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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ㅣ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라틴아메리카에는 원래 마야 문명, 잉카 문명 같은 자신들만의 문명이 있었다. 그런데 지형 떄문에 외부 세계와 고립되었던 탓인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너무 쉽게 정복되고 만다. 특이한 점은 그 이후에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문화가 완전히 스페인 문화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두 문화가 섞여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민족적인 특성도 변해서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들이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다만 원주민에 대한 편견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어서 메스티소 정체성을 긍정하는 사람이 많을지는 잘 모르겠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문화가 혼합된 라틴아메리카 문화는 어떤 감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문화의 감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학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스페인어스페인문학과)의 김현균 교수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시인 4명에 대해 쓴 교양서인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카프카가 우리 곁을 지나간다. 우리는 감격하여 인사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니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서구중심주의가 미친 영향이 보였다. 서양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서구중심주의의 폐해를 직접 느꼈을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뿌리 깊은 변방 의식이 20세기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생전에는 유명세를 얻지 못하고 외롭게 살았던 카프카조차도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를 잠작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영국 평론가는 이 책에 소개된 시인 니카노르 파라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예술을 애지중지할 뿐이라서 철학성이 전혀 없다‘고 평했다고 한다. 물론 근거가 전혀 없는 말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황태자라고도 불리는 루벤 다리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를 비틀어서 <칼리반의 승리>라는 글을 써 미국의 야만성을 비판한다. <템페스트>는 귀족 프로스페로가 괴물 칼리반을 노예로 삼아 문명을 가르치는 내용이라서 주로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데 쓰였는데, 루벤 다리오는 글을 가르치는 프로스페로에게 욕을 하며 달려든 칼리반이 승리했다고 말해서 그 논리를 뒤집었다. 그런데 이 글이 미국-스페인 전쟁 때 나와서 미국을 비판하고 스페인을 옹호한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식민지배했던 나라를 옹호한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원주민 문화가 완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 문화와 섞여 있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에 대한 부담감도 덜 수 있었다. 내가 준비하는 AP 영어영문학(AP English Literature and Composition) 시험에서는 40분 안에 시를 분석하는 에세이를 영어로 써내야 한다. 시를 분석하는 과정을 연습하면서 표면적인 의미 뒤에 있는 더 깊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점수를 내야 하다 보니 시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책에서 라틴아메리카 시를 읽다 보니 시가 점수를 내려고 분석해야 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문화를 보여 주는 대상으로 다르게 보였다. 그런데 어떤 시들은 한국어로 옮겨 놓으니까 잘 와닿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