있다. 손끝으로 그 산책로를 짚어가며 눈으로 걷는 길을 만끽해도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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