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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서머싯 몸의 소설들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정신의 추구, 세속과 현실에서의 탈피, 정신적인 구도, 예술혼의 열망 등을 그린 작품들이 많습니다. <달과 6펜스>에서는 타히티에서 예술의 혼을 불태운 고갱의 삶을 허구화하여 지은 소설로, 달은 광기어린 예술에의 열망을 뜻하고, 6펜스는 물질을 대변하는 세속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떠나 결국은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숨지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면도날>은 정신과 물질 중에 정신과 영혼에의 추구를 위해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 청년의 인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에 참여했다가 옆에서 죽어가는 친구의 주검을 보고, 허무함을 느낀 래리 데럴이 정신적인 세계에 대한 갈망을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결국 면도날을 뛰어넘는 듯한 , 구원으로의 어려움을 묘사해 내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서머싯 몸의 3대 소설(달과 6펜스, 면도날, 인간의 굴레에서)을 지금 읽어내고 있는 중입니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서머싯 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 부모를 일찍 여의고 백부의 집에서 자란 유년 시절부터 의학공부와 미술 공부를 해왔던 시절은 비슷하게 작가의 삶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과 허구가 구별되지 않고 뒤섞여 있다고 저자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필립>은 절름발이의 불구를 가지고 킹즈 스쿨을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의 친구들은 그가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에 놀림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다름이 곧 틀림이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학창시절의 오류를 철저히 겪게 됩니다. 이로서 필립은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이루어 지고, 정신적인 세계가 더욱 넓어 지고 커져 갑니다. 수줍어 하는 성격 탓으로 친사람을 사귀기 어려움을 느낀 필립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독서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또래의 아이보다 심미안이 넓어지고 지식과 사상이 커져 가게 됩니다.
자신의 신체적인 조건 때문에 고민에 빠졌던 필립은 퍼킨즈 교장의 말 한마디에 약간은 자유로와 질수 있었습니다. " 네 어깨가 특별히 강하여 사랑의 표시로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고 생각해 보란 말이다. 그러면 그게 불행이 아니라 행복의 근원이 될것이다."(117쪽) 하느님이 절름발이라는 신체적인 악조건의 십자가를 그의 어깨가 특별히 강하여 지도록 하셨기 때문에 오히려 불행이 아니라 행복의 근원이 될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심어 주었던 것이지요. 현실적인 문제에서도 내속의 장애나 내면의 불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그것을 짊어 질수 있는 특별한 어깨가 나의 어깨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불행이 아닌 내가 오히려 특별하다는 것은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면이 강인하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발견할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신체적인 조건 외에 성격적인 면을 생각 해볼수 있습니다. 주인공 필립도 자신의 수줍어 하는 성격 탓에 많은 친구를 사귈수 없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필립은 제 불구의 발이 불러 일으키는 조롱을 통해 순진한 유년을 거쳐 쓰라린 자의식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고통스럽게만 느껴지는 수줍은 성격 밑 저안에서 무엇인가 자라고 있었다. 어렴풋이나마 필립은 그것이 자신의 개성임을 깨달았다."(82쪽) 수줍은 성격 저변에 자신의 개성이 자라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활발하고 말을 잘해 사람을 끌어 모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요. 저도 후자편에 속하는데, 이런 성격도 하나의 개성으로 볼수 있으며, 그런 성격으로 인해 내면과 정신적인 세계 탐구에 더 집중할수 있는 이점이 있을수 있는 것입니다. "수줍음에서인지, 동굴 생활을 하던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무슨 격세유전의 형질 때문인지는 몰라도, 처음 대하는 사람을 늘 꺼려했다."(173쪽) 수줍은 성격의 모태가 동굴 생활을 하던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격세유전의 형질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 충분히 개연성 있다는 면에서 , 이런 성격의 소유자도 열등감에 사로 잡힐 필요가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
사제인 백부의 뒤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던 필립은 "믿음이 있으면 산이라도 옮길수 있다"는 성경구절을 두고 자신의 절름발이를 고쳐달라고 사뭇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회다녀 보셨던 분들은 많이 해보셨던 기도일겁니다. 하지만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점점 자신의 신앙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들어냅니다. 그리고 위선적인 백부의 사제 역할에도 치가 떨려 합니다. 그러다 독일에서의 하숙집 친구인 "위크스"와 파리에서의 미술 공부 중 "크로손"이라는 시인의 신앙에 구애 받지 않는 조언에 의해 믿음의 구속에서 자유로워 질수 있게 됩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신앙을 간단히 벗어 던져 버렸다. 마치 몸에 맞지 않게 된 외투처럼. 비록 깨닫지는 못했지만 신앙이 오랫동안 그를 지탱해 왔던지라. 그것을 버리고 나자. 처음에는 삶이 낯설고 외롭게 보였다. 지팡이에 의지해 오던 사람이 갑자기 지팡이 없이 걷게 된 기분이었다. 낮은 더 춥고, 밤은 더 외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벅찬 감격이 그를 버티게 해주었다. 삶이 더 아슬아슬한 모험으로 여겨졌다.(194쪽)
결국 필립은 자신의 절름발이라는 육체적인 인간의 굴레에서, 그리고 수줍은 성격이라는 인간의 굴레에서, 그 당시 지배하던 영국 국교회의 신앙이라는 인간의 굴레에서 , 서서히 자유로와 지고 있습니다. 또 1권의 후반부에서 나오는 "밀드레드"를 향한 짝사랑의 고통 후에 "인간의 사랑과 욕망"이라는 굴레에서도 서서히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학창시절 절친이었던 "로우즈"라는 친구와의 사이에서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결국 친구와의 우정도 깨어지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여자를 사랑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녀가 속물이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 그녀를 사랑할수 밖에 없었던, 끊어지지 않는 욕망의 사슬을 결국은 그녀의 결혼으로, 그리고 시간의 흐름으로 벗어날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따져 보면 인간의 인생중에서 벗어나야 할 인간의 굴레들이 참 많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옭아 매고 있던 굴레들을 겪은 후에야 자유로울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셈이지요. 지금 당신은 어떤 굴레에 얽매여 있는지요.? 아직 우리의 필립은 절반의 인생을 살면서 많은 굴레를 짊어지기도, 벗어나 보기도 했습니다. 남은 그의 굴레가 또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이건 2권에서 계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