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사람은 매일 변합니다.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있어 보여도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들을 보니 그 때와 지금의 나 역시 조금은 변했구나, 생각합니다. 올해가 가고 대통령이 바뀌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오겠지요(올까요?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 48%정도 믿고 있었는데...).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 깊이 깊이 생각합니다. 11기 서평단 마지막 추천 페이퍼를 쓰려니 감상적이군요. 





어쩌면 늘 이런 작품을 상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극단적인 설정, 치열한 탐구, 절대적 공포, 같은 것들. 일찍이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보여준 통제된 사회에 대한 공포가 떠오릅니다. 그 공포가 보다 더 먼 지점으로 치달으면 이 소설을 발견하지 않을까요? 

인육을 먹는다는 설정은 한국영화에서도 종종 보았습니다. <악마를 보았다>라거나 <피에타> 같은 영화인데요. 사실 영화에서 조차 이런 설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이 영화들 자체도 역시 '과하다'는 평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1970년대, 공산정권 아래 있었던 작가가 정권을 비판하려고 차용한 이 설정. 아주 기대가 됩니다.  






거르지 않은,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같은 언어로 쓰여진 소설. 찰나의 순간을 기가 막히게 그린 작품. 가을에는 그런 작품에 목마릅니다. 

번역을 거친 소설이나 다른 문화권의 감성을 가진 소설은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게 마련이에요. 소설을 읽을수록 같은 언어로 쓴 작품이 갖는 편안함과 불편함이 좋아집니다. 

잠시 김연수로 갈증을 달랬어요. 이제 하일지 소설을 읽을 차례가 됐습니다. 










거대한 욕망(돈, 자본주의) 앞에 개인의 가치관이나 믿음 따위는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수 있는 개미 한 마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일부 집단 앞에 P세대는 노예처럼 끌려다닐뿐이지요. 

러시아나 멕시코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중국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개미의 욕망과 좌절, 자본주의에 동화되는 하찮은 인생들.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 하나하나의 삶은 그렇게 소비되고 말 겁니다. 이런 작가가 세상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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