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랑스 학교에 보내길 잘했어 - 편견 없이 포용과 존중을 배우는 사랑스런 두 아이와 엄마의 성장기
최선양 지음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20년 1월
평점 :
우리 첫째는 이번 해에 여섯 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까지 남은 시간 2년. 슬슬 반 친구들은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마냥 해맑은 아이는 친구 따라 발레학원에 가고 싶다고 조르지만 엄마인 나는 이 학원 저 학원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간다.
'친구들이 간다니 보내긴 해야겠는데... 벌써부터 보내는 게 맞는 걸까?'
여기까지 쓰면 나름 깨어있는 엄마 같지만 실은 이미 영어 학습지를 시작했다. 언어는 어릴수록 시작하기에 적당하다는 말에 홀려 거금을 투자한 것이다. 다행히 놀이식 수업이라 아이가 좋아하긴 하지만 저게 효과가 있는지, 그냥 놀기만 하는 건 아닌지 또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그러던 차에, 브런치에 해외 육아 글을 주로 올려 구독 중이던 쏘냐 작가님이 책을 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프랑스 학교에 보내길 잘했어>(최선양, 마더북스, 2019). 프랑스 학교는 얼마나 다를까, 아이들의 3개 국어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당장 책을 주문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한국 학교에서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나지만 프랑스 학교에서는 복습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 한국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수학만 가르쳐주고 스스로 심화 공부를 해야 한다. 학원을 다니든 과외를 하든 스스로 해야 한다. 하지만 프랑스 학교는 아이들에게 쉬운 과제부터 시작해 점점 더 어려운 과제를 주면서 단계를 올린다. 아이가 잘 하지 못하면 다시 한 단계를 내려 반복한다. (142쪽, 경쟁 없는 학교)
"아니, 안 혼났는데. 선생님이 도와줘서 그냥 했어. 다른 친구들 중에 숙제 안 하고 오는 애들도 있어. 그러면 그냥 그 시간에 하면 돼. 쉬는 시간이 줄어들긴 하지만." (124쪽, 언어를 배우는 데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프랑스 학교는 우리나라와 달리 아이들이 학원을 다닌다는 기본 인식이 없다. 모든 공부는 학교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아이들 각자 단계에 맞춰 공부를 하면 선생님이 피피곤할 만도 한데,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심지어 숙제도 어렵다면 학교로 가져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다. 세상에, 모르면 숙제를 안 해도 된다니! 선행학습이야 한국이 유난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숙제까지도 학교에서 할 수 있다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 모든 공부는 학교에서 완성하고, 집에서는 푹 쉴 수 있는 시스템. 워라벨의 대명사, 프랑스다운 시스템이 교육방침에도 녹아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아이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게 가능할까? 작가는 여기서 우리의 두 번째 고정관념을 깬다.
경쟁 없는 학교
프랑스학교에는 상장만 없는 게 아니라 각종 대회도 없다. 백일장, 달리기 대회도 없고, 체육대회도 없다. 수학 경시대회, 과학 경시대회도 없다. 친구들과 경쟁관계에 놓이는 모든 활동이 없다. 단지 반 아이들이 다 함께 과학 실험을 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보고, 뉴스 원고를 써서 앵커가 되어 뉴스를 진행하고, 카메라로 찍어 진짜 뉴스처럼 편집하는 등 모두 함께 협동해서 할 수 있는 활동만 존재한다. (130쪽, 경쟁 없는 학교)
한국에서는 발표회, 그 하루를 위해 땀이 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치원생들의 발표회도 완성도가 너무 높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 아이들도 대단하지만 아이들에게 완벽한 율동과 노래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정말 대단해 보인다. 반면 프랑스 학교에서는 그럴싸한 공연을 보기 힘들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들은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공연과 행사를 즐기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잘하지 못해도, 실수를 해도 그저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섰다는 것에 만족한다. (154쪽, 경쟁 없는 학교)
모든 문제의 원흉은 경쟁이었다. 내 아이가 남보다 더 똑똑해야 하고, 더 성적을 잘 받아야 하고, 더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그래서 더 좋은 직장을 잡아야 하고. 모든 것이 남을 밟아야 이뤄지는 시스템이기에 부모와 아이는 일등이 되기 전까지 -아니, 어쩌면 일등이 된 후에도- 끊임없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경쟁하에 학업 성취도는 높아졌을지 모르나 사회 안정과 협력 시스템은 현저히 낮아졌다. 남을 의심하고, 뒤처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내달린다. 죽을 때까지 지속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프랑스 학교는 아이에게 경쟁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한다. 성적표에 상대평가란은 없고, 절대평가만 있다. 교사는 아이의 공부 목표량과 과거에 비해 얼마나 발전했는지만 기재한다. 그러니 부모들 사이에도 성적 비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랑제꼴(프랑스의 대학교 교육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건 스스로가 발전을 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전인격적 교육
대학 입학. 우리는 스스로가 그래왔던 것처럼 아이 또한 무한 경쟁에 내몬다. 그 목표는 인서울 대학 입학, 혹은 대기업 입사까지다. 꼭 이삼십 대에 인생이 끝날 것처럼 십이 년을 불태우지만 실상 아이가 살아갈 시간은 더 길다. 우리는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 또한 가르쳐야 한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다른 학교였다면 어땠을까? 난 단지 여러 한국 엄마들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내 아이들은 여러 동양 아이들 중에서 매우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들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양 아이가 거의 없는 이 학교에 다니면서 조금은 특별한 아이가 되었다. 이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모른다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좀 더 돌봐줘야 하는 의미일 뿐이다. 가끔 우리 아이들이 지나치게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61쪽, 어서 와 프랑스학교는 처음이지?)
