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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맨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8
백민석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7월
평점 :
어느 날 언론사로 USB가 도착한다. “대통령이 사임을 하지 않으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이다. 하 경감은 이 사건을 맡게 되지만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크게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플라스틱 맨’은 협박범의 닉네임이 된다. 플라스틱 맨의 협박과 테러는 계속 이어진다. 무능한 경찰, 심각한 상황을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 빗발치는 가짜 제보에 솟아나는 의심, 그럴싸한 별명으로 칭해지는 범인까지. 온갖 너절한 현실이 판친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여러모로 불편한 글이다.
『플라스틱 맨』은 범인을 쫓는 스릴러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테러 예고는 내내 언급되는 소재인 데에 비해 정작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다. 언론조차 따라 하며 개그로 소비하고, 추적에 매진하는 하 경감에게 지인들은 “플라스틱 맨이 네 남자 친구냐”는 질문을 한다. 사안의 중대성을 지우는 서슴없는 행동으로 그녀는 혼자 진지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 모든 바탕에는 별칭이 가지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도 정확히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특정하기보다는 ‘희대의 악마’, ‘미치광이’, ‘조커’ 등의 비유를 택한다. 호칭을 단순화하는 동시에 사안의 중대성을 지우고 가십거리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테러는 계속되고, 그 모든 게 최초 예고한 자가 저지른 일인지 독자는 알 수 없다. 점점 엽기적이고 황당한 방향으로 치닫는 시점에서는 더 이상 플라스틱 맨의 정체조차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으스러지는 무고한 생명들에 침울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탄핵은 구실이었을 뿐, 명확한 소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무엇이든 이슈가 되면 ‘편’이 생긴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실체보다는 반감에 사로잡혀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판단력은 어떤가.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을까. 무언가 나의 눈을 가리고 있거나, 너무 가까이에 있어 내가 보지 못하는 게 있지는 않을까. 책을 읽으며 “당신들 지금 제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네” 했던 생각이 책을 덮은 후에는 나를 향한다.
나는 자주 뜨거운 사람이지만 정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달뜬 상황에서는 이상적인 판단을 유지하기 힘들어서다. 뜨거웠던 순간이 지나가는 동시에 원점으로 돌아온 이들은 다시 또 새로운 과열로 접어든다. 선악에 구분이 없다는 말은 곧 선만 남은 상황도 얼마 유지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악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지금도 플라스틱 맨은 세계 각지에서 양산되고 있을지 모른다. 틀에 레진을 부어 굳히듯, 증오라는 원료가 채워지며 화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끝없이 등장한다. 결말을 알면서도 우리는 싸운다. 각자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좇으며 나아가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으니까.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