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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조안 해리스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초콜릿'이란 단어를 입력하고 클릭을 해 봤더니 이 이름을 달고 있는 책이 수십 권이 뜬다. 좀 놀랐다. 원래 초콜릿이 사람의 입맛을 달콤 쌉싸름하게 유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로라는 작가들이 이것을 소재로 그렇게도 많이 책을 내놓은 줄은 미처 몰랐다. 책도 유행을 타긴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초콜릿'이 한때의 트렌드였다면, 얼마 전엔 '개'를 소재로한 이야기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올해는 '고양이'가 트렌드다.
이 책은 저자의 음식 3부작 중 하나라고 한다. 블루베리, 오렌지, 초콜릿을 소재로 했다. 몇년 전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동명 영화를 인상 깊게 본적이 있어, 한번쯤 소설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봤을 때나 책으로 읽었을 때나 내가 갖는 의문은 정말 '초콜릿'이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가이다. 초콜릿을 싫어하진 않지만 일부러 즐겨하진 않는다. 요즘엔 초콜릿의 고급화와 대중화를 선언했는지 젊은 두 남녀의 욕망의 줄다리기를 컨셉으로한 한 CF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저 초콜릿이 사람을 강하게 끌 수 있는지 의문이 간다. 하지만 막상 편의점엘 가서 이 초콜릿의 가격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까지의 먹고자 하는 욕망은 사라지고 과연 이 가격에 이 초콜릿을 사? 말아? 갈등하고 있는 나를 보면 나는 '상대적인 금욕주의자'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찌보면 먹는 것에 대한 유혹이 성에 대한 유혹을 앞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담과 이브의 최초의 유혹을 보라. 그깟 사과 알만한 선악과를 따 먹겠는가? 말겠는가를 고민하다 어처구니 없이 한입 베어 먹은 걸 가지고 벌거벗은 수치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어야 하지 않는가? 그 역사 이후 우리 인간을 얼마나 많이 먹는 것을 가지고 아귀다툼을 하며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해야 했더란 말인가? 게다가 정력에 좋다면 뭐든지 먹고 보자는 우리나라 사람들 보면 기가 차고, 걸상만 빼고 뭐든지 다 만들어 먹는다는 중국 사람들 보면 신기해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그런데 그깟 '초콜릿'이 뭐 그리 대수라고 이처럼 은밀하고도 서정적이게 이야기를 써 놨더란 말인가?
영화에서는 비주얼이 상당히 좋다. 정말 줄리엣 비노쉬가 만드는 초콜릿을 보면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것도 그거지만 찬 바람을 뚫고 두 모녀가 어딘가를 가고 있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그때 둘이 입었던 빨간색 망또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초콜릿은 잃어버렸던 부부의 사랑을 이어주고, 인간관계의 화해를 가져오며,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자기 선언을 하게 만드는데 묘한 마력(?)을 뿜어낸다. 특히 종교적인 위선과 권위에 도전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저자가 종교를 초콜릿이란 도구를 통해 허위와 권위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려 했다는 것이 일견 아쉽게도 느껴졌다. 물론 종교에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난 왠지 작가가 의도적으로 까발리려고 했던 것 같다 나름 그것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닌지라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게다가 어찌보면 작가는 신앙을 흠잡으려 했다기 보다 인간의 자유가 종교적인 위선과 권위에 짓밟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아마도 그것을 말하려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저자의 문체가 서정적여서 좋다. 하지만 흠이 있다면 요즘같이 흡인력있고 재밌게 읽혀지게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한권의 책을 읽는데 며칠이 걸렸던가? 감히 입에 떠올리지도 못하겠다. 초콜릿 본연의 유혹보다 이 책을 이쯤해서 덮을까 하는 유혹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그래도 무사히 완독했다. 다행히다. 읽는 내내 진한 코코아의 유혹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다 읽고 나서는 그런 유혹은 다시 없어지긴 했지만. 그 보단 매일 인스탄트 커피 두 스푼에 설탕 한 스푼, 우유 섞은 커피 한잔의 유혹이 더 크니까 그것으로 코코아의 유혹을 대신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열린 책에서 찍어내는 이 페이퍼백 소설에 적지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고래적부터 책의 모양새가 그래왔겠지만, 개개인의 인체공학에 맞춘 책이 앞으로 등장 하겠는가? 기대도 안한다. 하지만 너무 가볍게 만든 탓에 편하게 책상에 놓고 가볍게 한장씩 넘길 수 없었고, 꼭 손으로 들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다. 만일 어떤 사정이 있어 한 손으로만 생활해야 하는(그것이 한시적이든, 영구적이든 간에) 사람에겐 엄청 불편한 것이다. 어쩌다 책을 읽다 머리나 콧등이라도 긁을라치면 읽은 페이지를 잃어버리지 않게 책을 엎어 놓고 긁어야 한다. 그 불편함을 아는가? 게다가 글씨와 행간은 왜 이리도 작고 촘촘한 것인지? 이것을 문학은 좋아하나 눈 나쁜 선배나 어르신한테는 결코 선물해서는 안될 책 1순위가 되어 버렸다. 나 역시도 시력이 예전만 같지 않이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기차게 좋은 내용이 아니면 손도 대지 않을 확률이 아주 높다. 아무리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는 하지만, 기왕이면 책 내용도 좋고, 튼실하게도 만들면 좋지 않은가? 싸게도 팔면 금상첨화겠지만 싸게 파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