프랑스 학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시스템은 모든 아이들은 평등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이 서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교육 철학을 잘 보여준다. 지안이 역시 친구는 친구일 뿐, 그 아이의 피부색이나 출신 나라로 편을 가르지 않는다. 지안이 역시 친구는 친구일 뿐, 그 아이의 피부색이나 출신 나라로 편을 가르지 않는다. 어느 날은 이 친구와 놀고, 또 다른 날은 다른 친구와 논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의 아이들과 공부하고 노는 동안 지안이는 다양성과 존중을 몸에 익히고 있다. 프랑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71쪽, 어서 와 프랑스 학교는 처음이지?)
프랑스 국제 학교에는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친구가 된다. 이들은 나라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라가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우리는 친구이며 하나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아이들은 친구의 나라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며 다른 나라와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운다. 가장 먼저 자연스럽게 배우는 세계 시민 교육인 셈이다.
(96쪽, 내 아이를 세계 시만으로 키우고 싶다면)
프랑스인은 도도하다는 고정관념과 달리 프랑스 국제 학교는 어떤 인종도, 심지어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아이도 차별하지 않는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비경쟁 교육방침과도 일맥상통한다. 한 교실의 친구들은 밟고 올라가야 하는 '경쟁자'가 아닌, 손잡고 같이 걸어갈 '협력자'이다. 아이들은 인종, 성적 등으로 친구를 판단하지 않고, 각자의 장점과 차이를 배려하고 존중한다.
프랑스 학교에선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과 더불어 본인을 존중하는 법도 배운다. 초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부터 아동 권리를 가르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즐기면서 공부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1학년이 된 아이들에게 의무교육에 대해, 아이들의 권리에 대해 교육을 하다니. 실로 놀라웠다. 아동의 배울 권리에 대해 제일 먼저 가르치는 학교.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거리로 나가 시위를 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학생들도 종종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거리로 나가 시위를 한다고 하는데, 바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대로 실천하는 모양이다.
(75쪽, 내 아이를 세계의 시민으로 키우고 싶다면)
결국, 부모의 믿음 안에서 아이는 자란다
적응이 느린 첫아이 지안이. 지안이 때문에 마음 졸이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이겨내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아이들은 절대 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를 믿지 못하고 조바심 내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것 아닐까? (171쪽, 차별 없이 편견 없이, 아이가 자라는 순간)
아이들마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빠른 아이도 있고, 느린 아이도 있다. 평균으로 흐르는 아이도 있다. 그 시간이 빨리 가도, 느리게 가도, 결국 어른이 되면 멈추고 만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시계가 저절로 멈출 때까지, 아이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엄마의 일이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옆에서 돌봐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바로 엄마의 일이다. (284쪽,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작가는 한국인이 한명도 없는 인도의 프랑스 학교에서 아이들을 무사히 적응시켰다. 그 이전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인도에서 갓난 아이들을 길러냈다. 그것은 단순히 프랑스 학교만의 성과는 아닐 것이다. 작가는 아이가 말을 배우고 학교에 적응하는 긴 기간 동안 그저 아이들을 기다려주었다. 아이가 언젠가는 프랑스어를 하리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 그저 기다렸고, 결국엔 그 말은 진실이 되었다.
아이는 스스로 3개 국어를 배우고,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 경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나는 그저 아이에게 내재한 힘을 믿고 기다려주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 아이와 거리를 두고, 긴 시간 동안 스스로 성취하는 걸 지켜보는 것. 어쩌면 부모는 본인의 위약한 기질을 이런 방식으로 물려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프랑스 학교 뽐뿌'가 들었다. 어쩌면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품었으나 순수 국내파인 아이들은 방법이 없단다. 내 아이들은 몇 년 뒤 근방 초등학교에서부터 한국식 교육을 받게 되겠지. 그러나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라는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이 책의 의도가 프랑스 학교를 보내는데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고민의 중심은 아이이니, 우리는 아이에게 행복한 미래를 만들 비결을 프랑스 교육에서 찾아보자는 말이다. 아이를 과다한 경쟁에 내몰지 않고, 전인격적인 교육으로 평생을 내다본 든든한 기초를 다져주는 것이 우리 부모가 해야 할 진정한 과업이 아닐까. 말미에 나온 '행복한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약속'을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1.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기.
2. 경쟁을 부추기는 환경에 동조하지 말기.
3. 내 아이의 꿈이 무엇인지 알기.
4. 조금 느리고 못해도 아이의 시간을 기다려 주기.
5. 무엇보다도 내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음에 감사하기.
(297쪽,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