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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는 '확신'이란 것을 종종 합니다.(사실 굉장히 쉽게 하곤 하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가령, '나는 절대 바람피우지 않아'라고 자신 있게 말 하던 영화 속 남자 주인공(또는 여자 주인공)이 얼마나 쉽게 유혹에 굴복하는지요. 또는 '난 무조건 너를 믿어'라며 응원하던 친구가 배신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친한 후배는 "'절대'란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과연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의 확신(신념이나 믿음으로 대체할 수도 있겠습니다)이 얼마나 허약한지 아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허약하기 때문에 지키려는 노력을 더욱더 열심히 해야 하니까요. 




주인공 소피는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세상이 아주 견고하다고 믿었을 겁니다. 

듬직한 아버지, 사랑하는 남편, 자신이 인정받고 있는 회사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는 확실한 것들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소피 자신이 아주 작은 균열에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한 경계에 서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죠. 하기야 어느 누가 일상을 허약한 것으로 여기겠습니까?(그랬다가는 오히려 신경과민으로 쓰러질지도 모르겠군요.)


비극적이게도,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남자'의 미세한 공격에 소피의 일상은 모래성 무너지듯 허물어지고 맙니다. 


약속들, 사람과 사물들을 망각했고, 물건, 열쇠, 서류 등을 잃어버렸다가 우연히 다시 찾는 일이 반복되었으며, 몇 주 후에는 어처구니없는 장소에서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 - 20쪽



그리고 발생하는 사건들.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하던 젊은 여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들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주변 사람들이 죽고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져요.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욕망은 얼마나 강렬한지요! 여자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하고, 의외의 시도를 하죠. 이야기는 그녀를, 시간을, 독자를 흔들어 대면서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는 독자가 어떤 이야기에 빨려 드는지 잘 아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알렉스>도 정신없이 읽게 하더니 이 책,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는 엄청난 힘으로 독자를 유혹합니다. 등장인물의 감정 묘사는 단연 탁월합니다.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소피'가 되고, 또는 '프란츠'가 되어 긴장과 좌절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난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고, 눈에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문득 이 순간을 통해 내가 다른 사람이 되고 있다는 갑작스러운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내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든 일들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난 가까스로 그 일을 해냈지만, 그 일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그 아이와 함께 내 안의 무언가가 죽어버린 것이다. 내 안의 무언가...... 그것은 그때까지 내 안에 아직 살아 있던 어떤 아이였다. -256쪽





괜찮은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요. 

후련한 결말 덕분에 그리 찝찝하지 않게 책을 덮을 수 있거든요. 

단, 이 모든 것들이 절대로 일상에 일어나지 않을 꾸며낸 이야기라는 가정하에서 만요. 

(현실은 늘 더 충격적인 법이라;;) 





그녀는 그런 느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싶었다. 하지만 고약한 파리를 쫓듯 쫓아버리려 해도 그런 느낌은 집요하게 다시 돌아왔다. -18쪽


돌아올 가망이 없는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아는 거라곤 하나도 없고, 사방이 위험투성이인 적대적인 세계. (...)이제 소피는 그 누구도 아닌 존재가 되리라. -56쪽


그는 홱 고개를 돌렸다. 소피의 머리가 보이지 않자 황급히 뛰어갔다. 거품이 붉게 물들었고, 소피의 몸은 욕조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소피!" -286쪽


그것은 그가 그녀에게 온갖 정성을 쏟고, 그녀를 가공하고, 조종하고, 인도하고, 정성껏 빚어온 결과, 지금 그녀가 그의 어머니 사라와 똑같은 얼굴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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