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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의 사랑 - 소란한 세상에서 조용히 귀 기울이기
최다은 지음 / 김영사 / 2025년 6월
평점 :
몇 백년을 이어져온 클래식 악보임에도 계속 연주되는 이유. 음악가마다 해석한 아티큘레이션의 차이.
교육과정과 수업 또한 악보와 음악가의 해석의 관계가 아닐까?
내가 스스로를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싶은 만큼 타인을 단순하게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알아 가는 데에 있어서는 비효율을 추구한다. 첫인상을 마주한 뒤 느낌은 간직하되 판단은 유보한다. 어떤 이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땐 정확한 출처나 사실을알기까지 유효한 정보로 삼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낭비가 되더라도 시간을 들여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내 이야기를해 보려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허락한다면결국 모두에게 나답게 살아갈 자유가 늘어난다고 믿는다.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래서 더 매몰되기 쉬운 것들이 있다. ‘최선을 다해 보지만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태도로 나자신을 훼손하지 않으며 지내기. 그게 내가 찾은, 소중한 것들을 오래오래 지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클래식의 경우에는 몇백 년 전에 쓰인 악보 그대로변동 없이 거듭 소비되는 장르다. 클래식 연주회의 인기 레퍼토리 중 하나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을 예로 들어 보자. 1801년에 작곡되고 1802년에 출판된 이 곡은 지금까지 단 한 음도 변하지 않고 탄생된 형태 그대로 연주되고있다. 1802 년이나 2023년이나 같은 악보를 가지고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고정돼 있는 음악을 200년이 넘도록 수천수만 명의 연주자가 왜 반복해서 연주하고, 또청중은 그 음악을 듣고 또 듣는가.
그건 악보에 표시되지 않은 부분에도 드넓은 세계가 있기때문이다. 그 세계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요소를 아티큘레이션 Articulation이라고 한다. 사전적 정의는 ‘연속되고 있는 선울을 보다 작은 단위로 구분하여 각각의 단위에 어떤 형과 의미를 부여하는 연주기법‘. 악보는 고정돼 있지만 하나의 음과 다음 음을 어떻게 연결할지, 어떤 음량으로 어떤 속도로연주할지, 어느 부분을 상대적으로 더 부각할지는 선택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아티큘레이션 역시 작곡가가 악상기호를
통해 어느 정도는 정해 놓기도 하지만 ‘보통 빠르기 Moderato‘ 라고 표시해도 ‘보통‘을 어느 정도로 설정하느냐, ‘매우 세계Fortissimo‘라고 해도 어떤 방법으로 얼마큼 세게 칠 수 있느냐는 연주자마다 다 다르다. 이 작은 차이에 귀 기울이는 것, 이 모든 작용이 종합되어만들어 내는 사운드의 질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감상의 요체라 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방송에서 그냥 "쇼팽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고만 해도 될 것을 "무슨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어떤 연주자의 협연으로 들었다"라고 굳이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느끼고 즐기려면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만큼 귀를 예민하게발달시키거나 반복 청취로 특정 곡에 대해 꿰고 있는 노력이어느 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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