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 찾기/열네 살이 어때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 조선 시대의 놀라운 기록 문화 책과함께어린이 찾기 시리즈
신병주.이혜숙 지음 / 책과함께어린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 의궤 반환 소식들이 속속 들려서 기뻐요...



'조선왕실의궤 등 日 수탈 도서 1205권 6개월내 국내에 돌아온다'
'한·일 정부, ‘조선왕실의궤’ 반환 협정 서명'
'한-불 정상, 외규장각 도서 반환 합의'

이 기사들은 최근 몇 주에 걸쳐 기사화된 사실입니다.
이 왕실 규장각 책을 읽으면서 의궤의 수탈 내용이 가장 안타까웠드랬습니다. 침략, 약탈에 의해 우리 나라의 귀중한 보물들이 유럽은 물론 일본에도 상당수 나가있으니 말이지요.
이렇게 기사화 되어 너무 기뻤답니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의 기록들이 어서 빨리 돌아왔으면 합니다.
그래야 우리 선조들이 기뻐하시겠지요^^


TV 방송 등에서 사극을 많이 보여주지요. 그런데 주 내용은 수많은 역사시대 가운데서도 주로 조선에 관한 사극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그것은 조선시대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기에 그런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조선왕조실록.. 이 소중한 기록 덕분은 아닐런지요.
이 책은 조선 시대의 기록 문화에 대해 아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규장각에 숨겨진 보물들에 대해서 말이지요.



규장각은 조선의 제 22대 왕인 정조께서 세운 곳입니다.
역대 왕들의 기록은 물론 학자들이 모여서 공부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모 방송에서 한 드라마를 통해 성균관, 규장각 등이 최근 검색어에 이슈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덕분에 저도 더 관심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완전 보물인 책입니다. 너무 감사한 책이기도 해요.)
정조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왕 중의 한분이신데, 그 분의 업적이 참으로 많습니다. 짧은 기간안에 이룬 그 수많은 일 중 성균관, 규장각 등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역사의 기록을 소중히 했던 점은 더 귀히 여김을 받아야 할듯 합니다.



왕이 쓴 글씨, 그림 등은 물론 왕실 기록의 꽃인 의궤, 우리의 옛 땅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지도와 선조들의 외국어 학습 방법 등이 이 책엔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요.
왕이 쓴 글씨, 고관의 얼굴 그림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죠.
게다 의궤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는 왕실의 이야기들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지도의 경우엔 지금 봐도 이해가 될 정도로 굉장히 상세해요.
지금과 같은 산세가 아니었을텐데, 직접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지도를 그렸다는 점이 가장 존경스럽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나라들과 교류를 하면서 외국어를 배워야했을텐데요. 그 당시 외국어 교재 책을 볼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좋았어요. 




실제 기록 자료와 그림, 사진들과 함께 상세한 설명이 나와서 조금 큰 아이들이 보면 많은 도움이 될거 같아요. 직접 규장각을 가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보물들이 약탈당했던 여러 침략과 소실 되었던 전쟁들을 보면서는 솔직히 억울하고 분했답니다. 얼마나 아까운 기록들이 사라졌는지요. 하지만 그 중 일부는 돌아온다고 하니, 앞으로 기존에 있던 기록들과 다시 올 우리 기록을 보존하고 지켜서 향후 우리 후손들에게도 잘 물려줬으면 해요.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기록을 통해 우리 선조의 생활 모습, 그 시대의 지형 등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에요.
아동용으로 나왔다고는 하나 어른이 보기에도 굉장히 좋은 내용들이 많구요. 많이 배울 수 있어요. 어른들이 볼 수 있는 규장각에 대한 책을 찾아서 또 보고 싶을 정도로 너무 만족스러운 책이랍니다.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요.





※ 규장각 [奎章閣]

: 내각(內閣)이라고도 한다. 정조(正祖)가 즉위한 1776년 궐내(闕內)에 설치,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親筆)의 서화(書畵)·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王世譜)·보감(寶鑑) 등을 보관 관리하던 곳이다. 규장각의 명칭은 1464년(세조 10) 양성지(梁誠之)가 헌의(獻議)한 일이 있고, 1694년(숙종 20)에는 종부시(宗簿寺)에 예속된 어제(御製)·어필(御筆)을 보관하는 한 소각(小閣)의 각명(閣名)으로 쓰기도 하였으나 곧 폐지되었다. 정조는 즉위하자 곧 창덕궁(昌德宮)의 북원(北苑)에 새로 집을 짓고 고사(故事)를 따라 규장각이라 명명(命名), 직제(職制)를 갖춘 한 독립된 기구로서 국립도서관의 기능을 가지게 하였다.

그러나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은 단순히 역대 국왕의 어제·어필을 보관하는 일뿐만 아니라, 당시왕권을 위태롭게 하던 척리(戚里)·환관(宦官) 들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건국 이래의 정치·경제·사회 등의 현실문제의 해결은 곧 학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 국가적 규모로 도서를 수집하고 보존 간행하는 데 있었다.

중략...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외규장각 [外奎章閣]

: 1782년 2월 정조(正祖)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였다. 설치 이후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를 비롯해 총 1,000여 권의 서적을 보관하였으나,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일부 서적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다.

19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촉탁 직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에 조선시대의 도서가 보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목록을 정리하여 그 존재가 알려졌다. 서울대학교는 1991년에 정부에 도서 191종 279권의 반환 추진을 요청하였고 1992년에 정부는 외규장각 도서목록을 프랑스에 전하여 도서 반환을 요청했다.

중략...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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