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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평점 :
정치 검찰 이미지를 바꾼 생활형 검사의 이야기
《검사내전》(김웅, 부키, 2018)
“수사권조정안에 대해 검찰 입장을 밝혀 온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이 이번 인사에서 법무연수원 교수로 옮긴 게 대표적이다.” (2019.8.10. 노컷뉴스)
신문에서 우연히 김웅 교수의 이름을 보았다. 《검사내전》과 JTBC <차이나는 클래스>에 나왔던 모습으로 친근한 이름이어서 눈길이 갔다. 검경 수사권조정안에 반기를 든 검찰 측의 견해를 대변해 온 김웅 검사가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공안부나 특수부에 있는 정치형 검사가 아닌 형사부 검사로 또 작가로 그가 보여준 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은 참으로 신선했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검찰 조직의 일부였을까?
“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라는 것이었다. 나사못의 임무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이 맡은 철판을 꼭 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대한민국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p5
프롤로그에 선배 검사가 한 ‘나사못’ 이야기를 소개하며 책을 낸 목적을 밝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권력 지향적이고 강압적인 검사가 아닌, 실제로 건전한 생각과 제정신인 검사들이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한다. 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출판, 인터뷰, 강연, 대중매체의 노출 등을 통해 교양과 인간미 넘치는 검사의 모습으로 검찰의 대외적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조직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를 감당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장은 검사 생활을 통해 접한 사건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피해자의 욕망과 약한 처벌 수위 때문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기 사건과 연루된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취약한 단면을 확인시켜준다.
세 번째 장은 ‘검사의 사생활’이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검사의 조직 생활에 대해 다룬다. 특히 폭탄주 회식문화나 주말 단체 산행 등의 이야기는 검사도 일반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조직문화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네 번째 장은 ‘법의 본질’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로 구성된 앞의 세 장과는 조금 달리 조금 진지하다. 법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써 법과 사회에 관한 고민과 연구가 충실히 담긴 글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재미다. 작가 김웅의 유머와 능청스러움이 담긴 비유는 평범한 에피소드도 특별하게 만든다.
“재판정에 나가보면 피해자의 반신불수보다 피고인의 치질이 더 중병 취급을 받는다.”p.69
“내 어머니가 말했듯, 헌 가마니에 더 들어가는 법이다. 늙는다고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p.76
“할아버지는 형사피의자보상을 받았다. 물론 보상을 받아도 일용직 일당 정도에 불과하다. 머리 깨뜨려놓고 반창고 값 던져주는 것이다.”p.133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다 사기로 친다면 남산타워에 걸린 저 많은 사랑의 자물쇠들은 다 사기의 징표들이다.” p231
“당시 나는 앞으로 절대 주제넘게 나서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세게 덴 놈은 회도 불어서 먹는 법이다.” p.232
“사실 추리소설이나 수사 드라마에 나오는 것과 현실의 수사는 좀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이 어느 정도냐 하면, 그 사이로 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 할 수 있을 정도이다.”p.247
법조인이 쓴 책이 많겠지만, 책을 좋아하며, 획일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문학동네, 2015)과 비교하며 읽어도 재미있겠다. 추천사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등을 쓴 김민섭 작가가 썼다. 실제로 각 분야에서 일하며 느낀 점과 문제점 등을 쓴 글은 좋은 책일 확률이 높다. 《검사내전》이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데, 우리나라 국민은 주권 중 하나인 사법권을 행사해본 적이 없다. 국민은 판사를 뽑아본 적도 없고, 그래서 국민의 의사를 사법권에 관철시킬 도구도 없다. 그래서 헌법과 달리 우리는 국민이 행정권과 입법권만 행사하는 3분의 2 민주주의인 것이다.” p.355
사법부에 대한 저자의 날 선 비판이다. 물론 검찰은 행정부에 속해 있긴 하지만, ‘정치검찰 물러나라’라는 구호가 검찰청 앞을 가득 메운 요즘, 과연 김웅 검사의 생각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