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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아이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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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너무 일찍 내놓은 탓에, 이제는 완연한 봄이 되었는데도 화분은 시들하기만 합니다. 뒤늦게 화분의 괴로움을 알아차려 해 드는 곳을 따라 화분을 옮겨보고, 영양제도 꽂아주고, 혹 목이 마를까 물도 듬뿍 주지만 어쩐지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만 합니다.

 

화분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을 읽고 나서 말이지요.

 

사람이 살고, 원하는 것을 하고, 다투고, 죽기까지 시간이 똑같이 흘러도 같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시기'라고 부르겠습니다. 시기가 적절치 않아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뒤바뀝니다. 조금씩 틀어진 저들의 운명은 역사를 바꿔놓기도 하지요.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저들의 운명을 탓하고, 옛날 이야기를 그리워하며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텨냅니다. 어째서 이들의 삶은 그토록 닮아 있는지 몰라요. 사막은 황량하기만 하고, 마을은 척박하기만 하죠. 마을을 내려다보는 '대저택'은 굳건하고 냉담해서 누구에게는 존재만으로 희망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 대저택은 절망을 상기할 뿐입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찰나에 불과한 영광의 순간들은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요.

 

영광은 알아차릴 틈 없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공명심 높은 개인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제 생각을 고양시키면 서서히 전운이 감돌죠.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피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대의'가 무엇인지 잊지 않는 영웅들과 지지자들은 끝내 그들의 영광을 이룩해요.

 

많은 이야기는 그 영광의 순간을 보여주고는 끝이 납니다. 독자는 희망을 꿈꾸고 현실을 탓함과 동시에 그 현실에 살아갈 동력을 얻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죠. 다시 부조리의 싹이 트고, 이기심이 자라나면서 제자리로 가고 말아요. 혹은 후퇴한 채로 머물거나 말입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빛나는 것은 영광의 순간 이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우리 동네'를 꿋꿋하게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거든요.

 

순환하는 역사 안에서 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종교란 무엇인지, 과학과 무기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작가 나지브 마흐푸즈는 넓은 시선으로 '우리 동네'를 보여줌으로써 대단히 세밀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수장들(폭력배들), 관재인(재벌)과 마을 사람들이 대립하는 순간에 희망을 그리기도 하고요, 다시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기까지 순환하는 역사의 숙명적인 순간들을 담담히 적어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반복되는 이야기에 절망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들에서 오히려 희망을 얻었어요. 반복될지언정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어떤 순간은 언젠가 반드시 오리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다만 더 망가뜨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빠지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면서 다음 세대, 혹은 다다음 세대가 만날 영광의 순간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 어느 어른에게 들은 이런 삶의 자세로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가 볼 생각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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