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가 된 여자
엘리자베스 L. 실버 지음, 신상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뜻밖이라고 표현한 것은 판매량도 높지 않고 100자평 달랑 하나, 리뷰는 없는 책이어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광고가 붙고 무지 팔려나간 어떤 소설(그 소설의 제목을 언급하기는 좀....)보다 훨 낫다고 생각한다. 유명변호사의 딸이자 임신 중인 여자를 죽인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주인공이 진실을 말하게 되는 과정이 담담하게 서술된다. 사형수가 주인공이고 누군가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날의 진실을 말해달라 하고 결국 그 사형수가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독자는 어떤 결말을 기대하게 된다. 무고함이 밝혀져 풀려난다거나, 무고했지만 제도에 희생되어 사형된다거나. 그 기대를 배반하는지 충실히 따르는지는 말하기 곤란하다. 직접 읽어보시기를. 그 진실과 관계없이 나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성인이 된 딸 앞에 처음으로 나타나 아버지 노릇을 하고 싶어했던 남자. 버리고 떠났고 온갖 범죄로 인생을 낭비했지만 이제 드디어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던 남자. 그 남자는 드디어 딸의 마음을 연다. 그러나 위험이 닥치자 딸과 자기자신 중에서 자기자신을 선택한다. 아버지라는 역할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주인공 어머니도 그렇다. 딸과 자기자신 중에서 언제나 자기자신을 선택하지. 부모의 의무에 짓눌려 자기 삶을 희생하는 일 따위 개나 주라 한다.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주인공의 인생은 달랐을 것이다. 주인공이 아기였을 때 어머니가 한 행동이 아니었다면 여자는 사형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나타났고 어머니는 여자에게 어설픈 자기보호를 가르쳤다. 결국 여자는 사형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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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떠나는 남자
로랑 그라프 지음, 양영란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누가 그럴 수 있겠어요. 여행할 꿈을 꾸면서 철저히 여행 준비를 하지만 절대로 지금 이곳을 떠나지 않았던 갑갑한 한 남자의 삶을 비난, 혹은 가여워할 자 누구일까요. 떠날 것이기 때문에 사는 곳을 임시 거처로 여기죠. 하여, 세들어 사는 집에 못도 하나 안 박고 제대로 된 침대도 없이 삽니다. 혀를 찰 건가요? 그러지 마세요. 파트릭은, 나름 잘 살았습니다. 카지노에서 일하고 퇴직하고 어느날 모아두었던 돈을 들고가서 룰렛 테이블에 몽땅 걸죠. 한 판에 말이죠. 일확천금을 노린 것도 인생이 허무해서도 아니에요. 그냥 살았던 거예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살려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태어나버린 아들의 존재도 그의 인생을 바꿔놓진 못해요. 그는 그냥 그대로 에스페랑스 호텔 11호실에서 살아갑니다. 죽어 뼛가루가 된 다음에는 우주로 떠나게 되지만 그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어요. 죽음 이후에 그토록 원했던 여행을 이루었다고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글쎄요. 그걸 그렇게 해석한다면 파트릭의 삶은 결국 그토록 원하던 걸 이루지 못한 보잘것 없는 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어 주저됩니다. 그대로도 괜찮지 않았나요. 여행, 그거 꼭 가야하나요. 안 가면 어때요.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고 여행 준비를 하면서도 지금 여기의 삶을 누리면 되죠. 뭔가 부족하고 부족한 걸 채우고 싶어하는 모자란 인간, 그 모자람이 좋습니다. 자신의 뼛가루를 들고 달나라여행을 떠난 아들에게 죽은 파트릭이 한 마디 할 기회가 있다면 뭐라 했을까요. 잠시 파트릭이 되어 짐작해봅니다. 곰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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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날>은 소설 제목이다. 그리고 이 소설 주인공이 35세부터 입주해 살고있는 양로원 이름이다. 주인공 남자가 행복한 나날에서 지낸 시간들이 행복한 나날이었던 것처럼 (그랬기를 바란다) 이 소설을 발견하고 읽은 시간은 내게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래는 모두 옮겨적은 글이다.

 

열여덟 살에 나는 대체로 평범하다 싶게 인생을 메꾸는 그렇고 그런 일들, 예를 들어 연애나 일, 이상과 야심, 실망과 권태 등을 모두 겪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린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험이었겠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존재의 기쁨과 환멸을 겪었으면, 그 정도면 인생에 대해 나름대로의 견해를 갖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라면 앞으로 인생은 더 이상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 어떤 '놀라운' 경이로움도 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런 야심도 없이 체념한 채 살기로 결심했으며,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다음 나는 구청으로 갔다. 거기서 나는 묘지 임대 담당직원을 만났다. 이렇게 해서 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생애 최초의 자동차를 구입하는 나이에 내 묘지를 사기로 결정했다. 나는 하나의 돌로 나의 인생을 구획 짓고 싶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나는 대학에서 설렁설렁 한량처럼 공부를 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내 무덤을 찾았다.

