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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타협 미식가 - 맛의 달인 로산진의 깐깐한 미식론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김유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19년 1월
평점 :
제목과 뒤를 돌아보지 않는 듯 앞만보고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이 담긴 표지에서 꺽이지 않는 고집이 느껴진다. 무엇에 대한 고집일까?
이 책의 저자 기타오지 로산진은 1883년생으로 일본의 전천후 예술가이자 일본 음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고 한다. 서예가, 화가, 도예가, 요리사, 미식가로서 다방면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천재 예술가이다. 평생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산 그는 '미'에 대한 물러섬 없는 집착으로 본인이 만든 도자기를 훗날 문화재급으로 인정받게 만들었고, 그의 미식론은 "현대 일본 요리의 원점을 창조했다"라고 평을 듣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어 보면 그의 타협없는 성격이 첫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깐깐하게 묻어있다. 요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은 그 요리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듯하다. 본연의 맛을 살려야 하는 식재료들과 요리들이 실력없는 요리사들에 의해 본연의 맛을 잃어가고, 식재료의 품질을 보는 눈이 전혀 없는 관리자의 책임없는 관리로 식품중독사건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오늘날처럼 쓸데없이 설탕을 부어 재료의 본맛을 잃게 만들고서는 조금도 돌이켜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 양식은 설탕 맛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면서 서양인이 하는 일이라면 무턱대로 받아들여 그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따라 하려는 풍습이 분별 있는 사람들의 빈축을 산다. 일본인은 카레라이스, 스튜, 소스까지 전부 다 달게 만들어버린다. 설탕은 식재료의 뒤떨어진 맛을 감출 때 쓰는 것으로, 설탕을 사용하는 일은 재료의 질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다. 설탕과 화학조미료를 줏대없이 사용하는 습관은 마땅히 삼가야 한다." 26
일본에 놀러갔을 때 음식들이 전부 달아서 일본사람들의 입맛은 다 이런가 싶었는데 이 '단 음식'문화에 일침을 가하는 일본요리사가 있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모든 식재료가 제각기 독특한 본연의 맛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리사라면 이 맛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본연의 맛을 손상하면 안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생선은 수백, 수천 종류 정도 될 것이다. 산과 밭에서 따는 채소 종류도 마찬가지다. 이 수백, 수천 종의 채소는 하나하나 다 다르게 특유한 본연의 맛을 갖고 있다. 이 맛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잃지 않도록 신경쓰는 것이 요리사가 가져야 할 근본정신이다."
1장에서는 '미식가의 길' 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깨달은 미식론을 논하고 있다.
2장에서는 '요리의 본질' 이라는 제목으로 요리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 등을 실었다.
3장은 '궁극의 진미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로산진이 궁극의 진미를 찾아 떠난 여정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4장은 '미식이란 음식을 제대로 알고 먹는 것'이라는 주제로 각각의 음식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간다. 복어, 은어, 참치, 전복등에 대한 그의 애정과 노하우를 엿볼수 있다.
5장은 '오차즈케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오차즈케를 위한 녹차를 우리는 법부터 위에 올릴 각종 재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70년 넘게 맛있는 음식을 위해 연구와 요리를 해온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을 따라 읽다 보니, 아무생각없이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음식들을 먹고 사는 나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며, 좋은 음식과 좋은 요리를 맛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의 식재료에 대한 통찰과 섬세함 고집이 멋지게 느껴지며 이런 고집들이 사라져가는 음식문화를 지킬수 있는것이라 생각이 들어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요리에 대해, 식재료에 대해, 자연에 대해 겸허한 시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