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이이는 이리도 글을 맛깔스럽게 잘 쓸수 있을까? 맞장구 치며 읽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장, 책장을 덮는 아쉬운 마음이 이리도 클수 없다. 보통 서민들의 이야기, 우리네 이야기, 내 마음을 내 속에 들어 왔던것 처럼 이리도 훤히 뚫고 있을까?
'가을 여자'의 주인공 대부분 중년여성 이기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인생의 젊음을 지나온 아쉬움을 이이가 이렇듯 대변해 줌에 고마웠기 때문 이리라.
 
책장을 덮고 나니 괜히 눈물이 난다. 가을을 타는지, 겨울은 추운것이 당연하지만 가을의 스산함은 뼈속까지 사무친다. 그래서 고이 접어둔 추억을 하나씩 들추어 내 곱씹어 보며 쓸쓸함을 달래게 되는가 보다. 사실 돌아 보면 별반 특별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일상처럼 가벼울 수 있는 일들이 그때는 왜 그리도 가슴 시리도록 애잔했는지, 젊음이란 지나가면 아쉽고 한없이 그리운 인생의 절정기 임에 틀림 없다.
 
그녀의 인생을 담은 이야기를 조근조근 우리게 풀어 놓은 25편의 단상들은 어찌 보면 모두가 나의 이야기 일수 있고, 너의 이야기 일수 있기에 모두 같은 일직선에 놓인듯 하다. 한편의 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게되는 까닭일 게다.
 
'철늦은 사랑 노래'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잠시의 허상을 이야기한다. 나이가 먹어도 여자이고 픈 마음, 미쳤어 그 나이에 라고 호들갑 떨어도 마음 한구석이 짠하도 예쁘게 보이고 싶고 사랑 받고 싶어은 여자의 마음이 세월 앞에 처연해 진다.  
 
'시든 꽃의 고백' 멋 부림으로 자신의 남루하고 열악한 삶의 조건들을 깁고 메우고, 반듯하게 살고 싶어 구긴 옷을 정성껏 다려 입으며 그것이 생에 대한 예의 였노라, 뒤틀린 삶에 대한 보복이 아닌 상처에 대한 사랑 이었노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생존 방식과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방식이 왜이리 가슴 아프고 공허하게 내 마음에 긴 여운의 메아리로 남는지 모르겠다. 이젠 그녀를 이해할수 있는 중년이 되었기에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때문일 게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딸과 역시 젊어 홀로된 어머니. 그녀는 남편 기일에 산소 주변에 난 쑥을 캐는 어머니를 조금은 미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잉어를 사시며 한 마리 건네신다. 보양식으로 고아 드실거란 예상을 뒤엎고 어머닌 그놈들을 방생 하시신다. 어리석게 낚시꾼의 미끼에 걸리지 말고 멀리멀리 가라는 말과 함께.... 홀로 아이들을 키우시며 쑥처럼 캐내도 다시 나오는 질긴 생명력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 후 어머니는 악착 같이 사시며 때론 이렇게 죽은 목숨 살리는 일로 마음을 달래시며 위안을 얻으시고 죽은 사람을 위해 할수 있는 그녀만의 최선을 다 하셨는가 보다.    
 
까칠한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시모나 그녀도 흘러 가는 시간 앞에서 찰라에 지나지 않는 인생이며, 오욕칠정의 부질 없음을 깨닫는 중년 여성의 담담한 이야기. 사철 발벗은 아내의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끼는 남편. 다달이 나가는 은행 융자금, 빛갚기 위한 적금 붓기, 교육비며 생활비에 모처럼 나들이옷을 빌려 입으며 이젠 뚱뚱해져서 언니 옷도 빌려 입기 쉽지 않다고 푸념하는 아내, 예쁠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아내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눈물 겨운지.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과 역할에 메인 팍팍한 삶을 살며 변변한 나들이옷 하나 없어 남의 것으로 나마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여자의 본능을 누가 비난 할수 있겠는가. 그런 아내에게 마안한 마음이 치통의 아픔으로 번져온다.
 
설핏든 초저녁 잠에서 깬 가장인 그가 아내와 두아이가 앉아 있는 한 없이 호젓하고 정다운 분위기를 보며 평화로운 그속에 끼지 못하고 쓸쓸함을 안고 어둠속에 한참을 서있다. 왜 자신을 따돌리고 비밀 모의를 한다고 보여지는 건지, 손닿을고에 있는 이들이 멀게만 느껴 지는 건지, 이처럼 안락함과 평화로움을 주기 위해 그의 삶이 얼마나 혹사당하는지 씁쓸한 생각을 한다. 그런 그가 늘 억울함으로 돌아켜 보던 인생, 고독과 초조함과 좌절감으로 감내해내야 하는 중년이 결코 자기만의 삶의 짐이 아님을, 자고 있는 아이들 역시 고독하게 자신의 인생의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는 모습에 내 가슴이 져러 온다. 중년의 남성들도 그들 나름의 고민을 아내에게 조차 말못하고 속에 치밀어 오는 고독과 쓸쓸함을 가만히 인내하고 있음을 그것이 사랑임을 어렴픗이 느껴진다.
 
가슴 떨리는 사랑이 아니어도 잔잔한 깊은 속정으로 인생의 황혼을 함께할 사람이 옆에 있음을 감사한다. '오정희' 그녀와의 소중한 만남으로 또 한번의 가을을 이 책과 함께 보내게 됨을 감사한다. 그녀는 어렵고 힘든일을 이겨 내는건 소리 없는 사랑의 힘 이라 진실을 조용히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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