 

나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유일한 목적, 즉 여자를 자기 침대로 끌고 가기 위해 치뤄야 하는 복잡한 절차에 도통 흥미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만년 고등학생 식의 유치한 사랑놀음 따위는 지긋지긋했으므로 하루 속히 결혼을 해서 더 이상 여자타령일랑은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몇 달 동안 실속 없는 탐구를 계속한 끝에 마침내 나는 나랑 비슷한 나이에 가난하고 수줍음 많이 타며, 결혼을 원하는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위대한 사랑이 있다고 믿었으며, 어리석게도 내가 그 사랑을 이루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필요가 없었다. 여자 스스로 곧 알게 될 테니까. 그 점만 뺀다면, 여자는 그다지 요구 조건이 까다롭지도 않았고, 머릿속이 복잡하지도 않았으며, 자기에 대한 나의 감정이 진실하다고 확신을 시켜주는 한 아주 작은 것으로도 만족할 줄 알았다.

 

한 번 더 나는 내 운명을 앞질렀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떠나기로 결심했음을 알렸다. 나는 아열대지방 같은 곳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고요함과 평화를 원했으며, 생활과 붙어다니는 번거로운 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다. 나는 삶의 표면 위에서 물결 이는 대로 천천히 부유하고 싶었다. 물 위를 떠다니다가  집 안에 틀어박히고 싶었다. 그래서 서른다섯 살에 나는 양로원에서의 삶을 택했다.

 

나는 양로원 측에서 기획하는 단체 외출과 공연 관람을 제외하곤 가능한 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스스로에게 최소한의 오락만을 허용함으로써 어떤 진실에 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늘 벤치를 좋아했다. 벤치는 은퇴의 상징이며, 세상과의 거리감, 평화스러운 가장자리의 상징이다. 벤치는 바깥세상을 관찰하는 특혜 받은 자리이며, 피난처이고, 멈춰 설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벤치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멋진 벤치도 있고 얄궂은 벤치도 있다. 벤치는 그 놓인 자리만으로도 많은 것을 상징한다.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은 더 이상 현실 세계에 속하지 않거나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 단순한 좌석 하나가 그에게 시인의 자격을 부여하기도 하고 시야를 넓혀주기도 한다. 폭풍우나 소요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벤치다.

 

여자는 특별한 점이 전혀 없는, 나이와 외모 때문에 하나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린 노인, '이전에' 이렇다고 내놓을 만한 삶을 살았던 것 같지 않은, 마치 아무런 역사도 지니지 않은 것 같은 그렇고 그런 노인이었다. 여자의 주름은 시간의 흔적이라기보다 과거도 없고 미래라고는 임박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표식일 뿐이었다. 여자는 오늘 드러나 보이는 모습, 늙음으로 고착되어버린 그 모습, 더 이상 다르게 생각되어질 수 없는 그 모습으로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수많은 인생 중 하나인 자기 인생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뻔하고 애절한 내용밖에 없었지만 나는 매우 관심 있는 척하면서 예의바르게 그 얘기를 들었다. 나는 마치 전쟁터에서 가까이 마주친 적군의 얼굴을 보면서 느낄 연민의 정을 이따금 느꼈다.

 

죽음이 임박해오면 그때까지 사용해오던 가면이 부서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는다. 백 퍼센트 솔직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체득한 온갖 계략과 거짓말로 무장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 것이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인간은 점점 밝혀지는 진실에 대항해서 어리석기만 한 체면을 세우려고 전전긍긍할 것이다. 인간은 진실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진실에 복종하기보다 그럴 듯한 외관을 유지한 채 죽는 편을 택하리라.

 

나는 그녀에게 아침인사를 건네고 창가로 가서 눈 덮인 공원을 바라보았다. "커튼을 걷어드릴까요? 죽기에 딱 좋은 날씨같지 않아요?"

