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1 - 개정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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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며칠을 끌었다. 3권이나 되는 <푸코의 진자>는 바로 책 제목으로 쓰인, '진자'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진자에 대해 한 장(章)을 쓰는데 작가의 지식에 압도당한다. 그야말로 에코스럽다. 그 진자에 대한 묘사중 첫 한 단락만 옮겨본다. (아래 밑줄긋기)


<푸코의 진자>는 어떻게 쓰여진 걸까?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푸코의 진자>를 쓸 때는 문제가 다소 복잡했다. <장미의 이름>을 완성하고 나니 내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던) 소설에 내가 에둘러서라도 할 수 있는 얘기들을 몽땅 쏟아부은 느낌이었다. 내가 쓸 수 있는, 진정으로 내 것인 이야기가 더 남아 있나? 두 가지 심상이 대답처럼 떠올랐다.


첫 번째는 레옹 푸코(프랑스의 물리학자로,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푸코의 진자를 만들어 코폴리 상을 수상했다.)의 진자였다. 30년 전 파리에서 보았던 진자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또 하나의 전율이 되어 오랜 시간 내 의식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두 번째 이미지는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참가자들의 장례식에서 트럼펫을 불던 내 모습이었다. 내가 끊임없이 입에 올렸던 진정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나중에 제임스 조이스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 경험이 내게는 조이스가 <스티븐 히어로>(국내에는 '영웅 스티븐 망명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에서 말했던 에피파니(진리에 대한 깨달음)와도 같다는 걸 깨우쳤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진자로 시작해서 화창한 아침 무덤 앞의 작은 트럼펫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진자에서 트럼펫까지를 어떻게 연결한다? 이 질문에 답하는 데 8년이 걸렸고, 그 대답은 소설이 되었다.


[젊은 소설가의 고백, 움베르토 에코]


내가 진자를 본 것은 그때였다.
교회 천장에 고정된, 긴 철선에 매달린 구체는 엄정한 등시성의 위엄을 보이며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진자가 흔들리는 주기는 철선 길이의 제곱근과 원주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원주율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력이 미치지 않는 무리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고도의 합리성이 구체가 그려 낼 수 있는 원주와 지름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기야, 그 고요한 호흡의 비밀을 접하고도 그걸 모를 사람이 있으랴). 그러니까 구체가 양극간을 오가는 시간은, 구체를 매달고 있는 지점의 단원성, 평면의 차원이 지니는 이원성, 원주율이 지니는 삼원성, 제곱근이 은비하고 있는 사원성, 원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완벽한 다원성 등속의, 척도 가운데서도 가장 비시간적인 척도 사이의 은밀한 음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바닥의, 지점과 수직을 이루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자력 장치가 구체의 중심부에 내장되어 있는 원통형 철주를 밀고 당김으로써 연속 동작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그러니까 이 장치는 진자의 법칙, 즉 진자의 법칙을 깨뜨리기는커녕, 법칙 그 자체의 존재를 실증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점과의 마찰도 없고 공기 저항도 없는 진공의 공간에, 무게도 없고 신축성도 없는 끈에 매달린 물건은 영원히 규칙적인 진동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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