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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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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탐정'에 매료되고(베네딕트 컴버배치!!! 하아악...) '탐정소설'에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만 저로 말하자면 탐정이란 쉽게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미지의 낯선자, 하나같이 놀라운 관찰력과 추리력이라는 비범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어두운 사무실(이들은 꼭 그곳에 기거합니다)에서 의뢰인을 맞이하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이성의 호감을 받기도 하는 불가해한 존재일 뿐입니다. 장르소설을 좋아하긴 해도 어쩐지 탐정만 나오면 좀처럼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 느릿느릿, 게으르게 그들이 이끄는 곳을 억지로 끌려가곤 했습니다. 게다가 탐정이란 직업이 양지에 드러나지 않은(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한국에서, 한국 작가가 탄생시킨 탐정이라면 제가 기대할 것은 많지 않았겠지요. 이미 편견을 고치기 쉽지 않은 나이가 된 마당에 사뭇 걱정스런 마음으로 주인공 '구동치'의 행적을 좇았달까요. (어쨌든 소설에서 '탐정'이란 굉장히 매력적인 도구인 건 확실합니다)

 

 

 

 

보통의 탐정과 달리 우리의 주인공 '구동치'는 '찾는' 탐정이 아니라 '지우는' 탐정입니다. 의뢰인들은 무언가 없애달라는 주문을 하러 구동치를 찾습니다. 탐정의 등장만으로 긴장했던 제 우려가 삽시간에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이 얼마나 탁월한 차별화인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없애고 싶은 무언가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으니까요. 갖고 싶은 것 이상으로 가지고 있지만 없애고 싶은 것이 많지요. 그런 게 인간인가 봅니다.

 

 

 

지우는 작업은 둘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철학적인 대목입니다.

 

구동치는 그것을 '풀 딜리팅(full deleting)'과 '하프 딜리팅(half deleting)'으로 나눠 부르는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구동치는 두 개의 세계 모두에서 물건을 없애는 것을 풀 딜리팅full deleting이라 불렀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세계로 물건을 옮기는 것을 하프 딜리팅half deleting이라 불렀다. 물건을 그저 옮기는 것만으로 딜리팅이 가능한 것이다. - 85쪽

 

흥미로워요, 흥미롭습니다. 원하는 만큼 세계를 통제할 수 없는 게 우리라는 존재고, 그러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는 기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없애려 하는 건 모르는 세계로 옮겨주기만 해도 없어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구동치가, 의뢰인의 주문을 받아 그들이 없애달라고 요구했던 것을 제 사물함에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딜리팅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뜬금없이 남자친구가 바람 피워도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다던 친구의 말이 떠오르는 건... 왜죠?)

 

 

덧붙여 지난 3월 연강홀에서 있던 한병철 교수의 강연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투명사회>를 읽어보세요).

 

"사람들은 자기를 노출하고 전시함으로써 열렬히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동참한다."

 

우리는 SNS의 엄청난 힘을 압니다. 아랍권 여러 국가에서 보았듯이 말이죠. 그렇지만 치명적인 지배도구로 전락하는 모습도 가까이서,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이제 세상은 '잊힐 권리'를 주장하며 인터넷 상에 널린 개인정보를 수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구동치의 콘셉트! 참 절묘하지 않나요?

 

 

 

소설은 탐정 구동치의 딜리팅 과정에서 어긋나는 인간 욕망이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그려집니다. 어떤 악의에서 딜리팅을 의뢰하기도 하고, 명예나 내밀한 욕망에 의해 요구되기도 하고요. 그로인한 부수적 피해도, 분명히 일어납니다. 아빠의 의뢰 때문에 추억과 작업물을 동시에 잃은 정소윤이 구동치를 끊임없이 쫓고 괴롭히는(?) 부분은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절대 악인도 완전무결한 선인도 없습니다. 그만큼 없어져야 할 것과 꼭 존재해야 할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도 않지요. 실제 세상은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어떤 작위가 예측하지 못한, 결코 원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유기적인 세계에 살고 있고, 균형을 잃지 않으며 살아야 하죠. 이러한 균형 상태를 소설은 잘 포착하고 있는데, 저는 이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소설은 '냄새'로 시작합니다. 시각적 이미지와 달리 냄새란 문장으로 상상하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 책을 덮으니 어떤 고유한 냄새가, 이 소설에서 나는 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월요일의 냄새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합니다.

 

 

냄새는 악어빌딩 어디에나 스며 있었다. - 9쪽

'냄새가 난다'기보다 냄새 그 자체가 빌딩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 362쪽

 

 

 

*

이제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나는 무엇을 없애고 싶은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려 하는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 몇몇 가지를 생각하다 우디 앨런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대사를 떠올립니다.

 

"원하는 것은 모르고 원하지 않는 것만 알죠."

 

확실한 건, 없애고 싶은 건 정확히 알겠다는 사실입니다.

 

 

"들어가도 됩니까?"
남자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구동치가 문손잡이를 계속 붙든 채 대답했다.
"잊혀지고 싶어서 왔습니다."

-13쪽

 

눈 속의 불안은 아직 껍질을 깨고 나오기 전의 새와 같다. 불안은 자라서 공포가 되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 52쪽

 

우리는 전부 다 작은 검정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데 말이죠,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만 알죠. - 75쪽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 328쪽


마지막 말은 할 수 없는 말이다. 불가능한 말이다. 늘 비어 있는 말이다. - 390쪽

 

그림자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시간이 빨리 흥러가는 기분이었다. 일요일의 기다린 그림자는 이미 월요일에 가 닿아 있는 것 같았다. 자동차는 그림자를 밟으며 빠르게 시간을 건너갔다. - 390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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