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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가장 든든한 안전망이자 가장 억압적인 망이다.
다양한 사회의 지향과 방향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장 깊숙한 내면으로부터 공감과 이해를 하기는 어려운 지점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어원에는 엘리트계층이 지배하는 소유물을 지칭(p.28)하는 말로 오늘날과 다른 의미였다.
가장은 스스로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에 해당하지 않았으며, 가족에는 노동력과 자본력이 없는 여성과 아동, 노예에 해당했을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며느리의 존재는 온순하고 고분고분한 것을 미덕이라 여기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타인의 삶에 종속되도록(p.35) 만든, '스스로 자발적인 노예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작동되었던 것이다.
결혼 제도는 무엇을 위해 유지되고 있는가? 여전히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출생과 보호가 장려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혼외출생률이 2.5%로 OECD 평균 41.9%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행태는 우리 사회가 결혼이라는 법적 제도 안에서 사회적 존재에 대한 인정과 보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법적 제도 안에서 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우생학의 원리에 의해 장애인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 시술을 자행했던 것은 인간의 오만이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잘 볼 수 없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장애인이 밖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화적 강국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사회적 자본을 등에 업은 문화일 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우리와 공존할 수 있음에 대한 인식은 배제하고 있다.
가족 내에서 성평등 태도는 그 사회의 출생률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전통적인 성역할 태도에서 벗어나는 초기에는 합계출생률이 떨어지지만, 사회적으로 평등 의식이 정착하면 출생률이 반등하여 높아지는 U자형 변화가 이루어진다(118쪽).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전통적인 성역할 안에서 개인의 노동력과 노력, 인내, 희생을 강요하며 평등의식을 높이려는 정책이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더딘 정책만큼이나 성의 이분법적 대립을 통해 서로에 대해 반감을 높이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2022 교육과정 공청회에서 도덕교과와 사회교과에서 성평등에 대한 논의는 '양성평등'으로 한정해야 한다며 공청회장에 소리 높인 단체가 있었다. 다양한 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는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내면으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히 1부 전진과 2보 후퇴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머리로 알고 있지만 깊은 이해가 부족해 여전히 차별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는 나의 시선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
한 학생이 '나 게이야.'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고, 상담 과정에서 진실을 뱉으라는 나의 강요에 '정말 아니에요'라는 말에 안도감을 느꼈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적 시선을 견뎌야 하는 학생에 대한 부담을 한움큼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마음과 동시에
여전히 나에게도 차별의 시선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부모님과 삼대 면담을 하는 과정은 차별에 대한 가장 강렬한 경험은 가장 많은 이해를 요하는 가족, 가까운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김지혜 교수의 <가족각본>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어렴풋이 차별의 시각 속에 스스로를 맡겼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