 

사람들은 내가 신랄하고 잔인하다고 비난하거나 감정과 인간성이 메말랐다고 나무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까지 내가 기울였던 노력이나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 나로 하여금 그렇게 되도록 만든 필연성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신랄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비참한 삶의 조건 뒤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즉 인간의 심장을 절개하고, 내장을 꺼내는 수술을 감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 간 속에 깃들어 있는 인간을 찾아내기 위한 작업.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외과의사의 관점만이 나의 정신나간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자유로움과 거리감을 유지시켜 줄 수 있다. 나의 이 같은 신랄함으 가장 큰 피해자는 아마도 나 자신일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한 범보편적인 견해를 도출해내기 위하여 내 사생활을 희생시켜가며 나 자신을 임상표본으로 기꺼이 바친다. 나는 모든 쾌락을 배제하고 오로지 종말을 지켜보기 위해 행복한 나날에서 체류함으로써 인간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 나는 아직 납득할 만한 고상한 의미를 알게 해줄 숨겨진 보물 같은 그 무엇인가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인간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를 하거나 인간이 지니지도 못한 장점을 인간이 지닌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사람은 항상 추잡하게, 부조리하게 죽기 마련이다. '삶의 신비'에 대한 의문을 송두리째 남기고 죽기 때문이다. 종족의 지속과 신비를 유지한다는 이유 외에 우리의 삶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아니 최소한 고무적이라고 할 만한 그 어떤 대답도 얻지 못한다.  위안치고는 너무 빈약하고 그렇기 때문에 매몰차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므로.

 

평생 나는 나를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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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보호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어느 자폐인이 자신의 운명과 고통을 극복하고 뛰어난 전문인으로 당당한 인간으로 세상의 중심에 서기까지의 성장기" 표지 문구다. 인간 승리책이라는 말이지만 자폐인을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읽어도 좋다. 부모의 적극적 지원, 일반 학교지만 특별한 학생을 위해 도움주기를 마다 않는 학교. 부럽기 그지없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압박기다. 농장의 낙인을 찍거나 예방주사를 놓거나 거세하는 작업을 할 때 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조이는 도구다. 이모의 농장에서 압박기를 본 템플이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장면. 템플은 직접 압박기에 들어가보기도 한다. 그곳에서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끼고는 자신만의 압박기를 만들기도 하고 결국은 가축 도구 디자인을 하게 되는 바탕이 된다.

 

아기가 잠이 들면 배나 가슴위에 작은 이불을 착착 접어서 올려두거나 손으로 지그시 눌러주면 안정적으로 잠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른인 나도 그렇다. 누군가 다리를 내 다리 위에 올려주면 그 무게가 편하게 느껴진다. 오래 무거우면 힘들긴 하지만. 옆사람 손을 끌어다가 내 두손으로 꼭 잡고 자기도 하고 아기처럼 얇은 이불을 가슴에 올려두고 자기도 한다. 나도 아마 접촉으로 인한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다만 템플의 압박기를 사용하는 건 사양하고 싶다. 자세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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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된 서문만 읽어도, 혹은 실린 편지의 목차만 스윽 훑어봐도 독서의 욕구가 솟구치는 책이다.

 

믹 재거가 롤링스톤즈 앨범 커버 디자인에 대해 기가 막히게 편안한 태도로 주문사항을 조목조목 써서 앤디 워홀에게 보낸 편지가 있고(앤디 워홀은 이 앨범의 커버를 완성했는데 주문 사항을 싹 무시한 디자인이었다. 이 앨범 커버는 아주 파격적이고 매혹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정감넘치는 자필 편지에는 당신만의 팬케이크 레시피가 첨부되어 있고 (책에 실린 첫 편지다), 자유의 몸이 된 노예가 전주인에게 퍼붓는 재치발랄하고 통쾌한 반박 서한이 있는가 하면 (강추한다. 이런 글솜씨를 가진 노예(전직 노예라고 해야 하나?)라니....근사하다), 세계적인 명성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 직전에 남편에게 쓴 시리게 가슴아픈  편지도 있다. 60세 환자가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과정을 딸에게 적어보낸 고통스러운 편지 (1855년 하와이에서 수술이 행해졌는데 환자는 수술 도중 내내 깨어있었으며 그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대화도 오고갔다. 팔 아래 부분도 일부 잘라내야겠습니다. 그러세요 같은)도 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취업을 간청하는 편지도 있다. 악명높은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가 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쫓는 시민모임의 단장에게 보내는 편지는 번역자가 틀린 맞춤법을 근사하게 번역해놓았다. (이 편지와 함께 보낸 상자에는 와인에 절인 인간의 신장 반 토막이 들어있었단다)

 

책 크기가 큼직하고 종이도 질이 좋아서 근사한 책이 되었지만 무게가 상당해서 들고 다니며 읽기는 거의 불가능. 편지의 원본사진을 보기 좋게 싣기에는 크기가 이 정도 되어야했지 싶다. 또 하나 더 부담스럽다면 가격인데,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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